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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사 Dec 14. 2020

이 노래가 몇 명을 살렸을까 2

1. 아직도 무한도전을 봅니다

그 이후의 시간은 너무 길고 깜깜해서 터널을 지나간다는 비유

가 가장 적절하다. 그 터널 안에는 병원비를 벌어 보겠다고 단밤

노점을 시작한 내 전 재산을 들고 도망친 까만 양복의 신사도 있

었다. 국가유공자가 되게 해 준다고 했었다. 영하 이십 도까지 떨

어진 날 장사를 나온 내 손에 따뜻한 홍삼차에 비타민 한 알을 쥐

여준 할머니도 있었다. 고생을 많이 한 아들이 생각난다고 했다.

별의별 사람을 만나고 별의별 일을 겪으며 직업도 여러 번 바뀌

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터널 같은 시간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견뎌야

하는 터널은 여전히 어둡고 울퉁불퉁하며 뾰족한 것들이 널려 있

었다. 반대편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터널을 지나다 보니 상

처가 끊이질 않았다. 터널 안에는 상처를 주는 것들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아파도 돈은 벌어야 했기 때문에 잠시 멈췄다가도 다시

뾰족한 것들이 가득한 터널을 나아갔다.


나는 그렇게 터널을 지나며 상처가 나도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익혀갔다. 거기서 나는 대부분 자신을 때리고 가끔 달래며, 드물

게 안아주었다. 자신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

만 별수 없었다. ‘여기가 학교인 줄 알아?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해야지. 과정은 중요하지 않아. 사회는 결과가 전부야!’ 같은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기 때문이다. 가끔 나를 달래고 드물게 안

아주는 것도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나를 끌고

긴 터널을 걸었다.


터널을 지나는 모든 순간이 캄캄했던 것만은 아니다. 만약 그랬

다면 이 글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터널을 지나다 가끔 빛을 만

나기도 했다. 내게 홍삼차를 건넨 할머니나 손님들이 버린 단밤

상자를 주워다 주신 파지 줍는 아주머니. 이런 분들의 친절과 호

의는 나에게 환한 빛과 같았다. 또 어떤 빛은 일주일마다 찾아왔

다. 매주 토요일 6시 25분에.


무한도전은 대부분 나를 웃기고 가끔 감동시키고 드물게 울렸

다. 그 적절한 조합은 마치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웃

음이 필요할 때 웃음을 주고, 울음이 필요할 때 시원하게 눈물을

쏙 빼줬다. 팍팍한 하루에 지쳐 세상에 어떤 기적과 감동도 없을

거라 믿을 때면 그것들을 보여주었다. 내겐 댄스스포츠 특집이

그랬다. 이후 이어진 봅슬레이 특집, 레슬링 특집, 조정 특집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의 엄격한 기준으로 보면 뭐 하나 제대로 성공한 도전이 없

을지 모른다. 대회에 나가서 수상은커녕 제대로 끝마치는 게 목

표였던 도전들. 그것은 누군가에겐 모자란 결과일 것이다. 그렇

지만 나는 그 모든 도전들과 모자란 결과 덕분에 또 다음 일주일

을 살아낼 힘을 얻었던 사람이다.


무한도전은 내게 세상은 아직 살만하고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

가 있음을 보여줬다. 정신승리나 책임지지 않는 달콤한 말뿐이

아니었다. 무한도전이 보여준 ‘노력’은 이 엄격하고 까칠한 세상

에 ‘모자란 결과’를 납득시켰다. 그 모든 도전들에 박수를 보내고

우리가 무한도전을 사랑했던 것은 그것 때문일 것이다.


무한도전 덕분에 나는 길 위에서 신나게 장사할 수 있었다. 매

출이 얼마던, 실적이 얼마건 간에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노

력한 나를 다독여주는 법을 배웠다. 회사에서 모욕을 당해도 지

난 특집을 찾아보며 시원하게 웃고 풀어버렸다. 고된 일주일을

겪으면 치킨에 맥주를 차려놓고 무한도전을 기다렸다. 그렇게 하

루하루 지나는 사이 어느새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터널을 빠

져나온 것이다. 터널을 빠져나온 나는 여러 가질 배웠다. 끝이 없

는 터널은 없다는 것과 터널을 지나는 동안 배운 것들 덕분에 내

가 조금 더 행복해졌다는 것을.


허지웅과 내가 그랬듯. 아직도 버티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

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아직도 무한도전을 찾아보며 위로를

받는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여기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날들은 결국 지나간다. 그 날들을 지나는 동

안 어쩔 수 없이 상처가 생기지만 어쩔 수 있으랴. 좋은 것들에게

서 위로를 받으며 아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그중에 무한도전

을 보며 아문 상처들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좋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좋아하는 특집과 지나온 시

간을 함께 이야기한다면 더 좋겠지. 이야기하던 누군가가 ‘그래 우

리 함께’를 부르면 눈물바다가 될지도 모르겠다.


멤버들이 쓴 가사로 만든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터트린 형돈

이 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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