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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사 Dec 14. 2020

이 노래가 몇 명을 살렸을까 1

1. 아직도 무한도전을 봅니다

“이게 뭔가요?”

“만약 그 병이 맞으면 너도 이렇게 된다는 거야.”




‘이 노래가 몇 명을 살렸을까?’


무한도전 단체곡 ‘그래, 우리 함께’ 동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살

다 보면 어금니를 사려 물어야만 버틸 수 있는 날이 온다. 그런

날은 하루만 겪어도 집에 돌아와서 씻지도 못하고 쓰러진다. 진

이 빠질 때로 빠져서 몸이 텅 빈 것 같다. 텅 빈 속은 뭐라도 좀 먹

어야 채워질 텐데 저녁밥도 먹기 싫다. 어느새 우울함과 무기력

함이 가득 차서 밥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다. 멍하니 누워 천

정을 바라보다 구레나룻이 축축해지면 그제야 내가 울고 있는 걸

깨닫는 그런 밤. 그런 밤은 잠들기 어렵다. 왠지 오늘이 끝이 아

닐 것 같다는 예감 때문에. 그리고 그런 예감은 보통 들어맞는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버텨도 그런 날은 쉽게 지나가지 않더라.


작가 허지웅은 악성림프종에 걸렸었다. 방송을 모두 그만두고

치료에 들어간 그는 눈썹까지 다 빠질 정도로 지독한 항암치료를

받는다. 침대에 누우면 천장이 내려앉는 것 같은 환상이 보일 정

도의 고통스러운 날들. 웃어본 것이 오래된 농담처럼 느껴질 정

도로 계속 힘들기만 하던 어느 날.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우연히

본 티브이에서 무한도전이 나오고 있었다.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

다 어느새 피식거리며 웃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순간만큼은 보통

사람으로 돌아간 듯 고통을 잊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는 항암치

료 내내 무한도전을 찾아보며 길고 고통스러운 날들을 견뎌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는 ‘힘겨운 날들을 버

티며 살아낸 거야.’라는 가사에 꼭 맞다. 덕분에 나는 힘겨운 날

들을 버티는 것이라면 제법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있다

는 게 상처가 안 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상처가 나도 몸을 움직

이는 데 익숙하다는 뜻이다. 상처가 아물지 않아도 출근은 해야

하고 돈은 벌어야 한다. 별로 특별하거나 슬픈 이야기도 아니다.

나도 당신도 매일 그럴 테니.


내 어두운 터널 같은 시기는 꽤 길었는데 그 터널이 시작된 날

을 기억한다. 그날은 2005년 10월의 막바지였고 철원에서 두 시

간쯤 걸려 도착한 국군 병원의 나무들은 벌써 이파리가 얼마 남

지 않았었다. 그날 진료를 기다리는 내 바로 앞에는 장갑을 낀 키

위 같은 머리통을 한 병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이제 갓 일병을

단 것처럼 작대기 두 개가 반짝이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좀

이상해 보였다. 아직 장갑을 낄 정도로 춥지 않았는데 왼손에만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지난번 검사 결

과가 나왔다는데 ‘혹시 양성이면 어쩌지.’ 하고 가슴이 쿵쾅거렸

다. 이름도 생소한 병. 지난번 내 피를 뽑고 난 군의관이 잠깐 보

여준 책에는 허리가 거의 반쯤 접힌 채 속옷만 입고 서 있는 남자

의 흑백사진이 있었다. 이상하게 무서워 보였다.


“이게 뭔가요?”


“만약 그 병이 맞으면 너도 이렇게 된다는 거야.”


군의관은 무심하게 말했지만 나는 갑자기 귀싸대기를 맞은 것

같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진료는

끝났다. 하루에도 몇백 명의 환자를 상대해야 하는 군의관에게

나 같은 병사에게 할애할 시간은 짧은 것이다. 책을 찾아서 사진

을 보여준 배려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병명도 어색했지만, 혹시나 까먹을까 봐 계속 되뇌며 벤치에 앉

았다. 당시에는 군대에서 인터넷을 할 수 없었으니 전화라도 해

서 이 병에 관해 물어봐야 했다. 그렇지만 가족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부모님은 인터넷을 할 줄 모르셨고, 동생은 걱정할 게 뻔

했으니까. 그렇게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10월의 나무 이파리보다도 내 피가 더 빠르게 마르는 것 같았다.

피가 마르는 2주간의 기다림 끝에 이제 내 앞에는 장갑 낀 키위

머리 병사 한 명만 남았다. 이 병사의 진료만 끝나면 바로 내 차

례였다. 널찍한 진료실에는 진료를 기다리는 병사들이 많았고 변

변한 칸막이 같은 것도 없어서 앞사람 진료를 서너 명이 어깨너

머로 볼 수 있었다. 키위 머리 병사가 군의관 앞에 앉았다. 그가

장갑을 벗자 주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집게손가락은 뒤틀린 번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뭉개진 찰

흙처럼 생긴 손가락은 손톱도 없었고 둘째 마디와 셋째 마디 사

이에는 이어붙인 흔적이 있었다. 손가락은 방향이 좀 어긋나게

붙어있어서 번개 같기도 하고 뒤틀린 나뭇가지 같기도 했다. 손

가락 여기저기에는 철사처럼 보이는 것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군의관은 무심한 눈으로 손가락을 쿡 집더니 이리저리 돌려보았

다. 키위 머리 병사는 소리도 못 내고 자지러지며 손가락을 따라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차트에 알아볼 수 없는 글자를 써넣는 군

의관에게 키위 머리 병사가 말했다.


“저, 일단 봉합만 하고, 성형수술을 해주신다고 하셨는데 언제

쯤 해주십니까?”


군의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제가 잘은 모르지만 이게 더 두면 좀 안 좋을 것 같지 말

입니다. 부모님도 보실 때마다 걱정을 많이 하셔서...”


“이건 나가서 수술해야지. 여기선 못해. 참아.”


군의관의 저 ‘참아.’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이었다. 나가서 수술할

때까지 참으라는 뜻과 지금 당장 닥칠 고통을 참으라는 뜻. 군의

관은 참으라는 말과 동시에 키위 머리 병사의 손가락에 튀어나온

철사를 잡아 뽑았다. 덩치 큰 병사는 아이 같은 비명을 질렀다.

잠시 뒤 넋이 나간 병사가 진료실 밖으로 나갔고 이제 내 차례였

다. 엉덩이가 의자에 채 닿기도 전에 군의관이 말했다.


“어? 양성이네. 약 먹고 쉬어야겠다.”


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군의관을 바라보자 그는 한숨을 쉬더

니 마른세수를 한번 했다.


“말해줬던 병 맞으니까. 의병전역을 시켜달라고 하던지, 군 병

원에서 버티다가 나가서 치료하든지 해. 치료제는 없으니까

진통제 타가. 뭐해? 안 일어나? 뒤에 사람들 기다리는 거 안 보

여? 다음!”


그 이후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웃

었던 거 같기도 한데. 하지만 그날이 깜깜한 터널의 시작이었다

는 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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