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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Feb 24. 2017

수순이 아닌 인연

목소리 좋은 게 발령 이유란다..목소리가 내 인생의 걸림돌이 될 줄이야..

내년에 운수대통 하려나?


올해 나의 모자보건실 인사발령은 같은 직급의 동료나, 내 윗 선의 직장상사 및 타부서에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기에 발령 후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들의 레이더 망에 항상 걸려 있어 감시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구내식당을 오가는 길 만난 그들은 다들 내게 별로 공감하고 싶지도, 동조할 가치도 없는 내용의 말들을 영혼없이 내뱉고는 사라진다.




발령받은 부서의 평판은 다음과 같다.


저녁 11시까지 몇 달 내내 야근하는 부서.

하루 평균 100여통에 가까운 전화 안내 민원을 상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의 극치를 맞볼 수 있는 부서.

무작위의 사업 확장으로 기본 사업 안내만으로도 한 민원당 15분 이상을 상대해야 하는 부서라는 것이 현 발령지의 평판이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의 부서에 자신이 발령날까 두려움에 떨며  연말을 보내던 그들에게 나의 인사발령은 그들의 안위와 안도의 한숨이 되었다.





그러나 물론 나는 지금 잘 살아 남아 있다.

그 누가 보아도 사업의 특성상 매우 적합한 인성과 응대 기술을 인정 받을만큼 나는 완벽히 적응을 해냈다.

하지만 그 업무량이나 강도 높은 감정노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만큼

늘 녹초가 되어 퇴근한다.



하지만 편히 지친 기색이나 식상하고 사무적인 태도를 보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업무 대상이 매우 예민하고 감정선이 약해진 임산부, 임신에 노력하고 있는 여성들 그리고 미숙아를 출산한 산모, 고위험 산모들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예민하고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닌 상황에서조차 예민하게 반응하고 심각하게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는 여인들이 좀 과한 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었으나

약 한달 반여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요즘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과 아이라는 생각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여느 때처럼 임산부 등록을 위해 자리에 앉는 여인.

인사를 하고 등록절차를 진행하면서 예전에 등록된 정보가 있다.

그러나 출산으로 퇴록되어야 당연한 상황인데 아직 임신44주로 대상자 분의 임신 주수가 활성화 되어 있다.



참 난감하다.

고심 끝에 질문한다.


"저희 쪽에 예전에 등록하신 이력이 있으시네요?"


여인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대답한다.

"작년에 유산하고 둘 째 가져서 다시 등록하러 왔어요. "


아....

나는 왜 갑자기 울컥했을까....

하지만 시간을 끌지 않고 나는 바로 말한다.


"아..그러셨구나..너무 축하드려요.  

많이 힘드셨을텐데 그래도 착하게 아기가 빨리 와줬네요?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 출산 때까지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세요. "


아직 아가씨 티가 많이 남아 있는 여인은 반달 눈이 되어 함께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한다.


아픔을 잘 견뎌낸 엄마에게 빨리 찾아와줘서 고맙구나..



이 여인처럼 비슷한 상황의   여러 여인들을  보면서 다양한 생각이 든다.


임신은 사랑하는 남녀관계에서 너무 당연한 수순일 수 있지만 그 속에 너무 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그로 인한

상실의 상황이 생긴다면 한 인간으로서, 새끼를 가진 어미로서의 큰 아픔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첫 임신에 대한 많은 기대감과 행복감은 그 어떤 충족감과 행복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크기에 그녀의 상실감과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되어 순간적으로 크게 가슴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다시 어미가 되기 위해 그런 힘들고 버거운 감정과 상황들을 딛고 일어선 여인이 너무 대단해서 나의 가족 일도 아니면서 주책맞게 벅찬 것이다.


어디가나 이 감정의 오지랖은 지병인가 보다.


지원물품과 안내서를 가지고 사라지는 여인에게 이번에는 꼭 건강한 아기와의 인연이 끝가지 이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응원의 눈길로 그녀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결혼시기도 늦어지고 그로 인해 출산시기도 늦어지고 있는 요즘.

임신이라는 것이 그렇게 당연한 수순처럼 찾아와 주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들여 애쓰는만큼 그렇게 쉽게 찾아와 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이와의 인연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설령 그렇게 애쓴 결과로 생명이 내게 찾아와 주었다고 해도 끝까지 그 인연을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수많은 어려움과 기적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곳을 찾은 여인들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미지의 한 생명이 내게로 오기까지 수많은 기적이 필요하듯 우리의 길고 긴 인생에도 기적없이는 수많은 사건, 사고와 어려움을 건너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리거나 젊은 여인에게 기적이 필요하듯 평범한 인간으로 생을 살아내는 일에는 똑같이 수많은 기적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힘없이 주어진 시간대로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기대하는 기적의 종류만 다를 뿐이다.


생을 살아내는 모든 존재들에게는 기적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인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들...


그 가운데에는 상실로 인한 격한 아픔도 포함될 것이다.


특히 내 뱃 속에서 한 동안 커다란 존재감을 느꼈던 시간잃어버리는 것은

너무 가혹한 아픔이고 슬픔일 것이다.


이런 아픔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이 곳에서 새삼 실감하면서 나는 직업의식 이상의 그 어떤 노력들을 자꾸만 하게 된다.



여인으로서가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원하는 여인들의 삶.

얼마나 많은 노력과 수고와 아픔이 있을지 조금이나마 먼저 그 시간을 건너온 사람으로 나는 덤덤하지만 최대한 사무적이지 않게 그들을 향해 응원의 메세지를 보낸다.


우리 모두에게는 기적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리고 내가 잠시 몇 분 스쳐가는 짧은 여인들의 인연에는 더욱 각별한 기적이 필요하리라.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그들을 떠나보내며 속으로 어떤 신에게든  나즈막히 염원의 기도를 올린다.



아이라는 인연을 건강하게 잘 지켜가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아이와의 인연이 하루속히 닿길....


그리고 무사히 어미와 자식으로 건강하게 얼굴 마주할 수 있기를..


쉬잇~♡금방 찾아갈께요..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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