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람보다, 남겨진 시간이 더 무거웠다

떠난 자리와 채워지지 않는 것들

by 박루아


하윤이 태어나던 겨울,

은채는 하루에 열두 번 기저귀를 갈았다.

손목은 뒤틀리고

잠은 세 시간도 채우지 못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남편은 소파에서 휴대폰만 봤다.


“기저귀? 난 아직 안 해봤어.”
이유식이 흘러도,

젖을 물린 은채 앞에서도 그는 무심했다.


은채가 무너진 건 그가 떠난 날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수백 번의 무관심이

금을 냈기 때문이었다.


가계는 빠듯해지고,

그는 “준비”라는 이름으로 집을 비웠다.

결국 오피스텔 계약서를 꺼내며 말했다.


“나도 좀 살아보고 싶어.”
그가 떠난 뒤, 남겨진 건 아이와 카메라뿐이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브이로그가,

하루를 버티는 끈이 되었다.


며칠 뒤, 삼각대가 선 거실.

은채는 붉은 백합을 꽂고

조명을 돌려 파란 벽지를 채웠다.

하윤은 노란 리본핀을 달고 크레용을 꺼냈다.


“오늘의 소소한 힐링, 함께 하실래요?”
꽃잎, 벽지, 리본—

차례로 클로즈업되는 장면은

동시에 신호였다.


붉은 백합 + 파란 벽 + 노란 리본.

브이로그가 아니라 거래의 언어였다.

댓글 하나가 발목을 잡았다.

“영상 색감이 묘하게 정돈돼 있네요.

의도하신 건가요? 색으로 말 걸기 같은 거?”
심장이 내려앉았다.


말이 아닌 구성을 읽어낸 첫 문장.

며칠 뒤, 같은 아이디가 다시 적었다.


“리본핀 위치 바뀐 거… 일부러 그런 거예요?”
확인해 보니, 원래는 ‘왼쪽’이었지만

하윤이 스스로 오른쪽에 꽂아버렸다.

작은 반항조차 읽힌 것이다.

은채는 그 댓글을 지우지 않았다.

삭제도, 차단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켜봤다.



촬영 브리핑의 메인 컷은 노란 장미 = 기다림.


“하윤아, 이 꽃 엄마한테 줄래?”
“싫어.”
“… 왜?”


“이건 진짜 꽃 아니잖아.

엄마는 나보고 진짜처럼 웃으래.

근데 웃고 싶지 않은 날도 있잖아.

카메라 있는 날은 엄마가 무서워.”


그 순간, 은채는 제작자가 아니었다.

한 아이의 엄마였고,

상처를 준 사람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카메라를 껐다.

촬영은 실패였고, 보고서에도 그렇게 적었다.


밤, 하윤은 고르게 잠들었다.

은채는 오래 얼굴을 바라보다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이번엔 렌즈캡을 열지도,

녹화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다.

손에 남은 건 기록이 아니라 반성이었다.


엄마의 욕망은,

아이의 진실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 문장을 은채는 어디에도 적지 않았다.

다만 가슴 한켠에 깊이 묻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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