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라 죽으라 했던 몇 개월을 보내고 있었던 9월의 마지막 밤.
12년 묵은 친구, 수정의 러브콜을 받고 설악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자주 그를 보러 버스여행하던 시간들이 그리웠다.
다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살짝 접어 넣으며 지나치는 풍경을 음악과 함께 즐겼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거리.
친구와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구워주는 맛난 음식에 알콜 한잔씩이 들어갈 때마다
몇 개월동안 숨막혔던 숨통이 조금씩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내게 이 친구는 그런 존재였다.
무언가 죽을 것처럼 눌러대던 삶의 무게를 순식간에 깃털처럼 가볍게 만드는 신공이 있는 친구.
그 어떤 문제에서도 결코 진지해지지 않을 수 있는, 잠식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내공이 있는 친구다.
내가 힘들 때마다 점쟁이를 찾아가 앞 일을 물어보는 느낌으로 찾는다.
이번에도 맛난 음식들을 천천히 즐기면서 풀어가는 이야기 속에 나는 다시 평정심을 찾고 불안해서 잔뜩 움츠러든 등과 어깨를 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되었든, 사랑이 되었든, 상황이 되었든 본인의 마음이 닫혀지게 되면 거기까지 갔다가 돌아서면 된다는..
그 어떤 관계도, 감정도 영원할 수 없으며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붙들고, 이어가려 하는 일 자체가 자신을 낭비하는 일이며 아까운 자신을 그렇게까지 깔아줄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은 아무도 없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다시 13년 전에 뒷통수를 얻어 맞았던 그 때의 충격을 다시 느꼈다.
생각해 보면 내가 힘들어 하고 답답해할 때마다 점쟁이들처럼 내게 흐트러진 지나오고 있는 시간을 정돈시켜 주고 앞으로의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해 알려주는 친구들이 내 인생의 막다른 길목에 서 있었다.
참 감사한 사람들...
약하고 겁 많은 내게 신은 어쩌면 이런 작은 선물 꾸러미를 준비해 두고 계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삶을 살아갈 때 맞닥뜨리는 숙제 앞에서 힌트를 주는 것처럼 내 주변인, 친구들이라는 존재의 거울을 통해 나를 비춰보고 내 강점과 숨겨져 있던 잠재력을 소환해 내어 하얘진 머리로 덮어버린 시험지를 다시 풀어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아내야 한다고..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동안은 꼭 살아내기를 바라는 신의 격려가 친구들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
우리의 존재는 결코 스스로 태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그 누가되었든, 그 어떤 이름의 신이 되었든 그 신이란 존재는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는 그 존재에 대해 알지는 못 해도 그저 어렴풋하게 인정하고, 신이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를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존재는 그리 크지 않지만,가치있는 일을 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우리의 존재는 존재자체만으로도 유의미하며 존재하고 살아내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왜냐하면 그 과정자체가 그리 녹록치 않으며 어지간한 정신력이 아니면 내 생이 다할 때까지 오래 오래 버텨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모두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
이미 우리는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있으며 덮어버리고 싶은 시험지를 계속 풀어내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되었다.
살자.
살아내자.
지금처럼 멈추지 말고 계속 걷자.
뛰어갈 필요없다.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은 어차피 끝내는 가고야 말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