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우리는 운명일까?

운명을 선택했다면 책임은 네 몫이야.

by 박세미

"이번엔 좀 다를 수 있을까?"


2007년 7월, 두번째로 호주에 발을 디뎠다. 겨울이어서일까? 폐 깊숙이 들어오는 서늘하지만 깨끗한공기에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상하리만치 안도감도 들었다. 아무리 1년을 살아봤다지만 그래도 내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인데 말이다. 신기한 일이었다. 유럽, 일본, 캐나다 등 다양한 나라를 다녀봤지만 이런 편안함을 느낀건 호주가 처음이었다. 호주가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 순간이었다.첫번째와 달리 두번째에는 시드니에 도착했다. 앞으로의 삶을 보낼 도시로 시드니를 선택한것은 워킹홀리데이때 느꼈던 강렬한 매력 때문이었다. 2004년 처음 도착했던 브리즈번은 작고 깨끗한 평화로운도시였다. 그리고 시드니, 멜번, 애들레이드까지 호주 대도시들은 모두 머물러보았다. 그중에서 시드니가 가장 좋았던 이유는 바로 '에너지'였다. 브리즈번이 여유를 가진 도시였다면 멜번은 감성을 가진도시, 그리고 시드니는 비지니스의 중심이면서 관광객들로도 넘쳐나는 엄청난 활기를 지닌 도시였다. 웅장한 하버브릿지 아래에서 오페라하우스를 보며 감탄을 하다가도 고개를 살짝 돌리면 고층 빌딩들이 즐비했다. 멋진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사이에 점심시간에 여유를 즐기는 비지니스맨들이 펍에서 맥주를 한잔 들이키고있었다.





사람이 많다보니 기회도 많았다. 집구하기도 쉬워서 금세 쉐어하우스의 주인이 되었다. 일자리도 넘펴났다. 하지만 왜일까? 도착하고나서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싶지가 않았다. 뭐든지 열심히 해야하고 돈을 벌어야하고 누군가를 책임져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내가 말이다.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삶에서 해방되고나니 그냥 그렇게 온전한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나보다. 처음 몇달간 틈날때마다 워킹홀리데이때는 가보지못했던 명소들을 다녔다. 오페라하우스에서 보타닉가든을 지나 시티로 마냥 걸어도 가보고 본다이비치에서 피시앤칩스를 먹고나서 한참을 앉아있기도했다. 일일관광으로 포트스테판과 블루마운틴도 그때 처음 가보았다. 집에서는 시간이 날때마다 책을읽고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장을봐서 요리를 하는걸로 하루를 채웠다. 신기했다. 이 모든순간이 나에게는 사치였다. 이래도 되나 싶은정도로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왔다. 가끔 쉐어생들과의 불편한 마찰은 있었지만 그런건 내가 겪어오던 고통에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슬슬 욕심이났다. 여기 아예 살아버리면 어떨까? 유학생이 아닌 영주권자로. 어찌보면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장치를 하나 마련해두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만큼 시드니는 정말 너무나도 매력적인 도시였다. 호주사람들은 드넓은 대자연속에서 기회를 마음껏 누리며 여유를 누리고있었다. 출근 전에는 러닝을하고 9시에서 5시까지 딱 정해진시간만 일을하고 주말에는 서핑을하러 해변으로 향했다. 마음만 먹으면 돈을 벌 수 있었고 그걸로 제대로 즐길 수도 있었다. 성실 빼면 시체인 내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돈을 벌 수 있을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호주사람들의 여유있는 마인드를 너무나도 배우고싶었다. 평생 불안한 집에서 살았고 사춘기때부터 돈걱정을 하며 살던 나에게는 배운다고 쉽게 장착될 수 없는 태도였다. 돈보다도 그러한 태도와 자세를 배우고싶었다.




'네가 원한다면 나는 두 팔을 내어줄 수 있어. 하지만 너 스스로를 일어야해.'


몇달을 여유롭게 지내고나서 결국 결단을 내렸다. 이민을 준비하기로. 운명처럼 다가온 시드니에서 평생을 살기로. 이민의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다. 하지만 그걸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않았고 앞으로 몇년은 워킹홀리데이때보다 더 힘들게 살아야만했다. 학비를 모아야하고 남는시간엔 영어시험을 준비해야하고 거기에 경력을위한 일까지 제대로 해내야했다. 주변 영주권자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엄청난 고생길에서 벗어나서 다시 고생길에 올라야하는 상황. 하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바로 일을 시작했다. 시드니에있는한인들을 대상으로 영어문법 과외를 시작했다. 시작부터 대성공이었다. 소개에 소개가 이어져 금방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영주권을 따기위해 미용학교에 등록했다. 그게 가장 쉽고 빠른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영주권을 따기 위한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더 큰 변화가 내 삶에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것은 계획에도 없었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던, 하지만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경이로운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