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족이 나오는 종류의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아직은 왠지 불편하다.
그랬던 내게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안정환 부부의 김치 담그는 모습이 눈에 걸렸다.
엄마가 뭐길래 라는 프로그램이다.
내용은 이랬다.
안정환씨의 아내는 가정 일에 무심한 남편을 최대한 지구력 있는 애교와 회유로 함께 김치 담그는 일을 하기를 종용했다.
하지만 남편 안정환씨는 최대한 집안 일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오랜시간 방영되었다.
이 후 아내의 인터뷰에서 오랜 외국생활을 하면서 혼자 육아를 하며 집안 일을 모두 해결해 왔지만 지금은 남편과 함께 어떤 일이든 함께 하고 싶었다고...
힘들었지만 힘들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힘든 것을 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내인 이혜원씨 마음 속에 있었나보다고 고백했다.
나는 운동선수 생활을 했었던 지인을 몇 명 알고 있다.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행동반경이나 사고방식은 그 몇 안되는 사람들이 매우 비슷했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운동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단정할 수 없음을 밝혀 둔다.
무튼 내가 아는 그들은 매우 단순하다.
운동에 대해서는 매우 철두철미하며 게다가 프로정신이 투철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운동에 온 정신과 육체를 소진한 후 모든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내기에 집에 가서는 최소한의 할 일을 해치운 후에는 거의 살아 있는 송장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그리고 특출난 고도의 집중력이 있어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나 사람에게는 매우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나 반면에 지구력은 매우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여 인간관계, 특히 연애할 때 오래 연애하는 것을 매우 버거워한다고 했다.
(시간이 갈수록 여자친구들의 요구사항은 많아지고 반면에 본인은 지구력이 길지 않기에. )
위에 나열한 얘기들이 내가 아는 전문 운동선수들의 공통점이다.
그리고 안정환씨처럼 그들도 가정을 꾸렸고 텔레비젼에 나오는 안정환씨와 비슷한 가정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가고 있었기에 그 모습이 참 익숙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집에만 오면 바닥과 한 몸이 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이 감수하고 희생해야 가정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것도 충분히 안다.
하지만 안정환씨의 아내처럼 여자도 오랜 시간 희생하다 보면 지치고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운동을 하고 있든, 운동계를 떠나 있든 잘 해야 한다.
아내의 입에서 무언가를 같이 하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할 때는 이미 아내로서의 인내심도 많이 바닥이 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놓치기 시작하면 아내인 여자들도 참기 힘들어지면서 다툼도 많아지고 그러면서 부부는 멀어지게 되어 있다.
밖의 일만으로도 힘든데 집에까지 와서 남편 노릇해 달라고 징징대지 말라는 식의 발언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전쟁은 시작되는 것이다.
다시 평화를 찾기 위해서는 조금의 능동적인 표현이나 행동만이 해결방법이 될 수 있다.
여자는 남편인 남자의 사랑이나 애정에 확신을 갖게 되면 남자를 향한 더 이상 떠보기나 징징대기를 멈추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여자 역시 그렇게 징징대는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의 노력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면 그 일을 잘 하든 못 하든 아내인 여자는 좀더 남편을 쉬게 해 주고 싶어하고 좀 더 나긋한 여인으로 돌아간다.
아내인 여자를, 그대의 여자를 더욱 나긋하게 만드는 방법은 백 마디의 현란한 언어보다 한 번의 능동적인 액션인 것을 잊지 말자.
또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안정환씨가 다 만들어진 김치와 보쌈을 먹으며 할머니 얘기를 꺼낸다.
그렇게 김치만 싸주시는 할머니한테 못 되게 굴었다고...
이렇게 김치 담그기가 힘든 일인지 알았더라면 그렇게 철없이 할머니한테 그러지 않았을 거라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저 아름답고 멋진 외모의 철없고 이기적인 남자에서 조금은 철이 들어가는 안정환씨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남자가 눈물이 많아지는 것은 남성 호르몬의 감소도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측은지심 즉, 누군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이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멀리 가지 않고도 내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
내 가족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는 마음의 눈은 빨리 발달 할수록 가정생활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안 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그 어떤 선남선녀 커플도 위기를 모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안정환씨가 나와서 몇 가지 기사를 찾아보았다.
잘은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멋지고 잘생긴 안정환씨도 아버지의 부재라는 상처가 있다고 했다.
안정환씨에게도 그런 아픔과 결핍이 있듯이 그 어떤 사람에게나 성장과정에서 아픔이 있고 결핍이 있다.
나 또한 그렇게 넉넉치 못하고 늘 치열하게 살아온 어린 시절 덕에 후일 나의 가정은 절대 꼭 행복해야 한다라는 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성장하여 어른이 되고 나름 경제적으로도 독립을 하면서 바라본 세상의 남자에게는 내가 원하는 가정을 꾸릴만큼의 완벽한 남자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고 급기야는 독신으로 살아가리라 마음 먹었었다.
그런 나에게 우여곡절 끝에 한 남자가 나타났었고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가정에 충실했다.
하지만 상대는 내노력에 상관 없이 협조가 잘 되지 않았고 내 이상도 무너져 내렸다.
그런 노력.
함께 가정을 꾸려가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으로 함께 하고 픈 희망으로 나는 정말 애쓰면서 살았던 것 같다.
아내 이혜원씨가 그렇게 갖은 애교와 회유를 하는 모습이 내가 애쓰면서 살았던 모습과 겹쳐졌었다.
결코 아이 아빠를 가정에서 주변인으로 남겨 두기 싫었던 내 마음이 그렇게 애쓰게 했다.
하지만 그 행복의 열쇠를 쥐고 있었던 사람이 아이 아빠였으나 그는 내 바람따위는 관심도 없어 보였고 그는 늘 바빴다.
나는 힘들고 버겁지만 힘들다는 말 한 번 하지 않았다.
그 모습 또한 안정환씨의 아내가 남편의 운동생활에 몰두할 수 있도록 홀로 외국생활에서 육아와 잡다한 가정사를 묵묵히 홀로 해결해 낸 모습과 흡사했다.
그 노력을 분명 그가 알아줄 날이 올거라고 확신하면서 죽을 힘을 다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그 노력은 그저 나의 노력으로 끝이 나 버렸다.
다행히 내 노력과 애씀 덕분에 내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잘 성장해 있으나 내 이상과 희망은 산산히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 욕심내지 않았는데....
그저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여주고, 함께 해 주기를 바랬는데 그는 무심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여자들은 거창한 행복이나 전폭적으로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남자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노력과 관심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 최소한의 노력과 행동조차도 보여주지 않는 주변인 같은 남자의 태도에 여자들은 외롭고 그런 시간이 오래될 수록 자신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게 되다보면 나긋했던 여인에서 악녀로 탈피하게 된다.
오랜 결혼생활에서 서로의 노력 없이는 순탄한 결혼생활이란 있을 수 없다.
여자를 여자스럽고 우아하도록 남자가 역할을 해 주어야 하고 남자가 남자스러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여자가 자신의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배역에 충실하기.
그것이 무대에 올려진 연극이 장기간 상영될 수 있는 길이다.
이왕 무대에 올려진 연극이라면 각자의 배역에 충실하여 완벽도 높은 연기로 장기 상영할 수 있도록 각자의 전문성을 높여 보자.
내 배역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라는 책임감으로.
하아~~!!!!또또 이런다.
역시 ...나는....가족 프로그램만 보면 이렇게 진지해지는 습관이 고쳐지지가 않는다.
아직도 내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