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매거진의 일원들은 지금 대구에 있는 한 한옥 숙소에서 각자 글 쓰는 시간을 갖고 있다. 다들 무언가를 붙잡고 있긴 한데, 표정을 보아하건대 잘 돼 가는 중인지는 모르겠다. 몇 달 전 여름 부산 여행에서도 우린 각자 글쓰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2박 여행에 들고 간 배낭 무게의 대부분을 노트북에 내어줬는데도, 계획처럼 잘 되진 않았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노력이 필요한 활동이라니.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작가들이 하는 한결같은 조언이 있다. "꾸준히 써라." 일단 정해둔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면서 종종 글쓰기를 운동에 비유한다. 글쓰기는 마치 운동과 같아서 매일 글쓰기 근육을 키우면 그 결과가 나를 배신하지 않고 돌아온다고 한다. 운동과의 또 하나의 유사점이자 좋은 점은 글을 쓰는 데에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는 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 생각에 글쓰기는 정확히 같은 이유에서 실천이 매우 어렵다.
1. 매일 같은 시간에 운동을 꾸준히 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의지가 필요한 일인지 생각해 보라.
2. 돈이 들지 않는 일이니까 꾸준히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내서 PT를 끊고, 학원을 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뭐든 애초에 강제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건 인간 본성에 반할 만큼 어려운 행위라는 말이다.
이쯤 되면 그렇게 애써가면서까지 왜 쓰고 싶은 거야? 라는 의문이 든다. 사람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글쓰기가 단순한 기록의 행위가 아니라 창작의 행위라는 데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글 쓰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배움이라는 말을 믿는다. 얼마 전에 읽은 폴 그라함의 에세이에서 공감되는 문장을 보았다. “A good writer will almost always discover new things in the process of writing. And there is, as far as I know, no substitute for this kind of discovery.” 글쓰기라는 행위를 하는 도중에 우리는 다른 것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나의 경우 그 발견이라는 것에 나의 상상력과 언어적 능력의 한계가 종종 포함된다.)
역설적으로, 매일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다는 걸 느끼면서도 내가 평소에 매력적으로 느끼는 글은 어떤 사회의 시대상을 통으로 옮겨놓은 한 권의 일기 같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시대의 공기의 색깔과 온도가 보이는 듯한 다큐멘터리 같은 글이다. 뉴 저널리즘이나 일기, 여행 에세이 등을 좋아하는데, 매일 아침 침대 정리하는 것조차 작심삼일을 못 가는 나로서는 이런 분야가 가장 경이롭다. 꾸준함에 대한 경외 외에도 에세이나 일기 성격의 글들이 좋은 이유는 가장 자연스러운 글이기 때문인 것 같다. 대단한 결론에 이르기 위한 빌드업 같은 게 없다고 해야 하나.
생각해보면 일기는 창의적인 글을 쓰기 위한 가장 좋은 시작이기도 하다. 그림 그리기를 시작할 때 거창한 주제를 담은 걸작보다 눈앞에 있는 걸 그려보는 연습을 해보는 게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나도 그림을 그릴 때 자꾸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는 (개인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있는데, 아마도 그림의 효용성을 생각하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그리고 싶은 '아무거나'를 그리는 것보다는 어떤 의미 전달을 위한 매개체를 만드는 직업이 더 세상에 가치가 있어 보이니까. 이렇게 얼마간의 시간과 돈과 벽을 차지하는 그림이라면 적어도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야할 것 같은 압박감도 있다.
그런데 애쓰는 마음과는 반대로 내가 뭘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고, 결과물이 맘에 들지 않을 때도 많다. 그래서 요즘엔 눈을 감고 머리를 비우고 그냥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지 먼저 떠올려보려고 한다. 고요히 커서만 깜박이는 백지처럼 막막하긴 하지만 말이다.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글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자꾸 생각하다보면 결국 세상엔 아무 글도 더 필요 없다는 생각에 다달아 시작이 쉽지 않다. 마치 세상에 정말로 또 다른 형태의 플라스틱 의자가 필요한가 고민하는 가구 디자이너처럼 말이다. 그래서 앞에 말한 것처럼 글쓰기라는 행위로부터 스스로 새로운 발견을 하려는 것이지 실제로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하는 건 아니라고, 이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한 행위라고 다짐하며 글을 쓴다.
올해도 오래오래 미루다 매거진 출간을 앞두고서야 겨우 글을 썼다. 계속 미루다 보니 시작이 너무 어려워져서 왜 글쓰기가 어려웠는지, 글쓰기를 위한 작가들의 조언이 왜 소용이 없었는지 투덜거리다 여기까지 왔다. 행위는 창조지만 실천은 운동처럼, 새해에는 더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 더 많은 발견과 배움을 경험하고 싶다.
얼마 전 친구와의 대화에서 친구가 뜬금없이 물었다.
“미켈란젤로는 무슨 생각으로 그 많은 돌을 깎았을까? 돌들이 뭐가 될 줄 어떻게 알고?”
듣고보니 미술 시간에 미켈란젤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게 어렴풋이 생각나 이야기했다.
“아마 아무 생각도 안 했을 거야. 어렸을 때 수업 시간에 들었는데, 돌들이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고 했거든.”
빈 페이지에 대고 더 자주 물어보아야겠다. 종이야 종이야 넌 무엇이 되고 싶니.
매거진 42 vol.3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