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저는 팀원들한테 개인적인 관심이 잘 생기지 않아서 고민이에요.”
요즘 팀원들과의 관계에 고민이 없는지 묻는 상사에게 답했다.
나의 말대로라면 나는 어른이 되는 데 성공했다. 왜냐하면 소심했던 어렸을 적의 나는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 눈치도 덜 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혼자서 곱창 가게의 야외 자리에서 곱창을 구워 먹을 수 있는 그런 사람처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행동하는 게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보니 이건 노력을 통해 얻는 기술 같은 게 아니라 지구에 오래 머무는 자들에게 자연 발생하는 현상 중 하나였다. 아주 큰 기쁨이나 슬픔, 아주 웃긴 사람이나 아주 골치 아픈 사람이 아니고서는 내 주변의 웬만한 소식과 캐릭터에 큰 감흥이 없어지는 듯하다.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시선이 지나치게 신경 쓰이는 게 고민인 청소년들이 있다면, 나이 듦의 장점 중의 하나가 뻔뻔해지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도중 작년 가을 집에서 아담스 패밀리 영화 시리즈를 연이어 몰아보면서 모티샤와 고메즈 부부를 보고 깨달았다. 저게 내가 원하던 진짜 어른의 모습이야! 라고 말이다. 다음 할로윈 때는 무조건 아담스가의 일원이 될 거라며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릴 수 있는 가발과 검은색 원피스도 구매했다.
아담스 패밀리 영화를 보면 “An Addams!”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퓨버트나 왓(What)이 태어났을 때도, 페스터가 집에 돌아왔을 때도, “우린 아담스잖아!”, “나는 아담스니까!”, “아담스가 태어났다!”를 외친다. 새로운 종의 탄생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이렇게 자주 외쳐지는 “아담스다!(An Addams!)”라는 구호는 뱃속에서부터 부여되는 정체성이라기보단 일종의 자기 선언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아담스로서의 어떤 공통된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선언이자 인정의 표현으로, 영화 속에서 단순한 성(family name)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담스 가족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괴짜, ‘아주 멋진 괴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신체적인 특성이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지만 이것만으로 그들을 정의할 수 없다. (물론 이 자체도 굉장한 구별점이긴 하지만…) 이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개성대로 살며 자신만의 미적 기준이 있다. 세상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 이런 초월적인 면이 넷플릭스 시리즈로 부활할 만큼 21세기에도 아담스를 여전히 ‘쿨하게’ 만든다. 내가 어렸을 때 상상했던 멋진 어른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런데 아담스의 일원이 되려면 갖춰야 하는 중요한 한 가지 자질이 더 있다. 바로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다. 단순히 개성이 강하다는 것 이상으로 아담스 패밀리가 멋진 이유는, 다른 사람의 취향에 휘둘리지 않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취향 또한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솔직히 개성으로만 친다면 지금의 지구인들도 아담스 못지않다. 오히려 아담스 패밀리가 처음 방영된 60년대보다는 점점 아담스로 살기 쉬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살고 싶은 방식대로 사는 사람들이 넘치는 지금, 이 세상은 이미 아담스 패밀리 같은 가족들의 거대한 집합이 되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담스의 진정한 매력은 세상이 ‘이상하다’라고 볼 법한 것들도 편견 없이 대하고 다가간다는 것이다. 아담스 패밀리 시리즈에서 가장 좋았던 건 본인들과의 유사성과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었다. 얇게 밀어버린 눈썹과 정갈한 5:5 가르마가 좀 무서워 보여서 그렇지, 실제로 모티샤와 고메즈는 거의 영화 내내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다. 나는 우리도 각자의 자기다움을 아는 동시에 각자의 다름을 좋아하는 아담스였으면 좋겠다.
앞에 언급한 상사와의 대화에서 나의 고민처럼 ‘관심’은 개성을 갖는 것이나 다른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영역이다. 그런데 겉모습으로만 보면 어느 골방에 갇혀 분리된 삶을 살 것 같은 이 가족은, 사실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 일반적이진 않은 방식으로 이웃들과 교류하고 싶어하는 게 문제가 될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관대하고 선량한 이웃 주민이다. 고메즈와 모티샤는 종종 기부도 할 뿐만 아니라 자선 모금 활동에도 참여하고, 먼 친척들과 이웃도 다정하게 챙긴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사회에 소속되길 원하고 그들의 자식들도 그러길 바란다. 부모님이 억지로 보낸 썸머 캠프에서 웬즈데이는 지루하고 멍청한 어린이들만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말없이도 말이 통하는 뜻밖의 친구를 찾게 되었던 에피소드처럼 말이다. 고메즈와 모티샤는 더 넓은 세상에 가면 더 좋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
나이가 들며 나만의 멋진 취향을 유지하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 인생에서 마주치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두고 교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다움을 알아가고 지키는 과정에서 내가 거대한 세상의 일부라는 것을 까먹기도 하고, 홀로서기를 잘하게 되는 것과 주변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잃는 것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되기도 한다. 주변에서, 뉴스에서 성가신 사람들을 마주치며 우리는 “인류애를 잃었다”라는 표현을 얼마나 쉽게 하는가. 신체적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이들로서 인류 따위엔 전혀 관심 없고 고립된 삶을 즐겨할 것 같은 아담스 패밀리가 실은 적극적으로 이웃 사회에 동참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라는 이 반전이 나는, 아담스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끔찍하게 좋다.
어두운 집에서 갇혀만 지내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치고 웬즈데이와 퍽슬리는 사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주 활동적인 말썽꾸러기들이다. (은둔형으로 치자면 오히려 화면 속에 갇혀 지내는 현대의 청소년들을 따라갈 자가 없다.) 모티샤와 고메즈의 가르침으로 대담해진 아이들은 벽을 뛰어넘고, 두려워하는 것이 없는 아담스로 커간다. 웬즈데이가 작은 칼을 들고 가면 모티샤는 도끼를 내어준다(말 그대로). 내가 익숙한 삶의 방식과 취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도 두려움 없이 나아간다. 이번 할로윈에 하루짜리 웬즈데이를 꿈꾸긴 했지만 10월 아닌 다른 날들에도,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아담스! An Addams!인 멋진 세상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