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이별을 고하다.

파란달 작가님 책 후기

by 바다에 지는 별

연말이 되면서 나 또한 나의 이별에 이별을 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파란달작가님이 최근에 발간한 책을 내 이별의식의 제물로 구입했다.

(다소 의도적이었음. )


표지부터 깔끔하고 이별에 관한 글을 내기에 적합하다.

책 뚜껑을 열고 ...나의 색연필을 장전하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한 장면을 넘길 때마다 부드럽지가 않은 게, 꼭 높은 방지턱을 가까스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지나가고 나면 힘이 든다. 너란 기억.
하얀 연기 같은데 날카롭다.


너를 사랑하는 게 내 의지가 아니듯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네 잘못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나의 내일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너.


어떻게든 견디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게 미워 보이던 그 순간의 그녀도 실은 괜찮았다고. 그래서 힘들던 날들도 어쩌면, 어쩌면 무척 소중했다고.

능동적 기억 지우기.
아무래도 흘러가는 대로 두는게 나랑 더 맞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도 치우지 않았다.


사랑해서 함께하려 했다기보단 내가 이루고 싶은 꿈에 그녀를 끼워 맞췄던 건 아니었을까.
충분히 진지했지만 너무 어렸고, 어쩌면 어리석을 만큼 순수했던 탓에, 우리는 너무 어설펐던 것은 아니었을까.


섣불리 먼 곳을 바라보지 않아야겠다.


아직 쓰지 않은 내 인생의 페이지를 나보다 먼저 그가 차지하게 해선 안 된다. 어느 정도의 빈틈, 얼마 간의 거리, 적절한 선, 소중한 것일수록 아껴둘 줄도 알아야 한다.





여느 책을 보면서 하듯이 책을 읽어 내려 가면서 내 마음을 얹어본다.


읽는 내내 글의 내용과 닮은 예쁜 사진들에 눈도 쉬어보고 그 사진을 보면서 글귀들을 다시 한번 음미도 해 보면서.


이별을 곱씹고, 곱씹기.


기억하고 또 기억해도 그 추억이나 기억은 늘 다른 맛이 느껴지고 다르게 생각이 되어진다.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그리고 즐거웠던 일과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기억.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미움이나 원망의 독기가 빠지고 나면 나쁜 기억도 좋은 기억으로 색이 바래진다.


모든 것이 그립고 좋은 기억으로 바래진다는 것.

그래서 나쁜 기억조차도 떠올리기에 그리 아프지 않은 상태가 되는 이별이라는 과정.


그래서 기억을 애써 지우거나 외면하기 보다 그저 내 일부인 것처럼 내 주변을 서성거리게 놓아두게 된다는 글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본다.


무엇에든 함께여야 하고, 알아주어야 하고, 내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해주어야 하고, 받아주어야 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


그런 마음에서부터 서로의 다름은 망각되기 시작하고 상대에게 뻔뻔스러운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서로 서운해 하고, 쩔쩔매고 그러다가...그러다가...서로에게 지쳐간다.





서로를 아껴주는 것이란?

진정 상대를 사랑한다는 건?


편안하게 해 주는 것.

언제든 시간되면 쉬고 싶어 내 곁으로 찾아들게 만드는 것.

무언가를 공유하지만 똑같아지기를 강요하지 않는 것.


상대에게 있지도 않은 능력을 확신받으려 애쓰기보다 각자 할 수 있는 능력에 힘을 넣어줄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기.






어줍잖음,

어설픔.


이 단어 속에는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것을 내 것처럼 보여주려다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쁜가?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렇게 되어보고 싶어서 애쓰는 그 노력이.


그런 노력과 애씀이 있기에 풋풋하고 상큼한 것이 사랑 아니겠는가?


너무 잘 하려 애쓰는 마음,

나와 같아지기를 원하는 마음.

서툴고 어린 사랑을 하는 이에게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그 성급함과 어리숙함이 시간이 지나면 틀렸다는 걸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될 수 없고, 내 생활이 사랑하는 이의 생활에 다 맞춰질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또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어린 사람은 성급하지만 뜨겁게 사랑을 해야 하고, 노숙한 사람은 성숙한 사랑을 해야 덜 아프다.





이별에 관한 책이었지만 아프지 않다.

자극적이지도, 지나치게 감정적이지도, 회의적이지도 않다.


그저 책 속에서 느껴지는 풋풋함과 달콤한 이별의 말들이 나는 부러웠다.


사람이 태어나 그 나이에 적합한 성장과정을 겪으며 어른이 되듯이 사랑에도 그 나이에 적합한 사랑 방법들이 다 정해져 했다.


그런 수순을 밟고 성숙하는 사랑을 해야 덜 다치고 덜 다치게 할 수 있다.


충분히 아프고, 충분히 그리워 하며, 충분히 생각해 보기.


그러다보면 그 추억에만 머물러 정체되어 있는 내가 아니라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머무르기만 하지 말자.

충분히 추억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사랑을 꿈꾸어도 좋으리라.



억지로 떼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길 필요는 없지만 떠나고 싶어지는 때가 왔다면 그 시간을 마주해야 한다.


책을 덮으며 나는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 오랜 이별에도 안녕을 고할 때가.....

https://youtu.be/7I0oebN6wt8

안녕..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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