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행복한 엄마가 되는 길] 아이도 부모도 성장의 기회가 된다.
엄마로서의 정체성도 생기고 나만의 육아방식을 가지면서 아이를 키우는것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불안한건 있었다. 바로 사춘기. 큰애들이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나도모르게 걱정이 시작되었다. 호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고 첫째와 둘째가 아들이라 나와 성별이 달라 다가올 아이들의 사춘기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늘 걱정이었다. 심지어 엄마인 내가 사춘기 열병을 심하게 앓았던지라 내색은 안했지만 마음속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제 발 저린것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큰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부터 속된말로 개과천선을 했다. 말수가 적어지면서 신중하고 의젓해지고 타인에대한 배려심과 이해가 생기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친구관계가 좋을 뿐만 아이라 성적도 상위권이라 주변 학부모들이 너도나도 우리아이와 친해지기를 원했다. 저학년때는 집중도 잘 못하고 사회성이 부족해 늘 학교에 불려가기 일쑤였다. ADHD를 의심받 소아정신과 상담을 여러차례 받기도 했다. 그랬던 아이가 점점 학년이 올라가면서 바뀌더니 어느순간부터 시키지도 않았는데 동생들을 돌보고 엄마아빠의 힘든부분을 파악해서 도와주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며 기대도 안했던 일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벌어지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반면 둘째에게는 사춘기라고 특정지을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장난기가 심했고 말썽도 많이 부렸던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던 터였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감정조절이 잘 안되는지 별거 아닌일에 화를 낼때도 있었고 본인의 의견에 반대하면 말대꾸를 하기도했다. 솔직히 주변에서 들어본 사춘기 증상에비해 강도는 상당히 약했다. 하지만 큰아이에 비하면 부모로서 당황스러운 순간들이기는 했다. 그래도 미리 나 나자신과 약속한대로 아이의 질풍노도시절이 잘 지나가도록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도 좀 심했다 싶은적도 있었다. 하루는 같이 요리를 하는데 내가 카메라로 찍으려하자 둘째가 불같이 화를냈다. 인플루언서인 내가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모습을 올릴까봐 걱정이 되었었나보다.
"니가 원하지 않으면 엄마가 너를 찍거나 그걸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을게. 그런데 그렇게 화를 내니까 엄마가 너무 당황스럽고 속상해."
순간 아이의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으니 최소한 내 감정이라도 제대로 분명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며 기다려 준 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오히려 잘 한 행동이었던것 같다. 나조차도 누가 옆에서 말만 걸어도 짜증이 나던 시절이 있었다. 본인도 이해못하는 감정과 신체의 변화를 하나하나 이유붙여가며 설명하고 이해하고 바로잡아봐야 무슨 소용일까? 아직도 기억이나는 나의 사춘기시절을 돌이켜보며 그저 아이를 믿고 변화의 시기가 잘 지나가기를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불과 몇달정도 지났을까? 둘째는 언제 사춘기였냐는듯 밤마다 차를 타다주고 엄마 침대 옆에 누워 재잘거리는 아이로 돌아왔다. 커진 몸집만큼 마음도 넓어지고 엄마인 나를 이전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것 같다. 제일 무섭다는 중2 시기에 다행이 스쳐 지나가듯 사춘기를 겪은 것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화를내고 감정이 주체가 안되어 본인들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것이다. 정신은 물론 몸까지 급변하는 시기라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걸 그대로 인정해주고 믿어주고 기다려준다면 아이의 인생에서 안정된 정서가 한번 더 각인되는 순간이 될것같다. 어찌보면 사춘기는 아이가 성장하는 시간임과 동시에 부모도 인간관계에서 내려놓는법을 배우는 시간인것같다.아직 사춘기가 될 두명의 아이들이 더 남았다. 이번엔 딸들이다. 솔직히 아들들보다 더 긴장되는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딸들의 사춘기에는 다른 무엇보다 아픈 사춘기를 겪었던 과거의 나까지 보듬어주며 잘 지나가 볼 생각이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오히려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