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선택이 어려울 땐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

by 박세미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매번 물음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워킹홀리데이 1년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바로 현실에 적응했다. 마지막 남은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 4학년으로 복학했고, 저녁에는 입시학원의 영어강사로 일했다. 호주에서의 경험과 자격증 덕분인지 이전보다 훨씬 좋은 대우로 일할 수 있었다. 입금되는 돈의 숫자가 달라지자 호주에서의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도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빛만으로도 삶의 에너지가 채워지는 듯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가진 능력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천직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해피엔딩만 있으면 좋으련만. 나의 삶의 이면에는 늘 비극이 함께했다. 내가 호주로 떠나 있던 1년 동안 우리 집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사이 집은 더 낡고 작은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서 일을 하고 집에서는 겨우 잠만 잤지만 그 잠깐마저도 나는 편하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늘 고성이 오가고 불평과 한숨이 가득했다. 조용할 때도 이상하게 무겁고 답답한 공기가 흘렀다. 그럴 때마다 호주가 떠올랐다. 싱그러운 풀냄새와 폐 깊숙이 담기는듯한 상쾌한 공기. 살아있으니 숨을 쉬는 게 아니라 의식해서 호흡을 하는 것만 같았던 그곳에서의 삶에 향수를 느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한 성인 영어학원에 취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의 강요가 아닌 본인의 열망으로 자리에 앉은 학생들의 눈빛은 중고생들과는 사뭇 달랐다.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시선에 보답하고자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1시간 강의를 위해 3시간을 넘게 준비를 하곤 했다.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으며 운 좋게 딱 맞는 신발을 신고 원하는 곳에 향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앞서나가려는 나에게 불행은 계속 발을 걸었다. 아빠의 무리한 사업시도로 빚은 점점 늘어가고 그 여파는 결국 나를 덮쳤다. 독촉전화를 수시로 받고 사채업자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어떤 날은 학원으로까지 전화가 왔고 그럴 때마다 빈 강의실에서 소리를 죽인 채 엉엉 울었다. 그리고 또 아무렇지 않은 듯 강의를 했다. 강의하는 순간만이 유일한 피난처였다 보니 쉬지 않고 일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자는 시간 빼고는 학원에 남아 강의준비를 했다. 그렇게 단시간에 능력을 인정받아 대기업에서 임원들에게만 강의를 하는 강사가 될 수 있었다. 그동안 만져보지 못했던 돈도 벌었다. 하지만 내 수중에 들어오는 돈으로는 차비를 내기도 어려웠다. 대한민국 최고의 백화점 명품관 꼭대기층에서 강의를 하고 나왔는데 차비가 모자라 몇 시간을 걸어서 집에 간 적도 있었다. 그렇게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느낌을 꽤나 자주 받았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칭찬했다. 졸업하자마자 인기강사로 돈도 잘 벌고 어려운 가정에 보탬도 되고. 나는 성공한 K장녀의 표본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빛나던 순간만을 보았지만 내 안에는 지독하게 어두운 비극이 가득했다. 사실 남들이 그런 내 상황을 모르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부러 환하게, 화려하게 보이려 애쓴 적도 많았다. 거짓웃음과 억지로 행복해하는 내 모습에 지쳐갔다. 몇 배로 열심히 일해서 이전에는 상상도 못 할 돈을 벌었지만 빚은 점점 더 늘어갔다.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는 걸 멈추고 빛이 가득했던 호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


마치 호주가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삶을 살면서 언젠가는 어둠이 끝나길 바랄 것인지. 죄책감을 안고 다시 떠나서 고생을 감수하고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전자를 선택하자니 끝이 없어 보이는 가난을 짊어질 자신이 없었다. 후자를 택하자니 가족을 두 번 버린다는 죄책감이 너무 컸다. 내가 처한 현실은 제대로 들여다보기도 싫었다. 그런데 호주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깊은숨을 고르며 그곳을 떠올렸다. 가슴속에서는 설렘이 일렁였다.



결국 한국에 돌아간 지 일 년 만에 다시 호주로 돌아올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번엔 아예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