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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Oct 20. 2022

엄마도 자라는 중.

들어가는 말- 오늘도 치열하게 성장하는 중입니다.

 2008년, 스물여섯 어린 나이에 첫아이를 임신한 그때부터 2023년인 지금까지 나는 16년째 엄마로 살아오고 있다. 인생의 삼분의 일 이상을 할애한 그 시간 동안 또 다른 네 명의 인생을 낳았다. 나를 처음 엄마로 만들어 준 고마운 첫아이는 2009년 품에 안았다. 현재 13살인 큰아들은 중2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다정하고 유쾌한 사춘기를 보내는 중이다. 2년 뒤 만난 둘째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태어나 그와는 정 반대의 행동을 자주 하며 크는 중이다. 말썽도 많고 늘 둘째라서 서럽지만 그만큼 정도 많고 사람 냄새나는 11살 아들이다. 남자들로만 가득 차 무채색으로 변해가던 내 세상을 핑크빛으로 물들여준 셋째 딸은 2016년 선물처럼 만났다. 세상이 재미와 행복으로 가득 찬 부러운 인생을 사는 6살이다. 우리 집안의 막내인 넷째는 2020년에 코로나베이비로 태어났다. 무려 네 번째이지만 가장 키우기 어렵게 느껴지는 딸은 온 집안의 관심과 사랑을 독식하는 26개월 아기이다. 이렇게 다양한 나이와 캐릭터를 가진 아이들과 부대끼며 오늘도 치열하고 아름다운 엄마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네명의 인생을 만들어냈던 순간들




 마치 성장에 잠재능력이 있는 듯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다행히도 자라는 속도나 결과치는 엄마인 나의 정성과 노력에 정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다. 가장 미숙한 엄마의 모습을 한 채 키운 첫째가 내 키를 뛰어넘은 게 벌써 몇 년 전이니 말이다. 아이들은 비단 몸만 성장한 게 아니었다. 마음도 그만큼이나, 아니 더 근사하게 자랐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은 어른인 나보다 따스하고 이해나 배려도 나보다 넉넉할 때가 많다. 작은 입에서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 그 어떤 명언보다 그럴싸하게 들릴 때도 있었다. 제대로, 잘 크고 있구나 싶어 뿌듯하기도 하다가 어른임에도 아이만도 못할 때가 많은 내 모습에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싱그럽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나만 제자리에 멈춰있는 것만 같을 때가 많았다. 아니, 슬프게도 점점 예전보다 별로인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허다했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나 자신에게 지쳐갔다. 나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한 채 엄마역할을 해내는 것이 솔직히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식을 가진 생명체이다 보니 나에게도 모성이라는 게 자리 잡고 있어 지쳐 떨어져 나갈 때마다 나를 오뚝이처럼 다시 일으켜주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기고 보면 늘 감사했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도 찬란하기 그지없는데 네 명의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가장 큰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미약했던 내 존재가 가치 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늘 잔잔한 호수이고 싶었지만 바다와 같았던 내 마음의 파도는 시도 때도 없이 요동쳤다. 엄마라서 행복하지만 어두운 파도가 나를 덮칠 때마다 엄마라서 불행했다. 그때마다 인생의 그늘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점점 더 큰 빛을 내며 반짝이는 아이들의 성장에 내 인생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느낌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내가 인생의 주인공인 것 마냥 무대를 장악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박세미'라는 이름 대신 '누구 엄마'로 불리는 게 점점 어색해지지 않게 되자 아득해지는 예전의 내 모습에 아파하곤 했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뭐라도 해서 나를 붙잡아야만 했다. 식구들이 깨어있는 시간에는 자연히 주위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에 모두 잠든 밤이 되면 나와 오롯이 마주하려 노력했다. 지쳐 쓰러지듯 잠든 날이 많았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가졌다. 주제가 육아와 가족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머릿속 생각을 들여다보고 정리하고 기록하기를 반복했다. 내 몸도 보듬어주기 시작했다. 마음의 근육과 함께 몸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틈틈이 운동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까운 거리는 일부러 걸어 다니고 내 몸속에 들어가는 음식도 한 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의 커리어를 만들어 준 사업도 그맘때쯤 첫발도 내딛게 되었다. 엄마라는 타이틀이 아닌 내 이름 석자를 내걸고 일을 하며 다른 세상 속에서 새로운 공기를 마시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희미했던 나의 모습을 되찾는 노력을 해왔던 것 같다. 




 작은 노력이 하나씩 쌓이면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살려고 발버둥 치듯 붙잡았던 시간들이 결국 나의 정체성을 찾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인간이자 여자이고 엄마이자 아내인 나라는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이고 어떤 것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 속에서 작게나마 목표와 꿈도 생겨났다. 소중하게 발견한 인생의 목적지를 잊지 않기 위해 자주 들여다보고 그곳에 가까이 가기 위해 조금씩 움직여나갔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까지 더해지게 된 것이다.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큰아이가 아기태를 벗을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가 중심축인 일상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미세한 나의 성장 발견한 것이! 큰 업적을 일궈낸 자기 계발서의 주인공들처럼 화려하지만은 않지만 나도 엄마로서 조금씩 자라 온 것이었다! 




 정말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정작 나는 모르고 있었다. 녹슬어버린 몸과 상처받은 마음만 알아챘지 엄마인 나 자신의 변화는 발견할 줄 몰랐다. 지옥과 전쟁터에 비유되는 육아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참 용기 있는 선택이었고 엄마의 자리를 지켜온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일이었던 것 같다. 책임지고 지켜냈고 도망치기보다는 버텨내는 걸 택했기 때문이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 나를 희생하며 다른 사람의 생명과 인생에 진심을 다하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신이 모든 곳에 함께할 수 없어 엄마를 보냈다'는 말이 과연 틀린 말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강한 책임감이나 목표의식이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신의 영역에 비유되는 일들을 해왔음에도 그걸 너무 당연하게 치부했었다. 엄마인 나의 삶을 엄마인 내가 너무 비하했던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엄마인 나를 인정해 주기 시작하자 세상은 완전히 다르게 바뀌어갔다.




 결국 엄마가 되고 나서 세상을 보는 눈도, 마음도, 자세도 바뀌게 되었다. 좀 더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려 했고 이해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래서인지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은 더 나은 어른이 된 것 같다. 어찌 보면 아이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조금씩 성장했던 것은 아닐까? 이걸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고통라고 여겼던 지난 시간들이 조금은 다르게 받아들여졌을 텐데 아쉽기도 하다. 일종의 성장과정이라고 받아들였으면 이겨내기가 조금은 수월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그 모든 순간은 사진도 찍고 글도 남겨가며 나중을 위해 기록해 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데 왜 엄마인 나의 성장 기록은 없는 걸까? 사진첩 속에는 아이들 사진으로 넘쳐나고 육아일기에는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가득한데 엄마인 내 삶은 어디에 저장되고 있는 걸까?




 그래서 나는 직접 기록으로 남겨보기로 했다. 엄마가 되면서 만나게 된 새로운 세상과 그 안에서 자라 온 내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엄마 성장보고서'라고 이름을 붙였다. 왜 엄마가 되고 싶었는지, 어떻게 엄마가 되었는지, 엄마로서 얼마나 성장해 왔는지 기억을 더듬어보기 위해 16년도 더 된 그때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엄마 인생의 햇수가 늘어나면서 지나온 발자취를 기억 속에서 산책하듯 걸어보고자 한다. 이렇게 남겨진 나의 소중한 추억들이 내 아이들에게 꼭 전해졌으면 한다. 엄마인 내가 그들과 함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처럼 들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다른 엄마들과도 함께 추억의 시간을 걷는 듯 이 책을 통해 소통하고 싶다. 동지애를 가지고 동병상련을 느끼며 지난 시간을 수다 떨듯이 말이다. 자, 이제 기록을 시작해 볼까? 스물여섯의 내가 처음 엄마가 되었던 그때로 돌아가 본다.

16년 엄마인생의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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