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부터 살아야 모두를 살릴 수 있어.
"이렇게 그냥 다시 떠나도 되는 걸까?"
남은 인생을 호주에서 살기로 결심을 한 이후 나는 매 순간 이 질문을 반복했다. 유학원 상담을 받고 비자를 알아보고 준비를 하는 모든 과정이 설레었지만 집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마음 한구석이 무너졌다. 내가 없는 동안 가족들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죄책감이라는 건,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갖는 미안한 마음이라는 건 어린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떠나고자 하는 결심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되었으니까.
처음엔 나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노력을 더하고 더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악화만 되어갔다. 이상했다.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 왜 결과가 이렇지? 이유는 분명했다. 해결을 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 그사이 반대쪽에서는 더 큰 어둠이 형성되고 있었다. 나의 노력을 비웃는 듯 조금씩 갚아져 가는 것 같다가 도 더 큰 빚이 산사태처럼 덮쳐왔다. 그럴 때마다 내 몸이 땅속으로 조금씩 파묻혀가는 기분이었다. 그런 나에게 돌아오는 건 더 큰 바람과 의존뿐이었다. 현실에 지쳐 토해내는 가족들의 분노와 비난의 감정들까지 받아주어야 했다. 아직은 보호받고 싶은 어린 나이였던 나는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이모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명목상으로는 먼 길을 떠나는 나를 보러 온 것이었지만 은연중에 나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너 가면 네 엄마는 어떡하니.", "동생들 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좀 있지 그랬어." 잘 가라는 인사는커녕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가장 예쁜 나이에 나를 죽여가며 노력하는 게 당연하게 되어버린 현실이 소름 끼치게 싫었다. 당연한걸 당연하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내가 떠나면 부모님이 나에게 의존하는 대신 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생겼다. 혹시라도 내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동생들도 호주로 데려와야겠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결심은 더욱 굳혀졌다.
"너부터 살아야지. 그래야 모두를 살릴 수 있어."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주는 것만 같았다. 비행기의 안내방송에도 위급상황에서는 나부터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주변을 도우라고 했다. 모두가 죽느니 나부터 살고 남을 구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었다. 그렇게 숨 막히던 한국에서 벗어나 제대로 숨을 쉬기 위해 나는 다시 호주를 선택했다. 생각이 정리되면서는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물론 매 순간 어쩔 수 없이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비행기의 안내방송처럼 나부터 살아야 한다는 지침이 나를 붙잡아주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로 호주땅을 밟았다. 잠깐의 자유 뒤에 더 험난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