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될 준비-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나는 왜 엄마가 되고 싶었을까?"
엄마 인생 16년 차,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던 질문이다. 처음 엄마가 되고 싶다 했을 때 주변에서 누군가 물어봤다면 내심 무례하다 느꼈을지도 모를 질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중요하다 느껴지는 이 질문을 왜 이제야 떠올려본 걸까? 엄마로서 살아가야 할 인생의 나침반이 어디로 향할지 갈피를 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성장 기록의 첫 페이지를 시작하기 위해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엄마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사실 이 거창한 질문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2007년 결혼 직후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시드니로 이민을 와서 정착하던 시기였다. 남의 나라에 새 삶을 꾸리는지라 시간도 돈도 마음도 여유가 없어 아이를 낳는 건 남의 일만 같았었다. 한데 친한 친구가 임신소식을 알렸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에는 설렘과 떨림이 담겨 있었다. 축하를 전하고는 전화를 끊었는데 부러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내 친구들 중 임신한 친구는 처음이었다. 아직은 멀었다 생각했었는데 친구의 소식을 들은 이후에는 임신이 내 일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혼기가 차면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는다는 사회적 통념에 아무 생각 없이 동참하는 순간이었다.
원래도 나는 그랬다. 호기심이 생기면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다가도 내 안의 지독한 냄비근성이 과열된 온도만큼이나 관심을 빠르게 식게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사그라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나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엄마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내 아이는 정말 예쁘겠지? 아이는 몇 명이 좋을까? 뜬구름 같았던 질문들을 반복하다가 26살의 나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파악하지도 못했을뿐더러 함께 아이를 낳고 기를 남편에 대한 이해나 믿음도 턱없이 부족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게 될 가정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사진 같은 건 물론 없었다. 그런 내가 한 사람을 낳아 키운다니!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중대한 인생의 결정을 나는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성급하게 내렸었다. 둘째를 가지려고 했을때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서 둘째를 임신하는 소식이 들려오자 큰아이에게 형제자매를 만들어주어야할것 같은 괜한 조바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두번째 가족계획을 세웠고 바로 그달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셋째는 계획이라는 자체도 없이 사랑이 넘치는바람에 흔히들 말하는 '실수'로 찾아왔다. 다행이 아들만 둘 있던 집에 딸로 찾아와주었지만 말이다. 넷째를 가지고싶다고 생각했을때는 30대 후반이었는데 이제 나이 들면 더 이상 아이를 못 낳게 될까 봐 마지막으로 도전해보고 싶었다. 셋째딸을 키우며 너무나도 행복한 엄마인생을 보냈기에 넷째도 딸이었으면 했는데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별다른 거창한 계획없이 네 아이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정말 철이 없었다. 엄마인생의 해를 거듭할수록 생겨난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아마 원동력이었을 거다. 이런 걸 흔히들 근자감이라고 했던가!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한도초과의 상황 속에서 '내가 도대체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라며 식상한 푸념을 털어놓고는 했다. 그러고는 인생의 중대사를,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네번이나 성급하게 결정했던 나를 자책했다. 특히 코로나시대에 진입했던 2020년 초 임신을 결심해서 그해 마지막달에 막내를 낳았을 때는 주변의 책망도 많이 들었다. '이미 있는 아이들이나 잘 키우지 왜 또 낳는 거야? 코로나 때문에 위험한데 아기를 낳겠다니 생각이 있는 거야?'라며 많이 들 만류했다. 그럴때마다 보란듯이 잘 키울거라는 오기까지 생겼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오랜 시간 지속된 코로나 상황에서 나의 오기는 오만으로 판명났다.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홈스쿨링을 도우며 네명의 아이들을 먹이고 살림까지 해야하다보니 속된말로 딱 지옥이었다. 성급한 결정에대한 벌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상황을 알고 다시 첫아이를 임신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나는 다른선택을 했을까? 나 자신이 어떤사람인지 알아보고 가족에대한 미래를 계획하고 그에따른 준비를 마쳤을때 아이를 가지겠다고 결심했을까? 그랬다면 내 결정에 후회하지 않고 만족했을까? 이 또한 아닐 거라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쉽게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렇다고 대충 하지는 않았다. 말로만 어른이었지 모든 것에 미숙했지만 핏덩이가 내 가슴팍에 올려진 그때 다른 건 몰라도 이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겠다 결심했다. 현실 육아는 그동안 글로 배운 육아와는 차원이 달랐고 매 순간 엄마 역할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깊숙이 자리 잡은 모성이 나를 일으켜 세웠고 결국 아이 옆을 지키며 버텼다. 육아전쟁으로 긴장감이 휘몰아쳤던 하루를 보내고 휴전상태인 밤이 되면 처참하게 널브러진 나를 위로는 못할망정 더 잘 해내지 못함을 자책했다. 그러고는 아침이 되면 전장에 나갈 채비를 하듯 몸과 마음을 다잡아 다시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려 애썼다.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렸고 그에 책임을 졌으며 잘 해내려고 노력했다. 삶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엄마가 되어 나도 모르게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니 특별한 이유나 계획이 없다 해도 엄마가 된다는 건 참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어마어마했던 출산의 고통도, 가슴팍을 찾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던 순간도, 잠 못 자고 지새우던 새벽의 시간도, 아이와 함께 웃고 울던 모든 나날도 다 나름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철없던 한 엄마의 결정이 네 명의 반짝이는 인생을 만들어냈고 자신도 함께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왜 엄마가 되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건 몰라도 16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좀 더 나은 어른이 되었다는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다양한 육아현장에서 이 초심을 늘 가슴에 품을 것이다.
엄마 성장 보고: 왜 엄마가 되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