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명절 때 친정 갔을 때 언니가 노르웨이 남자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슈렉을 닮아 너무 못 생기고 벌이도 그닥인데 착하단다.
너무 소탈하고 긍정적인 성격이 괜찮다고..
하지만 몇 주 뒤 언니는 풀 죽은 목소리로 외롭다고, 우울하다며 내게 전화를 했다.
내용인즉슨 그 남자는 생일 때도 신용카드
한 장으로 때우려 했고,
사냥을 가거나..ㅋㅋㅋㅋ..하이킹을 갈 때면 일주일이 넘게 연락두절 되기 일쑤였던 그 남자의 행태는 40세 후반을 달리고 있으나 여전히 연애세포는 20대의 수용체를 가진 언니로서는 분통을 터트기에 충분했다.
처음 몇 개월동안 나긋나긋함의 가면을 썼던 언니는 급기야 발톱을 드러내고 말았고 언니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봐버린 이 남자는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냉전기가 주기적으로 찾아 온 두 사람.
언니의 칼바람보다 매섭고 잔인한 독설에
그 불쌍한 노르웨이 남자는 울며 밤을 세우기 일쑤였고 끝내는 언니에게 조련되어 약간의 교화가 가능해진 어느날 옆구리 찔러 절받는 식으로(사귄지 1년이 넘어가던 그 때까지도 결혼하자는 말 한마디 없었다고 한다. ) 청혼을 했단다.
하지만 결혼하는 과정 내내 언니는 내게 수시로 전화를 해서 그 남자의 센스없음과 무신경함에 혀를 내둘렀고 망설여진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한결같은 답으로 일관했다.
언니의 지랄맞은 성격을 그 염소웃음으로 무력화 시킨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었다고...
그러니 그냥 교화시키든가 아니면 도를 닦으면서 살 생각하라고 했다.
내게 악담을 하라고 통화의 끝은 언제나 내게 욕을 한바가지 해 주곤 했었던 언니는 끝내 그 염소 웃음소리의 노르웨이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신혼의 달달함은 아니어도 평화로움의 연속일 거란 생각을 하던 어느 날 언니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재산분할 문제를 얘기하는데 기분이 묘하더라는 것이다.
이혼시 철저히 이 집의 반을 나눌 것인지, 오랫동안 모아온 통장의 잔고의 몇 퍼센트를 서로 나눠가질 것인지..등등....
그 과정에서 너무 아무렇지 않게 모든 상황을 무덤덤하게 대하는 형부의 태도가 너무 서운하고 슬프더라는 것이다.
그 나라의 문화라는 것이기에 어차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역시 한국의 우리 문화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이 되었다.
언니와 얘기를 하면서 마지막에 대한 얘기를 신접살림을 시작하면서 얘기하는 것이 참 이율배반적일 수 있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란 것에 서로 공감했다.
사랑의 시작은 누구나 좋을 수 있지만 끝을 맺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바꾸고 본색을 드러내며 심한 감정소모와 실망으로 힘들어 하는 상황이 많은가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논리적이고 현명한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과연 내가 이 사람과 평생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자신의 감정과 선택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실망스럽고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 사람이었다는 결론을 얻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이별 마지막의 순간에 서로의 이상적인 모습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최대한 서로 상처를 주고 받지 않도록 배려하고 각자의 책임에 대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선을 다해 그 책임을 지려고 노력할 수 있는 지구력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명하기보다 정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됨이 이별하는 순간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면서 우리는 이런 부분까지 헤아릴 수 있다면 그 어떤 마지막의 순간이 오더라도 자신이 사랑해 왔던 시간에 대해,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가 덜 할 것이고 그런 마지막의 순간의 가능성도 훨씬 낮아지지 않을까?
나 또한 그 마지막의 순간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 사람됨이 이별에는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에 확신한다.
마지막은 누구나 아프고 누구나 힘들다.
하지만 그 강도를 덜하게 하며 서로의 뒷모습에 응원해 줄 수 있는 사이로 이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 이별을 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사랑하는 동안에도 좀더 현명하게 상대를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