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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노의질주 Jul 23. 2023

Happy Anniversary


  나에겐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조금 부끄러운 취미가 있다. 서양인들이 연인과의 기념일이나 생일을 맞이해 SNS에 올리는 포스트를 염탐하는 것이다. 물론 사랑을 하는 건 서양인만이 아니지만, 그들은 온라인에서 공개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게시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조금 더 너그러운 경향이 있기 때문에 좋은 자료가 된다.

  나중에 이 문구들을 써먹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도 약간은 있고, 반대로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을 기약 없이 꿈꾸기도 한다. 어떨 땐 그저 대리만족이 되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그냥 좋아서" 외에는 큰 이유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부끄러우니 부지런히 이유를 더해본다.

  아무튼 나는 알지 못하는 이들의 헌정 포스트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어떤 문장들이 가장 감동적인지 혼자 꼽아보기도 하고, 작년 기념일과 올해 기념일의 글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등을 훔쳐보곤 한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그것은 너무 진득할 때가 많고, 주로 재밌게 읽은 책이나 방송 등을 통해 알게 된 작가의 SNS를 보면 가장 완벽한 문장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글들은 절대 진부한 "Happy anniversary"로 끝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건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듯이 어떤 문장들을 좋아했는지를 들여다보면 그때그때 내 생각이나 소망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처음 누군가의 기념일 포스트를 보고 감동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아마도 8년 전쯤 재미교포인 형부가 사촌 언니에게 헌정한 페이스북 게시글이었다.

  "Happy anniversary, I love you more everyday.”

사실 정확히 이 문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더 큰 사랑과 행복을 느낀다는 의미의 문장이었다. 나에게 이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같이 사는 사람을 매일 더 사랑하게 된다니. (특히 부부가 된 후의) 사랑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닳고 희미해지는 게 아니었나? 어떻게 사랑이 티백처럼 끓일수록 탁하고 떫어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맛있어지기만 한다는 거지?

  그 후 많은 문장들이 지나갔다. 또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한 사진 작가가 연인과의 사진을 포스팅하며 쓴 문구로 “We’re so lucky.”라는 짧고도 강력한 한마디였다. 이 세상에서 소울메이트와 같은 존재를 찾는 게 얼마나 어렵고 기적 같은 일인지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우리’로 시작하는 이 문장은 “너를 만나 나는 참 행운이야”와는 다른, 한 쌍의 부러움을 일으키는 문장이었다. 변치 않는 사랑에 놀랐던 내가 이 문장의 가치를 알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발견으로는 화재의 책이었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쓴 작가 룰루 밀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 있다. 7년 전의 프러포즈일을 떠올리며 쓴 글이었다. 아내를 향한 작가의 사랑은 책의 에필로그에서도 깊이 알아챌 수 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별로 소용은 없었다. 긴 글 가운데 이런 문장이 보였다.

  “How did this life become my life?”

먹먹하도록 멋진 문장에 마음 한편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것은 내가 누리는 이 행복이 도저히 내 인생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과분하다는 뜻이었다. 무언가 과도한 것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때론 한 사람과의 만남이 인생을 그 사람과의 만남 이전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꿔놓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 때쯤 들었던 한 수업에서 <어린 왕자>의 지문을 다룬 적이 있었는데, 그때 ‘비가역적’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어린 왕자와 여우와의 만남이 ‘비가역적’이라는 표현이 떠나지 않아서 수업 자료 옆에 적고 또 적었다. 나에게 있어서 관계가 끼칠 수 있는 가장 큰 영향은 누굴 만남으로 인해서 내가 더 성숙해지는 것도, 상대방을 닮아가는 것도 아니라, 바로 비가역적이라는 점이었다. 그건 마치 휴지통을 비울 때면 매번 뜨는 뜨끔한 메시지처럼 ‘절대 되돌릴 수 없음’을 의미했다. 나는 한 번도 “이 동작은 취소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진행할까요?”라는 질문에 쉽게 “예”를 누른 적이 없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작가는 자신의 ‘기준’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 만남으로 인해 마치 수면 위와 아래처럼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입장했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을 때 그는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라고 말했다. 돌아갈 길이 없는 모험을 택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경험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여정을 자랑할 권리도 충분히 있다. 그들의 모험과 자랑 덕분에 나 같은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이렇게 슬쩍슬쩍 작은 기쁨을 훔쳐 간다.


  다시 내게로 돌아와서,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었던 저 마지막 문장을 보니 사실 내가 훔치고 싶었던 건 영원한 사랑이나 소울메이트의 발견처럼 관계에서 오는 행복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길과 현재 있는 곳에 대한 만족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또 바뀌었나 보다. 현재로선 언제쯤 저 문장을 진심으로 소리 내어 볼 수 있을지 전혀, 전혀 상상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도.

  그런 날이 온다면 혼자만의 기념일로 삼고 매년 축하하고 싶다. 나도 언젠가 내 인생을 둘러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조용히 혼잣말을 뱉어보고 싶다.

  “How did this life become my life?”




매거진 42 vol.2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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