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시현 Mar 27. 2024

면접

3월 8일 금요일

불안은 때때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원동력이 되곤 하지만, 방향 없는 조급함은 나아가는 길을 엉킨 실처럼 꼬아버린다.


알바 면접을 봤다. 한 로스터리 카페의 파트타이머로 지원을 했다. 단지 멋져 보이는 일이 하고 싶었고 마침 공고가 올라와 가벼운 마음으로 이력서를 작성하고 면접장소로 향했다.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는 손님이 몇몇 있었다. 회사 상권에 위치한 카페였던 터라 사장님으로 보이는 사람은 분주하게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나를 보고선, 필터를 내리려다가, 중간에 들어온 주문에 스팀을 치다가, 샷을 뽑다가, 이래저래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잠시 앉아있으라고 했다. 매장은 붐비진 않았으나 테이블에 짐이 하나씩은 올려져 있어 나는 테이블과 선반 사이 욱여있는 작은 의자에 구겨지듯 엉덩이를 붙였다. 그게 사건을 발단이었다.


사장님이 손님 응대를 마치고 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왜 그렇게 구석진 곳에 앉았냐며 실소를 날리며 웃었다. 나는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그가 가리킨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도 내 앞에 앉았다. 준비한 이력서를 휙휙 넘기고선 질문을 시작했다. 바리스타로서의 자질 혹은 기술에 앞서서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공격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고등학생 때의 일, 군대에서의 일, 전역 후 잠시 일했던 유니클로에서의 일, 그 후 떠났던 워킹홀리데이에서의 일, 지금 무슨 꿈을 갖고 있는지, 그 꿈을 어떻게 준비해나가고 있는지, 왜 그 꿈을 꾸고, 카페에서는 왜 일하고 싶은지, 나는 속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그의 막무가내식 질문에 나도 막무가내로 받아쳤다. 그의 표정을 읽고 나는 더 아득해졌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에디터라고 대답했다. 무슨 에디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마음에도 없는 패션에디터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언제 그 꿈을 가졌냐는 질문에 나는 군대에서부터 책 읽는 습관과 글 쓰는 습관을 들였다고 돌려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군대에서 어떤 책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 물었다. 나는 프리워커스라고 말했다. 모베러웍스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들에 관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브랜드를 가장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애플과 프라이탁이라고 말했다. 횡설수설 애플과 프라이탁을 설명했다. 스티브잡스가 어쩌고, 프라이탁 형제가 어쩌고, 그래서 나는 어쩌고, 제대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도 내 대답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는 핸드폰을 이리저리 스크롤하며 내 말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오늘 신고 간 문스타라고 말할걸.


이어서 커피로 주제가 흘렀다. 전에 일했던 카페에서의 경험은 어땠는지, 지금까지 먹어본 커피 중 어떤 커피가 가장 좋았는지, 스몰토크를 좋아한다고 한다면서 그닥 외향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데 정말인지, 본인 카페는 어떻게 알았는지, 대전의 또 다른 카페서 커피를 마시고 원두를 샀는데, 남의 가게 레시피는 도대체 왜 받아왔는지, 커피 내려마실 때 본인 레시피 따위는 없는 건지, 대화는 흐르고, 흐르고, 흐르고, 내 마음은 기분 나쁜 습기로 가득 차고 입은 바싹 말랐다. 그렇게 쏟아지는 질문이 끝나고 그는 짧은 결론을 내렸다. 시골학교 전교 1등 같단다. 나는 전교 1등을 해본 적 이 없다. 결코 칭찬은 아니었다. 그는 내 궤변에 피드백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그 욱여진 의자에 앉은 대목에서부터 나에 대한 본인의 분석을 시작했다. 물론 테이블에 옷이 올려져 있어서 그렇다 쳐도 사람이 없는 큰 의자를 놔두고 구석진 의자에 앉은 것은 내가 눈치를 본다는 것, 본인이 커피 한 잔 마시겠냐는 말에 아메리카노를 먹겠다고 대답했는데, 왜 하필 쉬운 메뉴인 아메리카노였냐는 것, 필터커피 좋아한다고 말했으면 필터 달라고 말하지, 왜 굳이 아메리카노였냐는 것, 에디터가 꿈이라고 했는데 본인이 일부로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자 사실은 패션을 매개일 뿐이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 것, 인터뷰 중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력서에는 브런치 주소를 첨부하지 않았냐는 것, 본인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웬걸 애플이니 스티브잡스니, 프라이탁 형제니 등등의 궤변을 늘여놓냐는 것, 왜 스티브잡스처럼 자퇴를 하지 않았냐는 것, 나다운 삶을 살려면 스스로가 독립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력서 사진을 보니 머리를 밀었는데 왜 밀었냐는 것, 머리를 밀면서 모자는 왜 쓰냐는 것으로 나에 대한 그의 평가는 끝이 났다. 분명하고 싶은 말은 더 있어 보였으나, 시간이 없어 금세 마무리를 지은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질문이 점점 공격적이게 된 것도, 그 질문에 스스로 만족스러운 대답을 할 수 없었던 것도, 분하면서도 그가 나에게 해주는 말 하나하나가 자극이 되었던 것도 그간 방향이 없이 뭔가를 하려고만 했던 스스로의 자의식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는,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으나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에 혈안이었다. 쿨 해 보이고 싶고, 바쁜 사람처럼 보이고 싶고,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고, 무엇보다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자의식과 비교의식, 열등감에서 비롯된 허풍이었다는 것을 눈매가 날카로운 그는 내가 구석진 의자에 구겨 앉은 모습을 보고선 퍼즐을 맞추듯 내 치부를 드러냈다. 그깟 알바라고 말해버리면 나는 그에게 아직 속상하거나 화가 나거나 어이가 없거나 셋 다가 될 수 있겠지만, 그깟 알바라고 말해버리는 건 아직도 내가 잘났다고 생각해 버린 탓이다. 그는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집에 가려는 길에 그는 봉투 두 개를 꺼내서 각각 다른 원두를 담아주었다. 본인이 직접 볶은 원두라며 본인만의 레시피로 내려마시라고 손에 쥐어줬다. 원두를 손에 쥐고 터덜터덜 매장을 나왔다. 나한테 필요한 말들을 처음 보는 사람이 누구보다 가감 없이 어쩌면 화를 내면서까지 쏟아부었다. 인생의 선배로서의 조언인지, 본인을 투영한 마음에서인지 나도 그가 초면이었던 탓에,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방향 없이 떠돌던 나의 분주함에 적어도 마구잡이로 돌아가던 키를 손에 쥐어준 사람이었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쥐어준 원두 두 봉은, 스스로의 레시피로 커피를 내려 마시라고 당부한 앙칼진 목소리는 주체를 되찾고 어디로 향할지 결정하라는 공명으로 마음속 깊이 퍼졌다.


근데 좀 기분 나쁘긴 했다. 다시 생각하니가 어이가 좀 없다. 약간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건가. 뭐에 잠깐 홀린 건지, 그냥 나대로 살련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