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음식 그래서 더 친숙한
한국 사람은 쌀을 먹어야 힘이 난다.
사실 20대 초반만 해도 나보다 10살은 더 많은 형들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힘을 내려면 고기를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시간이 지나고 30대에 접어들면서 왜 형들이 점심을 백반을 먹으러 가고 고깃집에 가서 고기랑 밥을 같이 시키는지, 정 먹을 게 없으면 김치랑 흰쌀밥을 먹었는지 이제야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흰쌀밥에 김치만 먹는다는 건 어찌 보면 영양학적으로 몹시 좋지 않은 식습관 일 수 있다. 그저 순수한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근대화가 되기 전 우리 민족은 대부분 농사를 지었고 몸을 쓰고 힘을 쓰려면 에너지를 쉽게 만들 수 있는 쌀을 먹었어야 했을 것이다. 육류는 어쩌다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을 테고 쌀 위주로 식습관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 유전자가 어디 가겠는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전처럼 몸을 쓰지는 않지만 힘이 없고 배가 고프면 자연스레 쌀밥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밥 위주의 문화가 아닌 곳에서 살다 보면 따끈하게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이 생각 날 수밖에 없다.
쌀국수 이야기를 해보려다가 서론이 길어졌는데 결국 비슷한 문화권에 살아온 동양인들은 쌀로 된 음식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베트남이라고 크게 다를 게 없다. 베트남은 쌀을 키우기에 최적화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고 결국 주로 먹는 음식이 쌀로 된 음식일 수밖에 없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를 겪으면서 쌀로 만든 국수를 프랑스식 고기 육수와 함께 먹는 보편화된 음식이 쌀국수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고기 육수를 내어 만들어 먹기 어려웠던 베트남 서민들은 바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산물로 육수를 내어 국수와 함께 곁들여 먹었을 것이다.
호주에서 먹는 음식들 중에 가장 손꼽는 음식이 쌀국수다. 한국에서도 쌀국수를 즐겨 먹었지만 여기서 먹는 쌀국수가 더 맛있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국에서의 쌀국수는 우리나라 입맛에 맞춰서 만들어져 있다면 호주에서는 정말 베트남 사람들을 위한 쌀국수를 만들어 판다는 느낌이 있다. 맛도 더 진하고 담백하다. 심지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인기 있는 음식이다.
쌀국수든 백반이든 우리에게는 엄청 흔한 음식이고 서민들이 많이 찾는 음식일 텐데 시간이 지나서 이런 평범함에서 오는 편안한 음식을 찾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먹는 음식도, 셰프가 정갈하게 코스로 내오는 음식도 맛있겠지만 이렇게 흔한 음식들은 알게 모르게 마음속에서 기억되는 신기함이 있다. 호주에서의 쌀국수는 그런 신기함을 불러일으키는 음식 중 하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