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동료들이 환호를 지르며 그녀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낸다.
'그가 내 직장에 웬일일까?'
너무 뜻밖의 그의 등장에 그녀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동료들과 그를 번갈아 쳐다볼 뿐이다.
그런데 그가 그녀에게 다가와 볼에 입을 맞춘다.
"잘 있었어요? 맬리사 님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와 봤어요.ㅎㅎㅎㅎ
동료들이 참 예쁘시네요..ㅎㅎㅎ"
너무 놀란 그녀는 가슴 가득 잔잔한 떨림으로 어떤 말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그가 다정하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자신과 함께 갈 데가 있다며 그녀를 이끈다.
그녀는 말없이 그와 함께 나란히 걷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도착한 어느 푸른 숲..
그가 얘기한다.
"사실.. 제가 좀 맬리사 님을 많이 밀어내긴 했어요. 그쵸?.... 근데 제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잖아요? 알죠?
그래도 우리 지금처럼 이렇게 편하게 잘 지내요.. 저도 맬리사 님과 이렇게 좋은 관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더 이상 맬리사 님 외롭게 하지 않을게요."
그리고 그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녀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럽지만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그에게 지금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그러는 건지에 대해서 한마디도 묻고 싶지가 않다.
그저 그의 다정스러운 이런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오래오래 그의 품에 안겨 있고 싶은 바람만 있을 뿐...
'위이이잉!!!!!!!!'
휴대폰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졸린 눈을 한쪽만 뜬 채 메시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간밤에 꾸었던 꿈이 생각나 어이없어 싱거운 웃음을 짓는다.
'ㅎㅎㅎㅎ진짜.. 미쳤나 봐... 야야.. 그렇게 그 사람이 좋냐? 그래도 이건 너무 뜬금없는 꿈이다...야...ㅎㅎㅎㅎㅎㅎ 아... 어쩜 좋냐? 이 나이에 네가 짝사랑에 남자 꿈까지 꾸고... 단단히 미쳤다.. 응?ㅎㅎㅎㅎ'
그녀는 속으로 자신이 이렇게 유치하고 그 작은 볼 키스 하나로도
떨고 있었던 자신이 떠올라 어이가 없어 이렇게 스스로를 놀려 대고 있었다.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 그녀의 나이에 상사병이 오려는 건지 그녀는 자신의 꿈을 떠올리며 자꾸만 웃음이 난다.
'노망이야.. 노망...ㅎㅎㅎㅎ미쳤네.. 미쳤어...ㅎㅎㅎㅎㅎ'
아침밥을 하면서 스스로를 또 비웃는다.
꿈이 자신의 내면을 반영한다는 말이 갑자기 낯 뜨겁게 느껴진다.
그의 존재가 그렇게 자신에게 컸었나를 생각해 보며 그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다고 자신이 이런 꿈까지 꾸나 싶어 스스로에게 놀라는 중이다.
이제까지 그녀에게는 사랑이란 감정이 그렇게 자신의 인생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더군다나 그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기까지는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다크가 더 내려온 것 같아요.ㅎㅎㅎㅎㅎ"
그녀의 직장동료가 아침부터 그녀를 놀린다.
"아니.. 뭐... 그냥 잠을 좀 설쳐서...ㅎㅎ커피 한잔 마시자."
그녀의 직장동료이자 친한 동생인 희경은 그녀보다 5살이 적다.
평소 그녀와는 속 깊은 얘기까지 하는 사이이다.
커피를 홀짝이다가 그녀는 희경에게 말을 건넨다.
" 오늘 아침에 일어나 앉아서 혼자 웃었어.. 너무 어이가 없어서..ㅋㅋㅋ"
"왜? 무슨 일이에요?"
"내가 일전에 글 쓰는 카페에서 만난 분 얘기했었지? "
"아.. 앤디라는 그 분요?"
"응."
"근데 왜요? 또 만났어요? 언제?"
"오늘 아침에 그분 꿈을 꿨어. 너무 말도 안 되는...ㅎㅎㅎㅎㅎㅎ.. 야.. 지금 생각해도 나 너무 초라하다..ㅎㅎㅎㅎ"
"왜요? 꿈에서 그분한테 차였어요?"
"ㅎㅎㅎㅎ아니... 그분이 우리 회사에 와서는 나한테 공개적으로 뽀뽀를 하더니 자기를 이해해 달라고.. 자기는 나랑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그러다가 꿈이 깼어..ㅎㅎㅎㅎ.. 나.. 아무리 연애세포 죽은 지 오래됐다지만 몇 번 만난 남자를 꿈에서 본다는 게 참 말도 안 되고.. 내가 그렇게 외로웠나 싶기도 해서 허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아침에 한참을 웃었어..ㅎㅎㅎㅎ"
희경은 같이 웃지 않았다.
잠시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서는 그녀에게 말을 했다.
"외롭긴 하잖아요.. 지난번 술 먹으면서 저한테도 그분 얘기하면서 외롭다고 저한테 그랬으면서...
그러니까 그냥 편하게 만나요. 뭐 꼭 사귀는 것도 아니고 친구로 만나면 되죠..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도 아니지 않아요? 선생님 지금 혼자 지낸지도 꽤 되셨잖아요? 여자 사람들만 주변에 득실거리고.. 이제는 좀 주변에 남자 사람도 좀 키워봐요.. 좀 더 나이 들면 아예 남자 생각도 안 난다잖아요..ㅎㅎㅎㅎ"
계면쩍어 웃는 희경의 웃음을 알아차린 그녀는 희경에게 말했다.
"그냥 편하게 만나자고 하기에는 그 남자가 너무 경계해.. 지난번에 술 먹으면서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길래 나한테 마음이 좀 있나 싶기도 했어. 그게 뭐 내 오해이든 말았든 뭐 기분 나쁘지는 않았어. 근데 모임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한참 웃고 보니 그분이 의자 맨 끝에 엉덩이 반쪽만 걸치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왜 거기 있어요? 가까이 오세요.. 제가 뭐 전염병이예요?ㅎㅎㅎㅎ이랬더니 다시 오더라고.. 근데 나중에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까 내가 주사가 옆에 사람한테 기대고 좀 때리기도 하거든. 생각해 보니 내가 부담스러워서 그랬구나.. 하고 나중에 생각이 나니까 너무 창피하더라고...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관리하고 이도 안 들어가게 생긴 사람하고 뭘 잘 해보고 그러겠냐고.. 치.."
실제로 그는 그 모임에서 꽤 오래된 연차였으나 그 누구의 구설수에도 오르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철저히 주변의 이성에 대해서는 경계를 했으며 그 어떤 빈 틈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나중에서야 생각이 난 그녀는 사실 약이 올라 희경에게 말했다.
"이도 안 들어가는 분이야. 내가 뭐 어떻게 하자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경계를 하는지.. 치.. 나도 싫다 뭐.."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괜히 심통이 나서는 신경질적으로 종이컵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비가 내린다.
퇴근길에 내리는 비가 버스 창에 여러 색깔로 반짝인다.
외롭다.
이렇게 혼자 지낸지도 벌써 5년째다.
혼자라서 외로운 것은 아니었다. 5년 전 내 남자라고 믿었던 남편과 지낸 15년의 시간도 외롭긴 마찬가지였고 혼자라서 외로운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비참함이 더 해진 외로움이었다.
차라리 혼자라서 느끼는 외로움은 달콤하기나 하지.
둘이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일은 내 존재 자체에 대해 부정하는 것과 같은 고통이 따랐다.
그 고통의 원인은 기대감이다.
기대하고 바라고 기다리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은 없다.
그녀의 전 남편은 항상 그녀를 기다리게 했고 외롭게 했다.
그 기다림의 이유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으나 오랜 결혼생활에 사랑이란 감정은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감정이 아닌가 싶어 그저 그렇게 무덤덤하고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는 그를 정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두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남자는 그녀에게 자신의 인생을 찾고 싶다고, 이렇게 의미 없는 인생은 그만두고 싶다고, 자신을 놓아달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그의 말을 도저히 받아 들일수 없었다.
'그럼 이때까지의 시간이 무의미했단 말인가?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인생을 나와 우리 아이들과는 살 수 없다는 것인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연한 기회에 그에게 오랫동안 깊이 사랑해 온 그의 그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녀는 그를 놓아주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의 기다림도, 기대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이유 있는 오랜 외로움을 그만두게 했다.
이제 그를 통한 내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애쓰던 고통에서 헤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원하던 이혼을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았고 아이들과 더 이상의 기다림이 없는 혼자만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혼자일 때의 외로움은 그래도 참을만했다. 남자도, 사랑도 그녀의 외로움에는 그 어떤 영향도 끼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여러 동호회 활동이나 운동, 모임 등에서 있을 법한 연애의 가능성에 여지를 두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1년 전부터 마음속에 그를 차곡차곡 담아두기 시작했다.
앤디라는 닉네임을 쓰던 그의 글들은 참 따뜻했고 깊었다.
그저 글이 맘에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포스팅에 그가 남기는 댓글들은 가식적이고 매끈하고 멋들어진 글이 아니라 투박하고 소박하지만 따뜻함과 진정성이 보였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속에 그가 들어서게 만든 첫걸음이었다.
그는 적당한 장난기와 호기심을 가진 순수한 남자였다.
결코 녹슬지 않는 감성과 예민함이 있었고 그녀는 그의 그런 면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와의 개인적인 만남이 있기 전까지 여러 사람들과 두 번의 만남이 있었다.
굳이 그와 같은 테이블에 앉고 싶은 욕심은 없었던 그녀였기에 주변인들과 함께 자리 이동 없이 술잔을 부딪혔다. 그리고 한참 대화에 집중하다가 그녀의 옆자리에 그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그녀.
너무 놀라 순간 대화를 멈추고 그를 주변 사람들이 다 알아차릴 정도로 그를 쳐다보며
"응?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하고 물었다.
그는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저요? 온 지 몇 분 됐어요.. 왜요?"
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아..."라는 말로 더 이상의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왜 이러는 걸까? 그 어떤 모임에서도 결코 낯을 가리는 법이 없는 내가 왜 이러지? 이러면 앤디님도, 다른 사람들도 내가 이상하게 보일 텐데... 아.. 술을 더 먹어야 하나? "
더 이상 주변인들의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의 얘기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조용히 혼자 소주잔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취기가 올랐는지 주변 사람들과 농담을 주고받았고 술이 들어가면 웃음이 많아지고 양 옆으로 쓰러지며 웃는 습관이 나온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 습관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참을 웃다가 옆을 보니 그가 의자 맨 끝에 한쪽 엉덩이만 걸치고 있는 것이다.
반쯤 감긴 눈으로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아.. 왜... 왜... 제가 뭐 전염병 있는 사람도 아니고.. 왜 거기 가 있어요? 제가 뭐 잘 못 했어요? 일로 와요..빤낭..."
그가 계면쩍어하면서 슬금슬금 그녀 옆으로 온다.
그리고 얼마 후 자리가 마무리되고 그와 헤어져 집으로 와서 그녀는 그 어떤 여운도 기억해 낼 힘도 없이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천장을 바라보며 순간 그녀의 눈은 동그래졌다.
'그래.. 내가.. 술 먹으면 옆 사람한테 기대는 주사가 있었지.. 하... 그래서 옆으로 가 있었던 건데... 아.. 내가 왜 그랬지?.. 아... 앤디님 대게 무안했겠다.. 아... 왜 그걸 몰랐을까?... 아씨....'
그녀는 카톡을 열어 그의 대문사진을 한참을 들여다본다.
그 흔한 셀카 한 장 올리지 않는 구두쇠...
사과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한참 망설이는 그녀.
이 말도 안 되고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는 자신이 너무 짜증스럽고 그 어떤 여지도 주지 않는 그의 인색함에 화가 난다.
"옘병!!!!!!"
그녀는 휴대폰의 화면을 닫아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