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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Feb 18. 2024

글쓰기

종종, 사실 아주 자주.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차면 불안이 몸을 휘감는다. 비로소 자정을 넘어선 시간. 하는 수 없이 먹구름 낀 머릿속을 헤집으며 그럴듯한 단어들을 나열한다.


글쓰기. 글을 쓰는 행위에 관한 글. 바닥을 기는 성실함. 하다 하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올 때. 해야 할 일들이라 하면 꾸준히 글을 쓰는 행위. 쌓여가는 생각들을 토해내는 시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노라 글을 쓰기 시작하진 않았다. 다만 글을 통해 나를 창조하는 경험, 매일같이 머릿속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무언가의 덩어리를 들여놓은 이상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나를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어렵다는 헤르만 헤세의 푸념. 오늘도 어김없이 글을 써야 해서 노트를 펴고 펜을 집어든다. 나는 단어를 뱉고, 또 한자를 뱉고, 가는 실처럼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마리를 쥐고선 가쁜 숨을 뒤로하고 달린다. 나를 앞서는 덩어리. 자의식. 몸집을 키워나가는 그것의 파렴치함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대가를 물린다.


내가 긍지로 여긴 덩어리. 힘없는 풍선에 불어넣는 긍지. 생각을 집어삼키고 나를 집어삼키는 억하심정. 이내 '펑' 터진다. 아무것도 없다. 긍지는 없다. 내가 없다. 자의식 과잉. 이제 다시 나.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멈춘다. 노트를 편다. 펜을 잡는다. 자간을 맞추고 또박또박 글을 쓰려고 애쓴다. 걷는다. 달린다. 달린다. 걷는다. 또박또박 걷는다. 머리를 싸매고 글을 쓴다. 나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쓴다. 이제 다시 나. 자의식 과잉. 곧 게으름.


모쪼록 다시 글을 쓰면 약발이 강한 진통제처럼 불안함은 잠시 수그러든다. 얼마간은 삶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의 부지런함을 두둑이 챙긴다. 언젠가는 매일같이 글을 썼지만, 올해는 그렇게 안된다. 대신 예년 같지 않은 노련한 듯 발칙한 문장을 뱉어낼 수 있을까 생각한다. 정답이 없는 글을 쓰고 나를 들추고 나를 감춘다.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고 머리를 싸매고 망설이다 뱉는다.


글을 쓰는 행위에 관한 글이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그림자를 드리면 나는 별안간 불안하다. 끝끝내 글을 쓴다. 나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쓴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모종의 살아 움직이는 덩어리를 빚는다. 나는 다시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 이제 다시 글을 쓴다. 다시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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