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이짜이쩬!!나도 됐거든요?

by 바다에 지는 별

그녀의 눈이 평소보다 유독 부어있다.

어제 그녀는 1차로 밥을 엄청먹고 2차 술집을 갔지만 취기는 오르지 않고 배만 불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그녀는 이렇게 부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요즘 모든 기류들이 저기압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제 술자리에서 희경은 그녀의 남편 얘기를 꺼냈다.


"언니! 어제 있잖아? 효진이 아빠가 외식하러 나가자고 하길래 애기랑 같이 나갔거든.

근데..이 남자가 식당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물수건이랑 수저랑, 젓가락을 우리 앞에 다 챙겨 준다? 속으로 '이 남자가 왜 이러나?' 하고 있었어."


희경의 남편은 그녀보다 6살이 어린 연하의 남자였는데 이기적인 면이 많아 결코 희경을 살갑게 챙겨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희경에게 남편의 사소한 챙김이 무척이나 낯설고 의아했던 것이다.

"아...진짜? 왠일이래? 무슨 일 있었어?"


"아니...그런 일은 없는데...이상해서 내가 물어봤어. 갑자기 왠일이냐고..

그랬더니 몇 일전에 회식하고 집에와서 나랑 애기랑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새삼 너무 신기하고 고맙고..뭐..막 그러더래..

그래서 내가 웃었어. 갑자기 뭐 내가 어떻게 될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러냐고 내가 효진이 아빠한테 놀리니까 자기는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10년 살다보니 자기가 너무 해 준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래. ㅎㅎㅎㅎㅎ 얘네 아빠 이제 철드나봐? ㅎㅎㅎㅎㅎㅎㅎ"


평소의 희경의 외로움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를 축하해 주고 함께 기뻐해줘야 했지만 왠지 이질감이 들었고 앞으로의 희경의 행복이 부러워져서 이내 쓸쓸한 표정이 되었다.


"잘 됐네...진짜 철 드나보다..맨날 술먹고 늦게 들어오고 무뚝뚝해서 서운해 하더니..

이제 너 행복하게 해 줄 건가보다야...생각보다 빨리 철드네?ㅎㅎㅎ"


희경은 이래저래 사소한 행복에 젖어 부부금슬까지 좋아졌노라며 들떠 있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우리가 부르는 행복이란 녀석은 그리 멀리 있거나 거창한 것에 있지 않아요.


앞에서는 같이 기뻐해주고 남자에 대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들어가는 술은 참 씁쓸하고 쓸쓸했다.


하지만 취기가 올라오지 않아 과음한 그녀는 희경과 헤어져 버스에 올라 갑자기 오르는 취기에 정신을 잃고 잠이 들어 버렸다.


해맑게 버스에서 잠든 그녀는 덜컹거림에 머리가 창에서 떨어지며 눈을 떴다.

희미하게 눈을 뜬 그녀는 두 정거장을 지나있는 걸 알고 얼른 벨을 눌렀다.


비틀거리며 버스에서 내린 그녀는 갑자기 올라오는 취기 때문에 속이 좋지 않았다.


100미터도 가지 못하고 그녀는 어느 으슥한 골목길 하수구에 그녀가 먹은 것을 확인하기에 이르렀고 시큼한 맛이 가득한 입술 언저리를 닦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씨이...역시 기분 나쁠 때 술을 먹으면 안된다니까..갑자기 왜 이래?...이렇게 기분이 더러운 건 다 그 재수없는 앤디란 남자 때문이야. 씨이..내가 내일 확실하게 정리해 주마. 재수없어.지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났어? 어? 나도 싫다 이거야."


낮게 웅얼거리며 삿대질을 해대는 그녀.


혼잣말을 하고 집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도 못하고 그녀는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부은 눈으로 일어나 그 남자의 카톡과 그 남자의 전화번호를 삭제했다.

이제 그녀의 작은 설레임이었던 그 남자가 더 이상 그녀를 기분 나쁘게 찔러대는 일을 그만 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임에도 몇 달간을 나가지 않았고 그 어떤 까페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그 모임에 친분이 있던 클로이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요즘 왜 활동 안하시고 모임도 안 나오세요?"


미리보기 창에 글이 떴지만 그녀는 별로 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아주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글을 달았다.


"아..제가 요즘 좀 바쁘네요?ㅋㅋ"


"아..그러셨군요..활발하게 활동하시다가 갑자기 안 보여서 궁금했어요.ㅋㅋㅋ 별일 없으시죠?"


"ㅎㅎㅎ네..별일은요..그냥 지내요.."


"아..그리고 저도 들은 얘긴데 앤디님 있잖아요?"


"네."


" 그 분이 지난 주에 일본으로 직장을 옮기셔서 이제는 활동을 안 하세요. 대게 조용히 활동도 잘 하시고 다들 분들하고도 잘 지내시던 분이었는데..그리고 앤디님이 가시기 전 주에 나와서 다 인사를 하고서 저한테 멜리사님 전화번호를 물어보셨어요."


"네? 왜요?"


"뭐..평소에 좀 맬리사님하고 얘기도 많이 나누시고 항상 술자리에서도 같은 자리에 앉아 계시던데..뭐 궁금하셨나 보죠?ㅋㅋㅋㅋ"


"ㅎㅎㅎ아..그랬나요? 저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ㅋㅋㅋ"


"그래서 그냥 제가 알려 드렸어요.ㅎㅎ 기분 나쁘시진 않죠?"


'아..뭐..괜찮긴한데 의외네요..ㅎㅎㅎ조만간 한번 모임에 나갈께요..잘 지내시고요.."


"네...그럼 이번 주에 한번 뵐께요."


"ㅎㅎㅎ네"


그녀는 놀랐다.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은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

술 자리에서 자신을 무안하게 했던 그 남자가 무슨 마음으로 자신의 연락처를 물어보았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뭐..자기가 전화 번호 물어보면 내가 뭐 고마워해야 해? 치..웃기고 있어. "


혼잣말을 하고 그녀는 살짝 흔들렸던 마음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생각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저 그런 하루하루를 지내고 어느새 뜨거운 열기가 아스팔트 위에서 이글거리는 여름이 되었고 그녀는 에어컨이 시원하게 틀어져 있는 버스에 올라 요즘 한참 그녀를 흥분시키는 보싸노바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시작한 적도 없는데 나는 끝을 내버렸네요. 빠이짜이쩬!!


퇴근길에 듣는 이 음악은 그녀를 참 나른하게 기분좋게 했다.

한참 창 밖을 보며 음악을 즐기고 있는데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들여다 보니 모르는 번호의 문자가 와 있다.

비밀번호를 해제하고 문자를 열어보니


안녕하세요. 앤디입니다. 잘 지내시죠? 저 일본으로 직장 옮긴 거 알고 계시죠?ㅎㅎ 다름이 아니라 지난 번에 술자리에서 제가 좀 맬리사님을 기분 나쁘게 했던 게 맘에 계속 걸려서요..ㅎㅎ..미안합니다. 그런데..제가 좀 그럴 사정이 좀 있었어요. 말씀드리기는 좀 뭐하지만 맬리사님 이 후에 한 번 식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제가 준비할 게 많아서 뵙지도 못하고 이렇게 문자로 사과를 드리네요..언제 한국 들어가게 되면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어요.


그녀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뭐 그런 걸 해명까지 하려고 이렇게 문자를 보내는 그도 새삼스러웠고 이미 자신의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는 그 일을 다시 떠올린 것에 대해서 짜증이 밀려 왔다.

그녀는 답장을 쓴다.


ㅎㅎㅎ아니요..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으실 것 같아요. 제가 기분이 별로였을 거 알고 계셨다니 다행이란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문자주시고 사과 하셨으니 괜찮아요. 잘 지내시고요. 건강하세요.


닿을 듯한 인연이었던 앤디라는 남자를 밀어내고 그 어떤 미련이나 기대없이 지내는 그녀의 시간에 만족하고 있었기에 구지 다시 자신의 마음 속에 그 사람으로 인한 파란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 문자를 끝으로 그 어떤 연락도 없었다.

그리고 몇 일뒤 카카오톡에 새 친구란에 낯선 이름 하나가 떠 있었다.


산과 강이 있는 고즈넉한 풍경의 대문 사진으로 '윤명진' 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뭐야? 이 남자?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건 또 뭐고 입력도 안 해놨다가 지금에서야 전화번호 저장하는 심산이 뭐냐고? 완전 음흉한 남자네...진짜 재수없어..재수없어..내가 얼른 맘 접은 게 다행이야..'


앤디라는 닉네임을 쓰는 윤명진이라는 남자는 맬리사-이 현영에게는 참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주말.

밀린 집안 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현영에게 카톡이 온다. 미리보기 창에 뜬 윤명진이라는 사람이 보낸 톡이었다.


잘 지냈어요?


현영은 얼른 답하기가 귀찮았지만 일하기를 멈추고 톡 창을 열었다.


네. 잘 지내시지요?


ㅎㅎ네..그냥 저냥 지내고 있어요.

뭐하고 있어요?


집 안 일 하고 있었어요. ㅎㅎ


아...그러시군요. 다른 게 아니라 제가 다음 주에 집안 일 정리 할 게 있어서 한국에 들어 가거든요. 한번 뵙고 싶어서 연락 드렸어요. 괜찮으시면 시간 좀 내 주세요.


아..그러시군요..근데..저는 진짜 괜찮아요. 구지 그렇게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되요. 그냥 편하게 생각하셔도 되요.ㅎㅎㅎㅎ


슬슬..짜증이 밀려온다.

왜 그렇게 그 일에 대해서 집착하는지 이 남자가 이해가 되지가 않았던 현영은 갑작스런 만남 제안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ㅎㅎㅎㅎ아..혹시 제가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신지..ㅋㅋㅋㅋ ㅜ.ㅜ


'뭐야? 이 남자? 어디서 애교질이야? 내가 그렇게 들이댈때는 밀어내더니 지금 나한테 왜 이러는건데? 뭐..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어? 웃기네..진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던 그녀 앞에 잠시 후 액정에 뜬 카톡글...현영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음처럼 차갑던 그대가 왜 갑자기 달콤해지려고 하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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