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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Mar 26. 2024

화살

3월 4일 월요일

뱉은 말에 책임지겠다는 말만큼 무책임한 말도 없을 거다. 애초에 그럴 자신이 있는 사람은 그런 말 따위는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외국 영화를 보면 이런 표헌이 자주 등장한다. "I'm a man of my word" 내가 뱉은 말은 지킨다는 거짓말쟁이들의 클리셰. 주로 이런 대사를 하는 인물이 있으면 관객들은  단박에 알아차린다. 나중에 죽거나, 배신하거나, 그 둘 다거나, 어쨌든 좋지 않은 모양으로 극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가기 마련이다. 대(對) 데우스엑스마키나 같은 존재들.


언젠가 이런 말을 뱉었다. 쓰는 대로 살겠다고, 보란 듯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중이다. 모종의 용기가 없어서, 의지가 없어서, 게을러서, 환경 탓을 해야 해서, 여자친구가 없어서(?) 어쩌고저쩌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몇 번이고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내가 쓴 글이 특히 나를 써 내려간 글이 어떻게든 내 꽁무니를 좇을 거라고. 지키지 못할 말을 적은 책임의 화살은 보란 듯이 나를 향해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된통 후벼 파진 가슴에는 구멍이 나있고 나는 뚫린 가슴에 허덕이며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거짓말쟁이는 나였다.


복학을 했다. 복학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장 학교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익숙하지도 않고, 알바는 구해야겠고, 전공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지 않다. 되돌아보건대 나는 멋들어진 문장을 들먹이면서 하루하루에 심취해 있었지, 정작 가꿔야 할 미래는 안중에도 없었다. 조금만 부지런하고 똑똑했더라면 전과를 하거나, 편입을 하거나, 복수전공을 하거나,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갔거나 여하튼 그랬을 것이다. 오늘이 되어서야 드리운 대재앙의 그림자를 올려다봤다. 개강 전날 기숙사에 짐을 풀고 자리에 누웠다. 꽤나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깼다. 아침을 대충 챙겨 먹고 강의실로 향했다. 3년 만에 다시 밟아보는 대학교 보도블록은 많이 바뀌어있었다. 그마저도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강의실은 잘 찾아갔다. 그렇게 강의동에 몸을 집어넣고 강의실 의자에 엉덩이를 얹었다. 교수님은 발표와 토론을 좋아한다. 통 알아먹을 수 없는 용어를 써가며 해당 수업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겁이 덜컥 났다.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향하고선 노트북을 열었다. 검색창에 충남대학교 휴학이라고 쳤다. 일 년 휴학 더하고 차라리 편입을 하자. 재수를 하자. 자퇴를 하고 카페를 열자... 티피컬 박시현 불안 초기 증세가 시작된 것이다. 호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똑같았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호스텔에 짐을 풀고, 로비로 걸어 나와 한국 가는 항공편을 알아봤다. 떵떵거리며 집을 나왔는데 돌아가는 게 쪽팔린 줄은 아는지 부모님께 알리지는 말고 우선 표를 끊자는 계획을 세웠다. 바보 같은 놈. 다음날이면 없어질 감정이었다. 첫날 떠올린 시나리오대로면 나는 평생을 땅을 치고 후회했을 거다.


오늘 하루도 비슷한 레퍼토리다. 사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때보다 더 겁이 났다. 워홀이라 하면 난 진짜 돈 모으는 거나, 영어 실력 키우는 것은 둘째고 그냥 놀러 갔다. 목표가 하나 있었다면, 당시에 그린나이트라는 영화를 봤는데 '무용담 하나 없이 자리에 앉을 생각 하지 마라'라는 대사에 꽂혀서 브런치에 그런 글을 쓰고서는 뻘뻘거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다. 기껏 세운 목표가 무용담 만들어 오기였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데미안을 읽고서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 어쩌고 뭐'를 카세트 플레이어 반복재생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귀에 피가 나도록 뱉었다. 정말 그냥 뭐든 해보자는 식으로 다녀온 워킹홀리데이였다. 이 정도 가벼운 문장으로 던지듯 하는 말이지만 어쨌거나 나는 필사적으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오고 싶었다. 내가 뱉은 말, 써 내려간 글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렇게 잘 다니던 유니클로를 때려치우고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평생 이 직업으로 먹고 살 수 있겠다고, 그 짧은 시간 안에 커피를 배우고 일을 구하러 다녔다. 용의 머리로 시작을 해서 뱀의 꼬리로 막을 내렸다. 돈도 다 쓰고, 친구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한국으로 돌아왔다. 돈이 이렇게 무섭구나, 돈 없이 설치는 만용이 가장 무섭다는 걸 배웠다. 그렇게 내가 쓴 글들은 화살이 되어 나를 향하여 돌아왔다. 마치 카뮈가 자살을 논하면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인생의 부조리를 탓한 것처럼 말이다. 애초에 사람이 본인이 한 말을 지키기란 천지가 개벽하듯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게 나의 지론이라며 결국엔 자위했다. 뜻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지만, 과정만큼은 단단히 모양을 굳히기 마련이다. 여하튼 나의 하루는 그때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이미 꿴 단추를 다 풀러해칠 필요는 없으니 잘못된 부분만 고쳐 입자며 스스로를 달래는 중이다.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살궁리를 열심히 했다. 어떻게 해야 학업을 병행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미 벌여놓은 일이 많은데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자의식은 하늘을 찌르는데 그 빈 공간을 어떻게 나로 채울 수 있을까에 관한 고민을 하루종일 이어나갔다. 콘크리트 틈 사이에서도 잡초는 자란다고 나는 아무것도 아닐지언정 생명력만큼은 누구보다 질겨야겠다고 다짐하고 어떻게든 나를 살아야겠다고 글에 뱉어내는 중이다. 책임지지 못할 말이라고 한들 가슴에 후벼 판 구멍 몇 개 더 생기는 게 대수랴 생각하며 그냥 나를 살기로 마음먹었다. 딱 2년이다. 그동안 가능한 발칙하고 노련하게 글 쓰고, 영상 만들고, 재밌는 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 아, 여자친구도 사귀면 좋겠다(?) 소개 좀 시켜줘라.


아빠가 학교 가기 전날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아들, 남자는 여자를 사귀려면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체로 유순한 아빠 입에서 남성 호르몬 가득한 알파메일이 내뱉을 말이 나오다니. 나는 당황하면서도 아빠의 또 다른 모습이 꽤나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기야 그렇게 엄마를 꼬시고 나를 낳고 동생을 낳았으니 아빠는 능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보일 능력 혹은 초인적인 힘이 아니라 나를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이 있어야겠다는 말이다. 아빠는 어떤 의미로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세상이 속삭이는 불필요한 것들에는 귀를 싹 닫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썼다. 일 구하고 있다고, 뭐든 할 수 있다고. 사실 맞는 말이지만, 설령 그렇지 못한다 한들 낙담할 필요도 없다. 어쨌거나 인생은 사는 게 목적이 아닌가. 내가 살고, 다른 사람을 살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고, 번듯하게 죽는 게 인생 아닌가. 불필요한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싹 닫는 때도 있다면, 몸을 푹 숙이고 '나 좀 살려주소' 물 불 안 가리고 이것저것 해야 하는 때도 있는 거 아닐까. 내가 쓴 글이 때로는 화살이 되어 돌아올지라도 그 화살에 몸 던지며 지켜내야 할 것은 응당 삶이다.


우선 그렇게 자위한다. 내일은 더 나을 거라고,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다고, 스스로에 또 하나의 화살을 겨누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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