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고백, 부재, 그리고 남은 퍼즐

by 박루아


새벽 4시.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고,

집 안은 기이하도록 고요했다.

하윤은 숨결 고른 잠 속에 있었다.


그 옆방에서 은채는 조용히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화면에 비친 얼굴은 낯설었다.
멍한 눈빛, 빛 하나 없는 피부,

조명 없이 생겨난 그림자.

그녀는 아무 장치도 없이 카메라를 켰다.


스크립트도,

꾸밈도, 반복된 테이크도 없었다.
이건 연출이 아니라, 고백이었다.


“안녕하세요. 채로운 하루 은채입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오래 뱉었다.


“영상은 협찬이 아닙니다.

저를 위한 영상도 아니고요.
사과를 하기 위해 만든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제가 정말 무서워서 만든 영상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떨구었다가 다시 들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는 이미 마음속에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처음엔 단순히 육아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담고,
그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조회수가 오를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고
협찬이 들어오면 망설이지 않았어요.

.

.

편집하면서,

저는 ‘은채’의 또 다른 얼굴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 안에 하윤을 넣었어요. 제 아이를요.“


목이 메었고, 말끝이 떨렸다.
은채는 손을 떨며 물컵을 들었다.
물은 흘렀지만 닦지 않았다.


“그 사람이 말했어요.
Judge99라는 닉네임이에요.
‘아직 남은 꽃이 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대신 말하겠다.’”

그래서, 제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제 영상 뒤엔 짜증도 있었고,
울음도, 후회도, 무책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감추고,
‘좋아요’를 원했던 엄마가 있었습니다.”


은채는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게, 제 진짜 모습입니다.”


잠깐의 정적.
그녀는 천천히 녹화 버튼을 눌러 멈췄다.


‘저장 중…’이라는 문구가 화면에 떴다.


그 순간, 한 사람이 떠올랐다 — 하윤.
이 영상은 언젠가 하윤이 보게 될 것이다.
아니, 반드시 봐야 한다.

그게 은채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책임이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업로드’를 눌렀다.
비공개도, 예약도 아닌 ‘공개’.


그 순간,
은채는 알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이제… 말했다.”


다음 날 아침.
핸드폰엔 37개의 알림이 쏟아져 있었다.


댓글, 공유, 위로, 욕설.

그 속엔 익숙한 이름이 없었다.


Judge99.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이 가장 이상하고, 가장 조용한 경고였다.

영상은 빠르게 확산되었다.
‘추천 알고리즘’의 한복판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은채는 보지 않았다.


핸드폰을 서랍에 넣고,
모든 알림을 껐다.

온종일 그녀는 아무 말도 듣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위로가 됐다.
세상과 단절된 하루만큼은,
마치 자신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오후 3시.
“엄마! 나 이거 나왔어!”
하윤의 목소리가 울렸다.

화면을 켜자 숫자가 쏟아졌다.


알림 212개.
멘션, 공유, DM.

유튜브 추천 영상엔

‘채로운 하루 은채의 고백’이 상단에 있었다.
전문가 반응, 심리 분석, 해석 콘텐츠가 이어졌다.


“이제라도 말한 건 용기.”
“근데 왜 아이 얼굴은 그대로예요?”
“Judge99는 누구지?”


Judge99.

그 이름은 이제 ‘의문’이었다.


은채는 검색창에 천천히 입력했다.

Judge99.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댓글 없음. 계정 없음.
유튜브도, 트위터도, 블로그도 없었다.

‘판사’, ‘99’, ‘꽃말 유튜버’, ‘은채 후원자’…
모든 키워드를 조합해도 결과는 같았다.


없는 사람.
그는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증발했다.

그날 밤,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From: [비공개]
“당신이 먼저 말할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잘했어요.”


익숙한 어투였다.
간결하지만 단정한 문장.
그 사이에 숨어 있는 냉정한 행간.


정체를 밝히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Judge99.

그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단지, 지켜보는 방식만 바꾼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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