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앉은 자리 바로 앞에서 군밤 트럭이 보였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 마자 왼쪽으로 돌면 보이는 스타벅스였고, 군밤 트럭은 출구 옆쪽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군밤 아저씨가 화장실을 가셨는지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어떤 할아버지가 와서 그 앞을 서성거렸다. 군밤을 사려고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꽤 오랫동안 그 주변을 맴돌았다. 가는 듯하다가도 다시 자리를 지켰다. 오래 자리를 비우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 군밤 트럭 주인이 얼마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할아버지는 지하철역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정말 군밤이 먹고 싶었는지 한두 걸음 가다가 또 트럭을 향해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군밤 트럭을 확인하곤 정말로 정말로 등을 돌려 지하철역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아 할아버지 정말 드시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아쉽다. 주인 아저씬 왜 안 오시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기다림과 포기의 과정을 지켜보던 내 눈에 군밤 아저씨가 들어왔다! 시야의 오른쪽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돌아온 군밤 아저씨. 그리고 왼쪽엔 지하철역에 거의 다다른 할아버지가 보였다. 둘 사이는 뛰어서 몇 걸음이면 가능한 거리였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뛰쳐나가서 할아버지를 붙잡고 이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굴뚝은 이미 "군밤 아저씨 돌아오셨어요!"를 내뿜고 있었다.
알려드리고 싶다. 알려드릴까? 지금 뛰어나가면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알려드려도 귀찮으니 됐다고 하시려나. 이제 역으로 곧 들어가시겠네... 딱 한 번만 더 돌아보시지.
이런 생각들을 하고있는 순간 퍼드득-- 비둘기 떼가 군밤 트럭 앞 도로에 몰려 날아왔다. 내 머릿속을 헤집으려 온 것처럼. 나에겐 꽤나 진지한 조류공포증이 있다. 이제 기회는 정말로 날아간 셈이다. 나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군밤 아저씨에게도.
할아버지는 화면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할아버지는 오늘 군밤을 먹을 운명이 아니었나 보다. 군밤 아저씬 오늘 할아버지에게 군밤을 팔 운명이 아니었나 보다. 삼인칭 시점이지만 전지적 능력은 없이 유리창 밖 이 짧은 서사를 바라보던 나는 혼자서 매우 아쉬워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내가 모르는 아쉬운 순간들이 없길 몰래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