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시현 Feb 21. 2024

PAID

일 구합니다. 연락 주세요.

2월 19일 화


카페일이 끝나고 오후 3시 즈음 놓친 끼니를 때우려고 국밥집으로 향하던 중 전화가 왔다. 042로 시작하는 번호. 누구든 그렇겠지만 지역번호로 울리는 전화벨은 꺼림칙하다. 마침 선거철이기도 하고 별 쓸데없는 전화겠구나 하고 받지 않았다. 이내 다시 울리는 전화벨.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귀에 대고 말했다.


“여보세요”


잊고 있었다. 지난주에 지원한 유니클로에서 온 전화였다. 복학을 앞두고 학교가 대전에 있어서 알바를 구하는 중이었다. 알바라기보단, 학업에는 더 이상 미련이 없고, 재미있는 일은 하고 싶고, 돈은 없어서 자취는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학교로 돌아가는 것도 억울한데 기숙사 생활까지 해야 하는 마당에 용돈도 못 받는다. 어떻게든 생활을 유지하려면 씀씀이를 감당할 만한 일이 필요했다. 재미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에 앞서 우선 먹고는 살아야 해서 무작정 지원했다. 어차피 유니클로는 전에 일한 경력이 있어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유니클로는 경력직에 관대한 편이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겠지. 어쨌거나 042로 걸려온 전화는 대전의 한 유니클로 매장에서 온 것이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유니클로면 한 학기 정도만 기숙사에 살고 방학부터는 방을 구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주에 24시간 정도 일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나름의 다행이라는 마음을 감추고 최대한 덤덤하게 면접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국밥집에 도착했다. 난 우두탕을 시켰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허겁지겁 뜨거운 국물을 입에 욱여넣는 와중에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호주 유니클로에서 같이 일한 사람. 나보다 한참 형이었는데, 유니클로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었다. “너 OO점 지원했더라” 세상 참 좁다는 게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 참 좁긴 하더라. 나한테 면접을 보러 오라고 전화를 한 직원과 아는 사이었다나. 내가 전화를 받은 사이 그는 이미 내가 삭발머리인 것을 직원에게 말했다. 별안간 두발규정이 있었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장발이나 삭발이면 일할 수 없다고. 시간이 좀 지나고 다시 전화가 왔다. 같은 번호 같은 매장, 같은 직원이었다. 그 형한테 얘기 들었다고. 이력서가 발목을 잡을 줄이야. 아차 싶었다.


“혹시 이력서 사진과 지금 머리가 많이 다른가요?”

직원은 최대한 정중하게 물어봤다.

“네”

나는 별 기대 없이 대답했다.

“아..”

내가 했던 말인지, 그 사람이 했던 말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면접은 잠시 보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그러고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은 뒤 우린 전화를 끊었다.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애초에 유니클로는 보험이었으니까. 늘 이런 식이었다. 호주에서도 유니클로는 보험이었다. 보험이라 여기고 곧 떠날 거라 떵떵거리다 별안간 그만두고 커피를 배웠다. 멜버른의 카페는 유니클로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커피의 도시에서 바리스타는 그리 호락호락한 직업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1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어찌어찌 운이 좋아 본가인 전주에 있는 한 개인카페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그런 계획이었다. 카페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았으니, 대전으로 올라가면 카페 일을 알아보자고. 대충 스페셜티 카페면 좋겠다 생각했다. 바테이블 앞에서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여유롭게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사람을 구하는 카페가 있나 인스타그램을 뒤적거렸다. 역시나 개인 사업장이라는 것이 만족할만한 시프트를 가져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주말 아니면 정직원이었다. 아직 학생 신분이니 정직원은 애초에 할 수가 없고, 주말에만 일하기에는 페이가 너무 적었다. 한 달 생계를 지탱할 수 없다. 물론 아끼고 아끼면 되겠지만, 욕심을 채우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터무니없다. 취향이 밥 먹여주는 세상이 왔다고 하는데, 내가 노련하지 못한 것인지, 아직은 여전히 어렵다. 사고 싶은 옷은 많고, 돈은 없고, 커피도 먹고 싶고, 멋진 일도 하고 싶고, 신발은 사도사도 끝이 없다. 결국 보험이라고 생각했던 유니클로가 먼저 내게서 학을 뗐다. 머리를 밀면서 유니클로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든든했던 연장근무와, 주휴수당, 시급 인상과는 작별인사인 셈이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단순히 돈이 필요한 건 아니다. 돈만 필요했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했을 거다. 그러나 항상 이런 생각을 했다. 멋진 일을 하고 싶다고.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멋있어 보이는 일을 하고 싶다고. 앞서 말했다시피 더 이상 학업에 미련은 없다. 학점은 그냥저냥 경고받지 않을 정도로만 채워놓는 게 목표다. 중요한 건 학생이라는 타이틀로 멋진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처음 유니클로에서 일할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카페에서 일을 할 때도 같은 마음이다. 지금 이렇게 쥐어짜며 글을 쓰는 이유도 언젠가는 돈을 받으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서다. 삶에서의 모든 쥐는 기회들이 나에게는 귀중한 포트폴리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점심이 늦었던 탓에 저녁은 건너뛰고 노트북을 켰다. VULTURES 1의 3번째 트랙 PAID가 흘러나온다. 돈을 벌고 싶다. 어떤 일이든 하고 싶다. 커피를 내리는 일, 편집샵에서 옷을 파는 일,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 뭐든 상관없다. 나는 무너져 내린 아카데미즘 따위로 학교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거다. 창의적인 일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데, 그런 일에 가까워지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거다. 공부 따위라고 하면 너무 극단적인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아부어야겠다는 말이다. 버질아블로가 그랬듯이. 스티브잡스가 그랬듯이. 작당할 시간이 필요하다. 돈을 벌고 싶다. 내가 번 돈이 이력서의 한 줄이 되었으면 좋겠다.


돈 벌고 싶다.

¥$는 말했다.

I’M JUST HERE TO GET PAID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