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집단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특혜와 위선으로 둔갑
도날드 트럼프가 멕시코인들은 강간범이라 주장하며 대선 출마 선언을 했을 당시만 해도 많은 이들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줄로만 알았다. 리얼리티쇼 스타 답게 관심 좀 끌어보고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나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매출이나 좀 올려보려는 꼼수라고 말이다. 1년이 지난 지금 현재 그는 공화당 내 16명의 예비후보들을 제치고 당당히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말 그대로 돌풍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파격적인 발언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전면으로 거부해 기존의 워싱턴 정가의 정치인들에게 신물이 난 유권자들의 가려운 구석을 긁어준 것이 주효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 돌풍은 미국 사회가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 이후 지난 수십년간 뿌리내리려 노력한 소수 집단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단 1년만에 특혜와 위선으로 둔갑시켜버린 결과를 낳았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최근 직접 경험했다. 지난 주말 운전면허증 갱신을 위해 뉴저지 운전면허등록소를 찾았을 때다. 백인 담당자가 면허증에 나올 사진을 찍는데 첫번째 시도후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찍어달라고 요청을 했다. 두번째 시도에 눈이 거의 감긴 상태로 나와 미안하지만 한번만 다시 찍자고 요청을 했다. 그런데 대뜸 안된다며 그게 끝이라는거다. 눈이 감긴 사진을 어떻게 사용하냐며 재차 항의를 했더니 눈이 감겼으면 기계가 인식을 해서 사용하지 못했을텐데 통과가 됐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진이 나의 원래 모습이라고 ("it's how you naturally look") 했다. 정말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이 인종차별적이며 말도 안된다고 했지만 그는 사진이 내 원래 모습과 똑같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또 다른 백인 담당자는 자신이 마치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줄 것 처럼 건너와 화면을 슬쩍 보더니 대뜸 동료 편을 들어주며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거들었다. 그런데 더 강하게 항의를 하려던 그 순간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떠올랐고 나는 맥없이 눈감긴 사진이 찍힌 면허증을 들고 돌아섰다. 갑자기 주위에 내 편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돌이켜보면 아직도 분하고 제대로 내 권리를 챙기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럽지만 이것이 트럼프가 진정 위험한 이유이다. 내가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스스로 위축된 것. 내가 예전처럼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것. 내가 결국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것. 이 것이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바라는 소위 "위대한" ("great") 미국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운전면허등록소의 그 담당자는 당연히 자신의 말이 인종차별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심지어 트럼프 지지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트럼프와 같이 "있는 그대로" ("tell like it is") 말했을 뿐이라 할 것이다. 멕시코인들은 강간범이고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이고 아시아인들은 눈이 째졌다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특혜이고 또 위선일 뿐이라고 말이다.
혹자는 트럼프를 히틀러에 비유하는 것이 과하다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소수 집단에 대한 폭력은 수용소에 가둬놓고 가스실에서 학살을 해야만 폭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공화당 예비후보 선거 운동을 한 1년이라는 시간동안 이미 다수의 소수에 대한 폭력을 수 없이 많은 분야에서 정당화시켰다. 소수 인종과 종교, 장애인,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 사회로부터 보호받아야할 집단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트럼프의 황당하고 얼토당토 않은 말들을 웃고 넘길 때가 아니다. 정말 위험하고 폭력적인 말들이기 때문이다. 올 11월 미국인들 개개인의 선택에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감이 따른 다는 것을 각자 인지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Gage Skid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