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부가부가 없네

[1부, 불안한 엄마의 탄생] 육아의 정체성을 잃었다.

by 박세미

첫째가 두돌이 될 무렵, 둘째가 태어났다. 첫아이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던 내가 둘째를 낳게 된것이 참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둘째 생각은 없냐, 두살 터울이 제일 좋다, 나중에 부모 죽고나면 외동은 외롭다라는 어른들과 주변사람들의 말에 아무생각없이 자녀계획을 세웠다. 바로 덜컥 둘째를 임신했고 순식간에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자연히 엄마를 독차지하던 첫째의 질투심은 극에 달했고 육아에 지쳤던 나는 둘째를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했다. 우스웠다. 아이를 간절히 바라고 아이라는 존재를 너무 사랑해도 제대로 키우기 어려운데 그저 남들의 말에 인생에서 큰일을 결정해 버린것이다. 무책임한 결정을 해버린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도 남들이 기준이되는 육아는 계속 이어졌다.


당시에는 아이 친구 엄마들과 자주 만났다. 주로 큰애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둘째 플레이그룹이 끝나면 같이 차를 마시거나 점심을 먹는 식이었다. 대화의 대부분은 아이 사교육과 육아템에 관한 것이었다. 이맘때쯤엔 이걸 해야하고 이걸 사야하고 이정도는 해주어야한다식는 대화가 주로 오고갔다. 그리고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은 자연스레 내 육아의 기준이 되었다. 당시 그 모임에 오던 엄마들 대부분이 부가부 유모차를 끌고다녔다. 너도나도 그 브랜드에서 나온 2인용 유모차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아니면 최소한 휴대용 유모차라도 해당 브랜드제품을 써야한다는 의견이 강했다. 그런데 나만 그 유모차들이 없었다. 아니, 살 형편이 안되었다는게 정확한 표현인것 같다. 유모차 한대 값이 우리 집 한달 생활비와 맞먹었기 때문이다.


더 슬픈건 나였다. 솔직하게 형편이 안되어 살 수 없다고 이야기했으면 나았을것을 해당 유모차의 단점을 늘어놓으며 안사는 이유를 거들먹거렸다. 가난해서 못사는것보다 일부러 안사는척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못해 비참했다. 비단 유모차 뿐만이 아니었다. 고가의 육아템도 없거니와 남들 다 보내는 사교육도 해줄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되려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이 부모를 잘못만나 뒤쳐지는것만 같았다. 정작 아이들이 원한것도, 심지어 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것도 아니면서 남들의 기준에 따라가지 못하는걸 괴로워했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자신들을 사랑해주는 엄마가 필요했을텐데 말이다. 그렇게 비교에서 시작된 육아는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 찬 부정적인 엄마로 나를 변화시켰고 육아 정체성이 없던 엄마의 심각한 방황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남편의 일이 바빠지면서 남는시간에 남편일을 돕게 되었다. 심지어 동네까지 이사를 하게되니 그 모임에서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정보력이 떨어져 뒤쳐질것만 같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남편과 같이 일하며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자연스레 육아고민을 남편과 나누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서서히 나만의, 아니 우리만의 육아세계관과 원칙이 생기게 되었다. 부부가 중심이 되면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자라는것에 초점을 맞추는 육아 말이다. 우리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육아정체성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또다시 위기가 찾아오게 되었다. 큰아이가 학교에 가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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