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게임 캐릭터로 둔갑한 전범의 망령
얼마전 막을 내린 리우 올림픽 폐막식은 화려한 브라질의 삼바춤보다 차기 개최지인 도쿄 소개 영상으로 모두에게 기억될 듯 하다. 도쿄 올림픽 조직위는 약 5분간의 소개 영상 속에 전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친숙한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콘텐츠 강국인 일본의 스포트 파워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에 외신들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얼마나 유쾌한 올림픽이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며 호평 일색이었다. 영상의 하이라이트는 아베 총리가 리우 폐막식 참석을 위해 나서다가 시간에 늦지 않으려 닌텐도 게임 캐릭터인 슈퍼마리오로 분장해 파이프를 타고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경기장에 직접 나타나는 장면이었다. 이 순간 세계인들 눈에 아베는 캐나다의 저스틴 트루도 총리를 능가하는 '쿨가이'가 되었다. 특히 동아시아 역사와 정세에 무관심한 서방 청년들에게 한 나라의 정상이 권위를 벗어던지고 귀엽고 깜찍한 게임 캐릭터로 변장한 것이 용기있고 '쿨'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주변국과 일본인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를 지우고 평화헌법 개헌을 밀어부치고 있는 아베의 이번 퍼포먼스가 얼마나 정치적인 것이었는지는 관심 밖이다. 정치인들이 개회 선언을 제외하고는 직접 올림픽 행사에 나오는 일이 극히 드문 점을 고려했을 때 '아베 마리오'는 사실상 도쿄 올림픽이 개막할때까지 자신이 총리직을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었는데도 말이다. (아베의 임기 연장을 위해서는 자민당이 총재 임기를 3연임이 가능하도록 수정하면 된다.)
아베가 슈퍼마리오 코스프레 퍼포먼스 한번으로 트루도와 같이 '쿨가이' 지위에 오른 것은 정말 우려스럽다.
다음은 저스틴 트루도가 캐나다 총리의 발언들이다.
우리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다양성은 창조의 엔진이다. 다양성은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창조성을 생산하다.
리더십은 모두에게 기회라는 사다리를 제공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위 발언들을 통해 그의 평소 신념들을 엿볼 수 있고 그가 왜 '쿨가이'로 불리는지도 알 수 있다. 그의 총리 선거 캠페인은 정부가 약자의 편에 서서 어떠한 일들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했고 당선 이후 남녀 비율이 동등한 내각을 꾸리는가 하면 시리아 난민들을 대폭 수용하고 입국한 난민들을 직접 마중나가기도 했다. 물론 이 외에 열 몇가지 다른 이유들도 있다. 캐나다는 트루도의 리더십 하에 세계인들이 우러러보고 따를 수 있는 모범 국가로 거듭나고 있다.
이에 반해 아베의 과거 발언들을 살펴보자.
한국에는 기생집이 많아 그런 것(성 매매)을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위안부 활동)은 생활 속에 녹아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1997년 강연)
창씨 개명은 조선인의 희망에 따라 이루어졌다. (2003년 5월)
(신사참배와 관련) 생명을 바친 사람들을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고 총리의 책무다. 다음 총리도, 그 다음 총리도 당연히 참배하기 바란다. (2005년 5월)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증명하는 증언이나 뒷받침하는 것은 없었다. (2007년 3월)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간의 관계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2013년 4월 23일)
아베는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침략국 국민들의 인권을 강탈하고 여성들을 성노예로 부린 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침략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전범들에 대해서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라 국가 차원에서 존경을 표하고 망령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전혀 '쿨'하지 못하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유대인들은 원래 그러한 민족이라 자진해서 수용소에 들어갔고 나치 전범들이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쳤으니 위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생각하보자. 그 어떤 코스프레를 하고도 과연 '쿨'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개헌을 통해 일본을 전쟁 가능한 '정상국가'로 전환하는 것은 과거 제국주의 역사를 왜곡하고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를 비롯한 일본 극우세력의 정치적 이상이자 궁극적 목표다. 아베의 임기 연장으로 도쿄 올림픽은 아베가 직접 일본이 '정상국가'가 되었음을 전세계에 당당히 선언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세계인들 눈에 일본은 슈퍼마리오, 도라에몽, 헬로키티라는 깜찍하고 귀여운 캐릭터들로만 보이고 있다. 그 가면 뒤에 숨은 일본 극우 세력의 야욕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표지 이미지 출처: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