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 조각

쉽게 볼 수 없는 문화의 힘

데스노트 Death Note, 2017

by 박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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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보통 영화, 공연, 음악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나라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문화생활을 장려하고, 연인들은 식상한 데이트 코스로 영화 관람을 꼽는다. 그 정도로 '문화생활'이라는 단어는 꽤 보편적으로 쓰이며 우리 삶에 가깝게 자리해 있다.


하지만 물속에서 사는 사람은 물 귀한 줄 모른다고, 이 문화란 것이 얼마나 영향력이 큰지 평소에는 실감하기 어렵다. 사실 문화는 단순히 영화나 음악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이것들은 굳이 말하면 문화의 산출물이라 할 수 있겠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문화를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 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단어의 정의도 간단하게 하지 못할 만큼 문화의 속성은 다양하고, 그만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매체가 바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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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스노트>는 일본의 만화가 원작으로, 미국에서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동명의 일본 영화에서 대부분의 설정과 줄거리를 따 왔는데, 문제는 바로 거기서 발생한다.

어떤 작품을 리메이크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같은 결과물을 기대하지 않는다. 리메이크 한 사람의 감성이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원작과의 차이점은 무엇일지에 집중한다. 새 작품보다 리메이크작을 성공시키기 힘든 이유는 보다 신경써야 할 점이 많기 때문이다. <데스노트>의 실패는 리메이크작의 기본을 저버린 데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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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극을 이끌어가는 두 인물 중 L은 히키코모리다. 이는 일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고유한 인간 특성으로, 일본을 제외한 국가에서는 그대로 재현해내기 쉽지 않다. 히키코모리라는 것은 인간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문화, 분위기가 더해져 완성된 유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스노트>의 L은 일본의 L도, 미국의 L도 아닌, 캐릭터를 파악할 수 없는 누군가다. 히키코모리의 특성을 구현하기 힘들어서 L의 성격을 180도 비틀어 해답을 찾으려 했던 것 같지만, 그럼에도 원작의 L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면서 주인공의 매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원작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이유 없이 일본어가 등장하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라이트는 '키라'라는 이름을 정하며 일본어로 킬러라는 뜻이라는 이유를 붙이고, 어떤 사망자는 일본어로 유서를 쓰게 한다. 인물이 평소에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단지 원작이 일본 작품이어서 그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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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이게 미국 작품임을 알 수 있는 설정은, 류크가 데스 노트 사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이다. 미국 공포영화엔 꼭 악령이 등장하는데, <데스노트>에서 류크가 그 역할을 한 것이다.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을 전혀 담아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충분한 공부와 연구가 필요할 뿐. 감독은 새로운 문화를 가져오면서 이에 대해 파악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결과물을 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감독은 과연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일본에서 성공한 시리즈를 미국화 하고 싶었을까? 미국에서도 일본 감성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안타깝게도 감독은 둘 중 어느 것도 해내지 못했다. 고유의 문화가 가진 힘을 간과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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