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불안한 엄마의 탄생] 불안한 엄마인생의 종지부를 찍다.
첫째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도 학부형이 되었다. 워낙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을 거부했던 아이는 처음부터 애를 먹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남편과 둘이 오롯이 육아를 하며 생기게 된 육아정체성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단단하게 붙들어줬기 때문이다.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 아이는 금세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사회성이 없어 친구도 제대로 못 사귀고 집중력이 떨어져 자주 지적을 받았지만 적어도 학교에 가는 걸 거부하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보내오는 사진 속 아이의 모습도 점점 밝아졌다.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하는 동안 나도 자연스레 친구 엄마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늘 정보나 참여가 부족한 워킹맘이었기에 가능하면 모임에 나가려 노력했다. 역시나 잘못된 결정이었다. 엄마인 나의 그릇이 크고 탄탄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던 나머지 주변환경에 금세 와르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모임에서는 아이 학교생활과 사교육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아니, 사교육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게 더 맞을 거다. 고작 일곱 살, 마음껏 놀아도 부족한 나이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대화가 늘 아이의 미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OC(Opportunity Class, 초등 영재반)와 Selective High School(특목고)이라는 제도가 있는지도 거기서 처음 알았다. 왜 벌써부터 아이의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첫아이를 키우는 미숙한 엄마였던 나는 우리 아이도 당연히 그러한 과정을 밟아야 하는 거라 믿게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가 나처럼 고생만 하며 평생을 살 것 같았다. 더군다나 큰애는 학업에 두각을 드러냈고 사교육을 하지 않았음에도 매년 교장상을 받으며 학년을 마무리했다. 주변에서는 이런 애를 공부시켜야 한다며 나에게 사교육을 강력하게 권했다.
결국 입시학원에 등록을 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에는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이사도 했다. 남편이 엄청나게 반대를 했지만 천재를 둔재로 만들 수 없다며 나 또한 강하게 밀어붙였다. 입시학원의 커리큘럼이나 교재는 내가 보기에도 엉망이었지만 바쁜 내가 가르칠 수는 없었기에 그냥 보냈다. 아이도 좋아하는 것만 같았다. 학원숙제를 하는 아이와 함께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무언가 꿈꾸던 순간을 맞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것만 같았던 어느 날, 남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첫째와 둘이 있을 때 남편이 아이에게 학원을 다니는 게 좋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아이의 대답은 육아의 방향성을 다시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나는 싫은데 엄마가 좋아해서'
계기는 또 있었다. 아이가 학교와 학원에 잘 적응을 하는 듯 보이자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평소 사람의 몸과 건강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의대에 진학학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이미 자녀 둘을 호주 대학에 보낸 언니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평소 친하기도 했고 엄청나게 의지를 했던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나의 꿈을 응원하고 의대 입시에 도움을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언니의 조언이 너무나도 예상 밖이었다. 아니 충격적이었다. 덕분에 나는 그동안 해왔던 육아방식을 전부 포기할 수 있었다.
"지금 아이가 OC입시를 앞둔 중요한 시기에 네가 대학을 간다고? 그럼 애 입시는 어떻게 하려고. 애 학원 드롭이랑 픽업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숙제도 봐주고 엄청나게 서포트해줘야 하는 거 알지? 그런데 네가 대학에 간다고?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