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외로움과 만인의 연인

외로움의 향기가 은은한 빛깔로

by 안드레아
이 글은 '바다에 지는 별' 작가님과 공동으로 쓰고 있는 소설입니다.


외로움이란 뭘까.
외로움이 무엇이든 간에 좋다.
그것이 바로 내가 여자들을 만날 수 있는 이유가 되니까.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그런데 외로움에도 종류가 있다. 생활 속에서 말벗을 할 사람이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 조직에서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없는 데서 오는 외로움.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는 외로움. 혼자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에서 오는 외로움. 낯선 출장지에서 일을 마치고 들어선 텅 빈 호텔방에 느껴지는 외로움.


삶이 화려해 보이고 주변에 사람이 많아 보여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틀림없이 괜찮아 보이는 삶이지만 그 또는 그녀는 외롭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처럼 외롭다. 그녀는 그 배고픔과도 같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미친 듯이 일에 매달린다. 그는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그 감정을 벗어나고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규어 오타쿠가 되어 있다. 그녀는 필라테스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으며 동시에 불어 회화 학원을 다니고 있고 주말이면 마라톤 동호회에서 러닝을 한다. H마켓에 들러 이틀에 한 번 꼴로 쇼핑을 즐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남자들의 외로움을 이해하고는 있으나 나의 관심사는 여자들의 외로움이다. 화려한 강남의 빌딩 어느 잘 나가는 외국계 회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직 여성, 바로 코앞에서 치료를 하는 피부과의 간호사, 드문드문 만나게 되는 여자 택시 운전사, 지하상가에서 옷을 팔고 있는 여자 점원, 외딴 지방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여자 교수, 피곤함을 애써 웃음으로 감추는 비행기 여승무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피부 까만 외고 영어 네이티브 강사, 작은 트럭으로 길에서 김밥과 도시락을 팔고 있는 여인, 명동 거리를 떼 지어 돌아다니는 일본 여자들, 몸에 달라붙는 옷을 육감적으로 입고 일하는 바텐더, 출근길 골목에서 유치원 버스를 타고 가는 어린이집 여교사…


그녀들의 몸짓에서 눈빛에서 읽는다. 그녀가 얼마나 외로움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를. 그 외로움이 언젠가부터 나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 외로움을 그대로 두지 않도록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는 걸 느꼈다.


와카마츠역 구시장 거리


맬리사.


몇 년 전 친구의 권유로 나가기 시작한 한 모임에서 이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리 튀지 않는 조용조용한 타입의 여자.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건 아니고 주위의 사람들과 주거니 받거니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


첫 모임에서 많은 사람들을 소개받았지만, 모임에 나를 데리고 간 친구는 그녀를 직접 소개하여 주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저녁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술도 곁들여지면서 자연스레 자리가 바뀌고 그녀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 아, 맬리사 님이시군요. 저, 실은 맬리사 님 팬이랍니다. 올려 주시는 시와 노래 오래전부터 꼬박꼬박 잘 감상하고 있어요. “


“ 아, 정말요? 와, 너무 기뻐요. 제가 시와 노래를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 수준 미달이라 부끄러워 매번 올릴 때마다 망설이다 겨우 작심하고 올리는 건데.. 이렇게 관심 가져 주셨다니… “


그녀가 이따금 올리는 시를 여러 번 읽기는 읽었다.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았다. 시에 대한 나의 감성이 충분하지 않아서일지도. 그녀의 노래. 항상 누군가와 함께 화음을 넣어 부르던 그 노래. 어떤 목소리가 그녀의 것인지 처음엔 알 수 없었다. 나중에서야 때론 멜로디를 때론 화음으로 받쳐 주는 그녀의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 글에서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20150624_192559.jpg 사진 출처: David Na 센느강


그녀와의 첫 만남이 있기 전부터 온라인에서 그녀의 포스팅을 접해왔기 때문일까. 절대 그 만남이 처음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마치 중고등학교 성당 친구들을 몇 년 만에 다시 만나 이야기 나누는 느낌이 이 정도일까.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건네는 모습도 내가 그녀의 말을 받아치는 모습도.


와인이 준비된 저녁 식사에서 그녀는 제법 많은 양을 홀짝홀짝 잘도 마셨다. 술이 약한 나는 조금 바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녀의 빈 잔을 채워주어야만 했다. 잔을 채울 때마다 정말 기쁘다는 미소를 한 아름 머금던 그 얼굴. 차분하고 조용한 타입으로 분류될 이 여인도 알코올이 스며들자 확실히 더 수다스러워졌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은 나지만 마치 술을 똑같이 마신 사람처럼 우리의 대화는 잘 어울려 갔다.


이야기를 나눌 적에 나는 상대의 두 눈을 바라본다. 어떤 사람은 상대의 눈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한 채 다른 곳을 보며 이야기한다. 맬리사는 내 과였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우리는 마치 둘만 그곳에 있는 것처럼 서로의 눈을 고정시킨 채 사는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그녀에게서 외로움의 향기가 은은한 빛깔로 두둥실 떠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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