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것, 그리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

영상 삭제 vs 증거 보존의 갈등

by 박루아


“하윤이 엄마 맞으시죠?”

하원 시간, 인파 속에서

낯선 여자가 은채의 어깨를 두드렸다.

선글라스에 서류봉투를 든 평범한 차림이었지만,

첫마디는 평범하지 않았다.


“요즘 영상에 하윤이 안 나오더라구요.

우리 애가 팬인데 아쉬워하더라고요.”


말투는 친절했지만, 은채는 숨이 막혔다.

영상 속에서 아이 이름을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호칭은 늘 “꼬마” 혹은 “아이”였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정확히 “하윤”을 말했다.

확인이자 경고였다.


“죄송해요, 지금 급해서요.”

은채는 웃으며 아이 손을 끌었다.

발소리조차 없는데도,

뒤에서 시선이 따라오는 듯 등줄기가 싸늘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윤이 물었다.

“엄마, 그 사람 우리 알아?”
“아니. 그냥… 네 영상 봤대.”

“근데 왜 웃는데도 무서웠어?”

은채는 대답 대신 아이 손을 더 꼭 잡았다.


밤, 하윤이 잠든 뒤 은채는 노트북을 켰다.

폴더 속 파일 하나가 시선을 붙잡았다.


<진짜 영상 기록_v1.pdf〉.
꽃말과 코드, 경로와 시간표.

스스로 만든 체계가

이제는 증거가 되어 그녀를 겨누고 있었다.

보내야 할까,

숨겨야 할까.

손끝이 멈췄다.


새벽 세 시, 채널 관리자 페이지에 접속했다.

타일처럼 깔린 썸네일 중

아이의 얼굴이 보이는 장면들을 하나씩 잘랐다.

클릭, 삭제, 확인.

조회 수가 0으로 바뀔 때마다,

마치 그 순간의 하윤을 직접 지우는 듯한

죄책감이 목을 눌렀다.


“나는 아직 지켜야 하는 사람이라서…

지켜보기만 한다.”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그것은 두려움보다 절실한 애착의 형태였다.

며칠 뒤,

은채가 올리지 않은 영상이 먼저 세상에 퍼졌다.


<진짜 영상 기록>.

편집본 속엔 책상 위 손짓,

코드가 적힌 자막 프레임,

서랍 속 봉투가 차례로 이어졌다.

그녀가 차마 입 밖으로 하지 못한 말들이

낯선 목소리로 대체돼 있었다.


“Zinnia_13 = 13번 창고.”
“진달래는 운송 코드 B.”


댓글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와… 진짜였네.”
“그냥 감성인 줄 알았는데 소름.”
“애까지 찍혔다고? 이건 선 넘은 거 아냐?”


마지막 프레임엔 문장 하나.


“당신들은 감성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건 운반이었다.”


은채는 화면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이미 ‘하지 않은 말’을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국 그녀는 더 많은 영상을 지우기 시작했다.

하윤의 첫걸음, 생일 케이크, 소소한 여행까지.

문제 될 장면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시선 아래선 모든 게 ‘의미’로 변질됐다.

무죄는 증거가 되지 못했다.



그날 밤, 메신저 창이 번쩍였다.


[channel_ghost]
“지운 영상, 우리가 다 보관 중입니다.

삭제한다고 끝나지 않아요.

다만, 당신이 원한 줄 알게요 :)”


은채는 처음으로 손이 떨렸다.

공포 때문이 아니라,

멈출 수 없는 분노와 낙심 때문이었다.

삭제는 부정이 아니라 회수였는데,

세상은 그것을 범죄의 시나리오로 읽고 있었다.

노트북을 덮으며 은채는 낮게 내뱉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아.”

그러나 속으로는 단 하나를 붙잡았다.



“그래도 지켜야 할 건, 끝까지 지킨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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