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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스턴 Jun 09. 2016

반기문이 던진 의외의 화두

대권 도전 시사에 가려진 성소수자 인권 보호 주장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최근 한국을 방문하면서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에 크게 불을 지핀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사무총장 임기가 끝나면 명예롭게 은퇴하고 여생을 이전 사무총장인 코피 아난이나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와 같이 원로 리더로서 국경을 초월한 이슈들에 대해 자문하고 영향력을 행사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올 연말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지켜볼 일이다. 반 총장이 한국에 한 주 가량 머물면서 쏟아낸 모든 말이 대선 출마 여부에 관해 단어 수준으로 분석되고 해석되는 상황에서 내가 정작 주목한 것은 관훈클럽 간담회에서 한 이 한마디였다.

 

특히 아시아에서 (중략)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 등에 대한 폭력을 중단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전세계인의 인권 신장과 보호가 그 존재 이유인 기구의 수장으로서 당연한 말을 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제 20대 국회에 원내 입성한 정당 중에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대해 공개적으로 정책을 제시한 정당은 정의당 하나에 불과하다. 주요 3당은 침묵하거나 공개적인 혐오 발언도 서슴치 않고 있다. 보수적 지지 기반을 갖고 있는 새누리당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진보정당을 자처하며 약자의 편에 서겠다는 더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의 침묵은 부끄럽다.


정치권에서 성소수자 권리 보호에 대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놀랍게도 종교적인 이유에서다.


제가 정치적으로 누구 편을 들고 안 들고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트리는 이 법을 어떤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밀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기도할 수 있다.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
특히 동성애법은 자연과 하나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법이다. (더민주당 박영선 의원)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 헌법 어디에도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라고 되어 있지 않다. 헌법 제 20조는 모든 국민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정교분리를 명시하고 있다. 단 우리나라는 통계상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나라일 뿐이다. 헌법은 제 10조에서 국가가 모든 국민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는데 대한민국 주요 정당의 정치인들의 이러한 발언은 헌법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성애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정받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전부 동의할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더 잘 알겠지만 성경은 지난 2천년간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해석되고 일상생활에 적용되어 왔다. 그렇지만 중동 사막 어느 유목민족의 종교가 전세계인의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가 약자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포용을 자신의 희생을 통해 전 인류에게 가르치고 일깨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2천년전 쓰여진 문구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현대 기독교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어서도 (레위기 11:7-8), 둥근 머리스타일을 해서도 (레위기 19:27), 재혼을 해서도 (마가복음 10:11), 여성이 교회에서 말을 해서도 (고린도전서 14:34-35), 새우와 랍스터를 먹어서도 안된다 (레위기 10-11). 심지어 성경은 노예를 인정하기도 하는데 현대 사회에서 성경을 근거로 노예 제도를 부활시키자고 주장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기독교인 정치인이라면 성경 문구를 1차원적으로 해석하고 성소수자들을 죄인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약자의 편에 섰던 예수의 가르침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투영하고 현재 우리 사회의 약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제시해야할 것이다.


종교적인 이유와 별개로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가 (1) 문란하고 (2) 더러우며 (3) 성범죄를 증가시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이 모두 그 어떠한 증거가 없는 허위에 불과하다.


첫째, 동성애자라고 이성애자보다 문란한 성생활을 하지 않는다. 문란하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소위 바람을 피우고 한 파트너와의 정조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을 일걷는 것이라면 수 없이 많은 이성 부부들이 이혼하는 것도 문란하다고 비난 받아야 한다. 동성애자도 이성애자와 똑같이 한 사람과 평생을 같이 살고 가정을 꾸릴 권리를 요구하는 것 뿐이다. 물론 그들도 살다 보면 바람도 피울 수 있을 것이고 이혼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불륜으로 인한 범죄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다수의 이성 부부들이 겪고 있는 일이며 동성애에 국한되지 않는다.


둘째, 동성애자라고 더 더럽고 에이즈와 같은 성병을 더 많이 옮기지 않는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이와 같은 비난을 특히 더 자주 받게 된다. 초기에 발견된 에이즈 환자들 중 남성 동성애자들 많았기 때문에 생긴 편견일 뿐이다. 현재 전 세계 에이즈 환자의 절반 이상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살고 있고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여성이다. 에이즈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와 상관 없이 안전하지 못한 관계를 통해 전염된다. 에이즈 예방이 정책 목표라면 동성애자 권리를 제한할 것이 아니라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떠나서 모두 안전한 성관계를 갖도록 교육하고 설득해야 한다.


셋째, 동성애자라고 성범죄를 더 많이 일으키지 않는다. 특히 아동성범죄자들의 경우 동성애자라고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동성범죄자들의 경우 이성과 동성을 가리지 않고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본다. 이들이 동성에게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이를 동성애의 범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아동성범죄는 철저히 단죄하고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여 한다는 것에는 동성애자들도 동의하는 바이다. 아동성범죄 이외에도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신장시키면 여타 성범죄가 많아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 또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 지난 십수년간 동성 결혼을 합법화 시킨 수 많은 나라들이 존재하지만 이로 인해 성범죄가 증가했다는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를 떠나 성소수자들과 같은 약자들의 권리 보호를 주장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개인적인 바람과 달리 대선 출마를 공식화 한다고 하더라도 기존 정치인들과 같이 표를 의식하여 이들을 돌연 외면하지 말고 동성애자나 이민자들과 같은 소수의 약자들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다수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하길 바란다.



[2016년 12월 12일 업데이트: TV조선 최근 기사에 의하면 반기문 총장은 최근 45년지기인 임덕규 전 의원과의 전화 통화에서 자신의 동성애 관련 발언들에 관해 유엔 입장에서 만민이 평등하다는 개념을 말한거지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찬양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대선 출마를 앞두고 국내 보수 유권자들에게 오해를 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보이는데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유엔 헌장을 수호하고 유엔 내 동성애 직원들의 평등을 위해 힘썼던 자신의 경력을 스스로 부인한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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