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버티면 되는 걸까?

견뎌낸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거야.

by 박세미

"이게 맞는 걸까? 그냥 버티면 되는 건가?"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있던 1년, 수도 없이 나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살고자 하는 현실도피였지만

그만큼 꿈도 한아름 안고 왔는데. 현실은 한국보다 더 처참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가진 게 없었다. 호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해방감, 설렘, 그리고 점점 커져가는 두려움을 느꼈다. 10시간 넘게 날아가야 도착하는 낯선 땅에 아무 연고도 없을뿐더러 수중에 80만 원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2004년 9월 4일 오전 9시, 그렇게 브리즈번공항에 도착했다. 청량한 공기와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이질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 떨어졌지만 원래 살던 세상에서의 고통이 더 컸나 보다. 트레인을 타고 시티로 나가면서 본 정신 나간듯한 그라피티 벽화들마저 멋지게 보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다가올 현실을 알 길이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휴대전화와 간단한 식량을 구비하고 중간중간 명소도 둘러보았다.

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무조건 걸어 다니고 밥도 숙소에서 먹었다. 그렇게 숙소비와 식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 푼도 쓰지 않았는데 가진 돈은 눈에 띄게 줄어갔다. 정말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갔다.


그 돈으로 셰어하우스는 무리고 당시 워킹홀리데이 시급이 7-8불 대였다. 제대로 된 숙소를 구하고 학비를 낼 돈을 모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백패커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 농장으로 향했던 워홀러들에게 연락이 왔고 그곳의 상황을 듣자마자 결론을 내렸다. 두 배 가까운 시급과 넘쳐나는 일자리, 내 상황에서는 농장밖에 답이 없었다.


농장을 가는 건 계획에 아예 없었는데. 브리즈번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농장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있었다. 도대체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얼마나 반복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하니 이미 밤이었다. 불도 안 들어오는 어두운 거리를 그것도 혼자서 몇십 분 동안 걸었다.


불을 켜도 어두컴컴한 방에 2층침대만 두 개 덜렁 놓여있던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것 같은 숙소. 처음 보는 놀라운 크기의 벌레들. 거기서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아침이 되어 숙소 관계자에게 말하니 여자숙소에 사람이 하나 나가면 그때 방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일을 하지 않을 거면 숙소에 계속 머물 수 없다고도 했다. 역시나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음날 새벽 도착한 곳은 방울토마토를 포장하는 공장이었다. 일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반복되는 단순작업을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엄청난 고역이었다. 그마저도 사치인걸 깨닫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숙소에서는 매일 다른 농장에 랜덤으로 사람들을 배정했고 그렇게 나는 여러 농장을 전전했다. 땅에 떨어진 썩은 토마토 줍기, 딸기 따기, 수박 수확하기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첫날 했던 방울토마토 포장일이 알고 보니 가장 쉬운 일이었다.


결국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했는데 나 같은 워킹홀리데이 노동자에게 상황은 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몸이 힘든 건 괜찮은데 무료한 시간만 흘러가는 농장일은 정신적으로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때부터는 그냥 시간에 몸을 맡기고 불어나는 통장잔고에 잠시 웃었다. 그 돈으로 하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견딘다는 건 어찌 보면 가장 노력하는 거야.'


참고 견디고 버티는 인내의 시간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노력하면서 살아온, 앞으로 다시는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결국 나는 인고의 열매를 따냈다. 금의환향하듯 브리즈번으로 돌아와 원하던 TESOL(영어교육) 과정을 들었다. 하지만 학업에 집중하다 보니 또다시 가진 돈이 바닥을 드러냈다.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오후부터 밤까지 한국식당에서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주말에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 일을 했는데 일주일에 하루도 못 쉴 때가 많았다. 그래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평소 영어와 남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던 나에게는 꿈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아마 호주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가장 행복했던 때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호주땅에서 1년을 버티고는 TESOL 자격증과 얼마의 돈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비자는 끝나가고 나는 결국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