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리사님!!
사실 제가 멜리사님을 마음에 담아둔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표현을 못 했지만 제 상황때문에 어떤 오해는 받고 싶지 않아서..그게 멜리사님과 저한테 좋을 것 같아서 좀 맘 상하셨겠지만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어요. 미안합니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가면 제가 편하게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강심장이 아니라서 계속 거절하시면 ...ㅠ.ㅠ
'어머? 이남자? 뭐..지금 협박하는 거야? 그런데 좀 귀엽네?ㅎㅎㅎ'
이런 생각으로 답글을 쓴다.
좀 많이 놀라는 중이네요. 어떤 상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있었다고 하시니 제가 좀 힘들었던 감정은 좀 누그러지는 것 같아요..힘든 상황이 있는 것 같은데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시간과 장소를 말씀해 주시면 제가 거기로 갈께요. 일본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으실텐데 건강 잘 챙기시고요...오시면 연락 주시고 정리하신다던 집안 일도 잘 마무리 하시고요..
갑자기 그 상황이란 것이 매우 궁금해졌지만 개인적인 일을 물어볼 사이는 아니었기에 무심히 틀어놓은 텔레비젼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하다만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일 뒤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낯 익은 얼굴들에게 눈 인사를 나누고 모임을 시작했다.
여러 다양한 글 얘기와 삶에 대한 얘기들이 오갔다.
"다양한 글 들 중에 저는 멜리사님의 글이 자꾸 관심이 가더라고요. "
글모임 끝나고 뒷풀이에서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느라 열심히 저작활동에 열중하던 현영은 자신의 닉네임이 귀에 꽂혀 국수가락을 채 정리하지도 못 하고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헷세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장문의 소설과 수필로 카페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글은 매우 전문성이 있으며 어떤 분야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면서 글을 디테일하게 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영은 사실 그의 그런 집요하고 다소 편집적인 성향이 실제적인 성격에도 묻어 있을까 싶어 일부러 그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ㅎㅎㅎㅎ아..진짜요? 감사해요. 헷세님.
저야..뭐...솔직히 그냥 끄적거리는 수준이라...뭔가 묵직하게 오래 묵혀두면 병이 되는 사람이라 그때 그때 올라오는 생각이나 느낌을 순식간에 써 갈겨야..ㅋㅋㅋㅋㅋ..죄송해요. 표현해 놓아야 왠지 기분이 상쾌해지는 병이 있어요. 헷세님 글에 비하면 저는 아이들이 그리는 삽화수준이예요..ㅎㅎㅎㅎ"
"허허허..아니예요. 멜리사님.
저는 솔직히 어떤 재치나 사고의 전환이 매우 빠른 멜리사님 글에서 어떤 활력같은 걸 느껴요. 어쩜 그렇게 재치가 넘치고...사실 가끔은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멜리사님 글보고 갑자기 터진 웃음때문에 곤란했던 적도 몇 번 있었어요..허허허허.."
현영은 애써 그가 자신에게 사적인 관심이 아니라 글적인 관심이려니 하고 최대한 겸손한 자세를 취했으나 괜시리 그의 관심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글은 종교적인 색채가 느껴지는 보수적인 면들이 다소 보였고 소설속의 주인공도 생각이나 말에도 매우 냉소적인 어떤 것들이 담겨 있었다.
현영은 종교에 대한 편견은 없으나 그녀와는 맞지 않은 성향이라 여겨 그와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글은 그 사람과 별 개의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든 분명 녹아드는 것이기에 현영은 그에게 그런 면이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에게 이성적인 어떤 호감으로 그를 생각해 본적은 없었지만 관심사가 비슷하지 않고 너무 이질감이 드는 사람과의 만남이나 대화는 왠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해요. 헷세님.ㅎㅎㅎㅎ 저도 헷세님의 진중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부러워요. 관심 감사해요. "
현영은 그렇게 얘기를 마무리 하고 싶어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수필과 음악 장르를 다루는 쿄쿜님과의 자리에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우와!!멜리사님이다!!!ㅎㅎㅎ 왜 이렇게 오랫만이세요? 멜리사님 없으니까 술 마실 사람도 없고..에이...뭐..혹시 연애하신? ㅎㅎㅎㅎ"
너스레 웃음으로 젊고 활기 넘치는 쿄쿜이란 닉네임을 가진 남자가 현영을 반겼다.
"ㅎㅎㅎ 우와...제가 그렇게 존재감이 있었나요? 알콜적으로만?ㅋㅋㅋㅋㅋ 아씡...글 열심히 써야겠다..ㅎㅎㅎㅎㅎ"
"에이..멜리사님..그건 아니죠..ㅎㅎㅎ알면서 괜히 또 앙탈은? ㅎㅎㅎㅎ"
즐겁게 잔을 부딪히고 멜리사는 얼큰히 취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랫만에 간 자리는 생각보다 더 즐거웠고 현영을 반겨주는 사람들이 많아 현영은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모기장을 치고 자리에 누웠다.
실내등으로 바꾸고 읽다만 책을 편다. 물론 취기가 올라 10분도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녀는 책을 편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첼로 음악이 낮게 깔려 있다.
그 사람의 좋은 점만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싫은 것까지 좋아하면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약간 말이 안되어야 사랑 같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분명 사랑과는 연관이 없는 처세술에 관한 책인데 이런 문구가 나오는 게 의아했지만 현영의 눈에 꽂혔다.
사랑은 말이 안되어야 사랑이다.
그렇다. 현영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의 행동과 몇 일전 자신에게 보냈던 문자는 말이 되지 않았다.
지난 번에 접어두었던 궁금증이 다시 고개를 든 상황이 아무런 답도 알지 못하면서 다시 반복되는 것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사람을 궁금하게 하는거야? 씨...뭘 말해 주겠다는 건데? 어? 뭐가 그렇게 복잡해? 내가 사귀자고 했나? 그냥 편하고 좋은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마음인데 뭘 그렇게 진지해? 어? 혹시 헷세 같은 진지파는 사람아냐? 아..진짜 그럼 내가 피곤한데...아..이건 아닌데...그냥 나가지 말까? '
이런 사고의 비행속에 현영은 어느새 곯아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