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진실의 자리
“당신의 계절은 언제인가요.”
채린은 새로 뜬 채널을 보고 멈췄다.
첫 영상의 오프닝 자막,
그리고 채널명 ‘SZN유’.
따뜻한 햇살, 잔잔한 음악, 감성적인 편집.
겉보기에 평범한 브이로그였지만
어딘가 낯익었다.
“이거, 은채 맞죠?”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삭제된 걸 백업해 재편집한 거예요.
이상하게 조용히 퍼져요. 알고리즘도 안 탔는데.”
채린은 영상을 돌려보았다.
하윤과 걷던 골목, 파란 벽 앞의 빵집.
그런데 프레임 끝,
검은 재킷의 ‘SZN’ 로고가 스쳐 지나갔다.
“남편일까요? 아니면 촬영 스태프?”
그녀의 혼잣말은 곧 메모로 바뀌었다.
이 채널, 혼자가 아니다.
잠시 뒤 도착한 메일.
From: szn.admin.co.kr
Subject: 영상 캡처 중단 요청
“귀하가 접근한 일부 영상은 협약에 따라 보호됩니다.
무단 저장 및 유포는 법적 조치를 초래합니다.”
채린은 직감했다.
SZN—단순한 채널명이 아니라, 시스템의 약자.
은채의 세계는 애초에 혼자 만든 게 아니었다.
그 시각, 은채는 불을 끄고
휴대폰을 뒤집었다.
옆에서 들려오는 하윤의 숨소리.
어둠은 화면보다 짙었고,
말하지 않았지만
너무 많은 것이 이미 드러나 있었다.
구독자 수는 진실을 증명하지 못한다.
은채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조회수와 “힐링이에요”라는 댓글은
그녀의 실제와 닿아 있지 않았다.
그날 오후,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
택배 상자는 아이가 열어보는 장면처럼
포장돼 있었지만,
내용물은 드라이플라워로 위장된
다마스커스 로즈였다.
꽃말은 ‘은밀한 욕망’,
배송 대상은 마카오.
은채는 숨을 내쉬었다.
콘텐츠가 아니라 지령이었다.
DM은 쏟아졌다.
“언니, 라이브 해주세요.”
걱정이라 포장된 말들이
사실은 서사에 대한 탐닉임을 은채는 알고 있었다.
슬플수록,
아플수록,
처절할수록
조회수는 오히려 높아졌다.
하윤은 말이 없었다.
스케치북에 그림 네 컷을 그렸다.
자신을 등진 여자.
뒤를 따르는 검은 고양이.
붉은 꽃을 든 손.
그리고, 꽃을 들고 웃는 하윤 자신.
“엄마, 꽃 예뻐요?”
은채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을 뿐.
브이로그를 시작한 건 몇 해 전 겨울이었다.
남편은 무심히 휴대폰을 스크롤했고,
은채는 젖병을 씻다 손을 데었다.
끝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풍경.
그때 카메라를 켰다.
“괜찮은 척 해야 했어요.
누군가라도 제가 괜찮다고 믿어주면,
정말 괜찮아질 것 같았거든요.”
그게 첫 연기였다.
몇 달 뒤,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디오스 미디어입니다.
협업 관심 있으신가요?”
그날 밤 남편은 말했다.
“넌 왜 항상 남 앞에서만 잘하는 척이냐?”
그 말이 등을 떠밀었다.
은채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첫 협찬 영상은 10만 뷰. 택배는 달라졌다.
유기농 이유식에서 정체불명의 파우더,
‘베이비 스파 클렌저’라 적힌 상자,
그리고 꽃.
꽃말은 곧 암호가 되었고,
감성은 운반의 언어가 되었다.
햇살이 기울던 오후,
은채는 셔터를 내리고 카메라 앞에 앉았다.
거짓은 진짜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 거짓을 진심이라 믿었다.
하윤이 옆에 앉아 말했다.
“엄마, 나는 진짜 엄마가 좋아.
카메라 꺼졌을 때도.”
은채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 앞에서
카메라가 처음으로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