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8 선우네를 보며..
연말이 가까워 오면서 직장에서도 별로 득될 것도 없는데 행사준비로 매우 피곤한 일주일을 보냈던 나는 간만에 티비를 켰다.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응답하라'를 보게 되었다.
역시 참 좋은 드라마..(엄지척!!)
'수퍼맨이 돌아왔다.'편을 본다.
요즘 선우엄마의 로맨스가 한창이다.
남편과 사별하고 6살의 어린 딸이 있는
선우 엄마는 별다른 직장을 다니지도 못하고 남편의 연금으로 어렵게 두 아이를 홀로 키운다.
그런 선우엄마에게 미련 곰탱이, 택이 아빠와의 사랑이 시작된다.
택이 아빠도 혼자 아들을 키우면서 외롭게 사는 홀아비다.
남자어른이 없는 선우네는
남자의 손길이 필요한 작은 집안의 고장난 곳을 택이아빠가 자주 손봐주게 되고
6살 어린 딸, 진주를
같은 고향 오빠였던 택이아빠에게
자주 맡기게 되면서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면서 서로 의지하게 된다.
뜨겁지는 않지만
서로를 바라봐주고 챙겨 주는 따뜻한
두 사람의사랑이 참 훈훈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아들 선우에게는
친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때문에
큰 상처가 된다.
그 속에서 방황하고 아파하는 선우의 모습은 내게도 참 아프게 다가온다.
선우엄마는 자신의 사랑으로 선우가 힘들어 할 걸 알기에 무척이나 조심하고 재혼이라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로맨스는 필요하지만 재혼은 하지 않겠다는
그 마음이 선우엄마 개인의 이기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기에 더욱 마음이 쓰리다.
갑작스런 남편의 부재가
젊은 여자이고 엄마인 선우엄마에게 얼마나 버겁고 불안한 세상이었을까?
그런 마음을 자식이 불안할까봐
늘 밝고 의연하게 연기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을 선우엄마에게 택이아빠는 어쩜 죽은 남편 이상으로 큰 존재이고 절실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부모로서 혼자 아이들을 키우면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둘다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로맨스는 어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선우는 다르다.
그저 아빠의 자리를 뺏는 것만 같아 서운한 마음에 선우는 엄마가 아빠를 배신했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착하고 늘 한결같이 사람좋은 택이아빠가 이유없이 싫고 미웠겠지.
아빠의 여자로서만 엄마를 봐왔던 선우에게
그 어떤 훌륭한 남자가 엄마곁에 있었어도
선우의 적대감은 같았을 것이다.
엄마의 곁엔 평생 아빠만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을 선우에게는 택이아빠를 챙겨주고 다독거려주는 엄마의 손길이 무척이나 낯설고 서운
한 마음이 어린 선우를 분노하게도 했을테고...
그런 선우에게 사진속의 아빠는 말한다.
"자신이 힘든 엄마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그래서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어린 선우는 사진속의 아빠와의 대화를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엄마의 힘겨운 인생을 들여다 보고 이웃집 대학생 누나이자 여자친구인 보라의 도움을 받아가며 자신의 인생숙제를 찬찬히 풀어간다.
그런 선우를 조심스럽게 바라봐주고 믿으면서 선우엄마 또한 택이아빠의 도움을 받으며 부모로서의 숙제를 성실히 해 나간다.
선우네를 보며 인생을 생각한다.
인생에는 숙제투성이다.
아이는 아이인생의 숙제가 있고
어른은 어른인생으로서의 숙제가 있다.
각자의 나이에, 자리에서 주어진 숙제는
절대 쉽지 않고 단시간에 해 치워버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대부분의 숙제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정리가 필요하다.
그때그때마다 시간을 들여 정리해야 하는데
충분히 정리가 안 되고 넘어갔을 때
그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좀더 상황을 이해할만큼 성숙했을 때 오히려 더 편하게 정리가 되는 일도 있지만
반대로 훨씬 더 아프고 어떤게 문제인지 조차
알지 못해 방황을 거듭하면서
사랑이든, 사람이든 만나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경우도 자주 본다.
그런 경우
많은 문제의 원인의
중심에는 분노나 미움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 이유가 타당하든 그렇지 않든 인생은 누구에게나 큰 산이다.
늘 자신없고 두렵고 높은 산.
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 시간이 흘러 나이가 먹고 그 나이에 따라 어른이라는 이름을 얻어 그 산을 홀로 넘는다는 것은 실수와 후회투성이일 수 밖에 없다.
부모로서 능력이 부족했고 그 부족한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해도 그 결과가 보잘 것 없어
자식에게 한없이 미안해지는 것이 부모이고,
그 반대로 자신을 비난하는 자식에게 한없이 서운한 것도 부모이다.
부모라고 다 강할 수 없고
다 잘 할 수 없다.
어른이지만 각자 가진 능력이 다르고
그래서 본인이 선택하는 방법 또한 여러가지이기에 어른으로, 부모로서 이상적인 선택과 삶을 강요한다는 것은 신이 되기를 강요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절대적으로 현명하고 이타적인 선택이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서로의 자리에 대해 안쓰러워 하고 한 인간으로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미움과 원망을 녹여낼 수 있지 않을까?
드라마의 배경때보다 지금 혼자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많은 지금..
선우네의 이야기를 그저 흘려 볼 수 없는 무언가가 그득하게 가슴 가득 메워져서 두서없는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