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구사 Dec 14. 2020

잃어버린 형을 찾아 나선 ‘저쪼 위에’의 모험 1

2. 형광팬 캠프

긴박한 순간 생각난 것은 유재석의 젖꼭지였다.



심장이 목에서 뛰는 것 같았다.


일산 드림센터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얼마나 거세게 뛰는지

머리까지 울릴 정도였다. 제작진이 면접 보는 걸 비밀로 하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에 며칠간 입을 꾹 다물고 지냈다. 사실 그런

말을 듣지 않았어도 남들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미신을 잘 믿

지 않았지만, 입으로 복이 나갈까 봐, 혹시 내가 이 귀한 기회를

놓치게 될까 봐 입을 굳게 닫았다. 심지어 복이 생겼으면 하는 마

음에 길에 쓰레기가 보이면 줍고 다닐 정도였다. 철통같이 비밀

을 유지하고 있었건만 동생은 금세 알아차렸다. 최대한 내색을

안 하려고 현관문 앞에서 심호흡하고 문을 열었는데 신발을 벗기

도 전에 들켰다.


“뭐야? 오빠 무슨 일 있어?”


나는 아무 일도 없다, 결백하다, 평범한 하루였다. 등등 평상시

의 나와 같음을 주장했지만, 귀신을 속이면 속였지 동생을 속이

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동생은 내 멱살을 쥐어짰고 내 속에 있

는 비밀은 치약처럼 밀려 나왔다. 동생은 조금 전까지 빨리 말하

라며 멱살을 쥐던 손으로 내 손을 잡아 강강술래를 돌며 축하해

주었다. 그날은 부족한 수험생 살림에도 치킨과 피자를 시켜 한

껏 기쁨을 즐겼다.


그 후 동생과 나는 면접을 위한 회의에 돌입했다. 동생은 개인

기를 반드시 시킬 테니 준비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유만

만하게 필요 없다고 했다.


“이미 내가 물어봤는데, 제작진이 개인기는 안 시키니까 준비

하지 말라고 했고, 면접은 일산 드림센터에서 3일간 진행되

며, 면접 시간은 한 명당 10분 내외, 복장은 자유, 준비할 것은

없으니 정말 마음 편히 오라고 했어.”


동생은 그렇다면 인상이라도 깔끔해 보여야 하니 당장 옷을 사

러 가자고 했다. 나는 아직 최종 합격을 한 것도 아닌데 벌써 옷을

사는 건 복이 나가는 행동이며, 긴장을 많이 할 테니 평소 좋아하

던 편한 옷을 세탁해서 입고 가는 게 최고라고 답했다. 나는 아니

라고 항변했지만, 동생은 이런 상황에서도 짠돌이가 돈을 아낀다

94 아 직도 무한도전을 봅니다 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돈이 아까웠다. 날카로운 것 같으니라고. 면접에 돈을 투

자했다가 떨어지면 돈도 쓰고 속도 쓰리고 얼마나 비경제적인

가. 그런 이유로 난 동생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뒤로하고 집을 나

섰다. 개인기는 하나도 준비하지 않은 채 가방에 우산 하나, 책 한

권만 챙겨서 면접장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방송국 정문에 도착하니 면접장으로 안내하는 아르바이트생들

이 대기하고 있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면접이라 안내 문구

대신 그들이 직접 지원자들을 안내하는 듯했다. 면접을 보러 오

셨냐는 말에 그렇다고 대답하자 안내해주던 분은 부러움이 가득

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누구에게 지원하셨냐, 정말 축하드린다,

잘하셔라, 나는 누굴 좋아한다 등등 이동하며 쉴 새 없이 말을 걸

어주었지만, 나는 긴장해서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는

심장이 목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뛰는 것 같았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 <무한도전>에 굉장히 가까이 와 있구나.


대기석은 이미 만석이었다. 교복을 입고 온 학생들, 한복을 입

고 온 어르신, 정장을 입은 사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온 사람,

액자를 들고 온 사람 등 다양한 이들로 가득했다. 기분 탓일까. 척

봐도 뭔가 특이한 사람들 같았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랄

까. 근처에 앉은 사람들과 바로 통성명을 하고, 누구에게 지원했

는지 등을 물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자 조금씩 긴장이 풀렸

다. 조용하던 테이블이 시끄러워졌다. 다들 긴장해 있다가 비슷

한 처지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자 너도나도 말문이 트이는 듯

했다.


‘여자분 전화받으셨어요? 저는 남자분이셨는데. 깜짝 놀라셨죠?

저는 전화받고 소릴 너무 질러서 목이 다 쉬었어요. 저는 울었어

요. 전화 다시 안 올까 봐 잠도 못 잤어요.’ 등등.


한참 대화를 나누다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금껏

제작진의 행동으로 짐작건대 불합격자에게 따로 통보하지 않겠

다는 생각. 전화 면접 이후 다음 연락을 받을 때까지 전화통만 붙

잡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무슨 말을 잘못한 건가. 아, 그

때 이렇게 대답할 걸… 다시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기까지

피가 다 마를 지경이었다. 만약 이번에 면접에서 떨어진다면 내

가 떨어졌다는 사실도 모른 체 전화만 기다리다가 갑자기 티브이

에서 형광팬 특집을 보게 될 것 같았다.


“잠시만요!”


결심과 동시에 몸을 튕기며 일어났다. 사람들이 모두 주목했다.


“제 생각에는 면접에 떨어져도 불합격 통지를 따로 안 줄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여기 계신 분들끼리 단톡 방을 만드는

건 어떨까요? 저희 중에 합격하신 분이 나오면 다른 분들 희망

고문당하지 않게 단톡 방에 이야기해 주시면 떨어진 줄도 모

르고 전화기만 붙들고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떠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들 휴대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행동력

들이 대단했다. 이렇게 마음이 잘 맞다니 신기했다. 결국 그 자리

에 있는 모든 이들의 연락처를 받았다. 50명은 되었던 것 같다. 단

톡 방에서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 면접장에서 지원자가 나왔다.

재빨리 다가가서 연락처를 물었다. 아까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여

자였다. 번호를 입력하며 면접이 어땠는지 묻자 개인기를 시키더

라고 했다. 뭐라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자 본인도 놀랐다

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순간은 손 안에서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