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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Apr 01. 2024

버스

3월 30일 토요일

일곱 시면 일이 끝난다. 이제는 해가 길어서 통창 너머 거리는 짙게 푸르다. 같이 일한 형과 인사를 나누고 거리로 향한다. 집에 갈 시간이다. 버스는 20분 후에 출발한다.


애매하게 비어있는 터미널, 빈 의자를 찾아 앉았다. 사람들 목소리가 들린다. 대화가 아닌 목소리만 들린다. 소리만 들린다. 분주한 마음만 들린다. 출발하는 소리가 들린다. 도착하는 소리가 들린다. 연인들의 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보지 않는 TV소리가 들린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누군가에게 들릴까. 다들 어디론가 향한다.


집에 가야 한다. 매주 본가로 내려간다. 집 가는 버스를 가만히 기다리고자면 이내 억울한 생각이 들곤 한다.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와는 무관한 마음이다. 집에 가기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차, 난 이 말이 참 싫다. 스스로에 책임을 떠넘기는, 내가 책임을 유기하고, 내가 주워 담아 짊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주문처럼 외우며 '집에 가자' 스스로에 다독인다.


버스는 제시간에 오는 법이 없다. 밖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목소리가 들린다. 역시 대화가 아닌 소리만 들린다. 인사 소리, 아쉬운 소리, 꼭 껴안는 소리, 살결이 맞닿다 떨어지는 소리, 발소리, 웃음소리, 버스가 오고 가는 소리, 나도 누군가에게 들렸을까.


버스에 탔다. 맨 앞자리에 탔다. 맨 앞자리는 넓어서 좋다. 버스가 달린다.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불이 꺼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밝기를 낮춘다. 창문너머 도로가 보인다. 차들이 보인다. 앞서가는 차, 뒤쳐지는 차. 다들 어디론가 향한다. 다들 어디로 향하는 걸까.


버스는 전주로 향한다. 버스는 집으로 향한다. 같은 버스를 탄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내 뒤로 늘어선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버스를 탄 걸까. 어떤 마음으로 가는 버스를 탔을까. 버스는 빠르게 달린다. 내 마음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빠르게 달린다. 나는 여전히 자판을 두드린다. 버스는 달리고 나는 자판을 두드린다.


써버릇하는 습관은 굳은살처럼 배겼다. 나는 솔직한 사람이 됐다. 무척이나 솔직한 사람이 되었지만, 항상 거짓말을 한다. 솔직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감추는 사람이 됐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다. 이내 감춰지지 않는 마음을 다 안다. 나는 무척이나 솔직한 사람이다.


시간은 아홉 시를 향한다. 짙게 푸른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둘러싼 어둠에 불빛들은 지나친다. 나는 버스 안에 있다. 집에 가는 중이다. 내일이면 집을 떠난다. 다시 학교로, 기숙사로, 일터로, 소리들로 둘러싸일 것이다. 그 사이에서 웃고, 찡그리고, 활짝 웃고, 깊이 찡그릴 것이다. 오늘 밤에는 기도를 하고 자야겠다. 더 잘 듣고, 더 많이 보고, 더 깊게 생각하게 해달라고. 집에 가는 마음에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해달라고.


버스는 달린다. 이제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버스만 달린다.


버스는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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