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기름같은 세 여인의 여행기

by 바다에 지는 별

가족이지만 성향이 그리 썩 맞아 떨어지지 않는 세 여인의 무리수 남해 무박 여행은 가장 엄마를 싫어하는 언니의 머릿 속에서 나온 기획이었다.



처음부터 걱정은 되었지만 엄마의 나이 72세,

나 45세, 언니도 먹을만큼 먹은 나이(밝혔다가 후폭풍 맞을까봐ㅋㅋㅋ)이기에

각자의 강렬한 개성이 조금은 누그러졌길 기대하면서 세 여인의 의미있는 여행 출발 ~♡




처음 시도해 보는 세 여인만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을 달려 도착한 남해의 유명한 물회집.



날 것을 원래 좋아하지 않는 성격상

별로 구미에 맞지 않을 것 같은, 유명한 물회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음식이 나와서 본 물회는 그 땟깔부터 남달랐다.

탤런트 박원숙이 단골이어서 더욱 유명해졌다고는 하지만 맛으로도 유명해졌을 그런 집이다.

너무 맛있게 두 그릇을 비우고 통통배들과 바다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평소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엄마께 독사진을 찍어드리겠다니까

들고 있던 일회용 종이컵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홱~!!!!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엄마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복화술로 불만을 터트리면서 종이컵을 주워드는 언니의 모습에

나는 웃음이 빵터져버렸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찌 이리 두 분은 나의 예상에 한치의 오차도 없는 리액션들을 하시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다음코스는 보리암.

20대 초반의 기독교 동아리에서 경험했던 지옥 처녀산행이었던 그 금산에 위치.



입구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한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 다랭이마을을 가보기로 한다.


같은 길을 여러 번 돌고 돌았지만

어차피 돌고돌면 그 자리로 돌아오는 섬의 구조상 길 잃어버리는 걱정은 접어두고

파란 바다와 시원한 바람, 산과 바다가 푸근하게 품고 있는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들을 즐기기로 한다.



돌고돌아 도착한 다랭이마을.

탤런트 박원숙의 집과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어 더욱 유명해진 곳이란다.



급한 경사로로 바다와 이어진 길.

곳곳에 심어져 있는 허브를 쓰다듬어 향기를 음미하면서 심심치 않게 길을 내려온다.


새로운 허브와 꽃의 등장에 꽃꺽음으로 체험하시는 엄마의 모습.

나는 몇 번 그냥 보시고 만지기만 하시라고 말씀드리지만 아랑곳하지 않으시는 어머니..ㅋㅋㅋㅋㅋㅋㅋ



파란 바다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닿아 있고 초록 빛이 함께 공존하는 풍경이 욕심이 나서 사진을 찍어댄다.



높은 경삿길을 오르면서 마을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어렸을 때 보았던 우물과 바닷 바람에 춤을 추는 빨래.

그 아래 꾸며진 소박하고 예쁜 화단들이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언니는 수없이 많은 여행을 하면서 유명지보다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각 나라의 마을 골목들을 구경한단다.


이른 시간 그들의 아침의 소리들, 냄새들, 풍경들을 보고 느끼면서 각 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아졌다고 했다.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다 내려쬐는 햇볕에 젖어버린 등줄기의 땀을 식히자며 잠시 박원숙의 까페에 들러 오미자차와 커피를 마신 후

보리암으로 천천히 출발했다.


길이 많이 좋아졌는지 금산 보리암의 1km전까지는 자가용으로 이동을 허락해서 산에 대한 부담감을 덜고 보리암에 올랐다.


93년도 대학시절 답사했었던 이 곳, 보리암.

그때는 바닥도 황토흙으로 질퍽거렸고 사찰도 두 곳 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무척이나 정돈되고 발전한 모습이다.



작은 섬들이 시원하게 한 눈에 보이는 풍경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엄마는 과거 보살님의 직함답게 오래 절을 하며 기도를 하신다.

보리암의 수많은 계단과 오르막을 천천히 오르며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60대 초반의 짧은 명을 마감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과 서운함에 대한 얘기들.


엄마만큼은 아니어도 20년 가까이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는 나로서는 부부로서의 엄마 이야기들이 멀지 않은 나의 이야기로 가까이 와 닿는다.


남녀로 만나 부모로 살아가는 것.

자식의 눈이 아닌, 같은모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생이 아둥바둥 살아내야 하는 숙제이지만 언젠가는 끝이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의 위로를 받았다.



보리암의 짧지만 제법 높은 언덕을 오르며 많이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



젊은 나보다 힘이 세고, 잔병도 없으신 엄마도 72세의 나이를 속이지는 못하나 보다.

늘 괜찮다, 아직은 괜찮다, 잘 할 수 있다라는 말로 건강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내던 엄마가 나이는 못 속이겠다는 말을 연이어 하시는 걸 보면서 마음 한켠이 찡해 온다.



그래도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씩 가벼운 운동을 하고 아침에 건강쥬스를 손수 만들어 드시고 아르바이트 하러 가셨다가 늦은 점심을 드시고 해 질녘 즈음 해운대 바닷가를 산책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는, 규칙적인 하루하루를 자랑하며 말씀하신다.


역시 활력 넘치고 자기 관리도 참 잘하는 엄마가 참 존경스럽고 고맙다.


자식으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미안함과 함께 고맙다고 말씀드린다.



엄마는 괜찮다고..아직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곁으로 와 달라고 말씀하신다.



해가 뉘엇뉘엇 넘어갈 때 즈음 남해시장으로 들어가 갈치조림과 된장찌게를 시켜 심한 시장끼 탓이었는지 맛있게 음식들을 싹싹 비웠다.



그리고 여행의 하이라이트 코스인, 힐든 호텔의 싸우나로 향했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조용하고 한산하다.



언니와 엄마는 간단히 샤워를 하고 아래층의 찜질방으로 갔고 나는 노천탕의 매력에 푹 빠져 동행을 거부하고 홀로 노천탕을 즐겼다.



혼자 실외에서 즐기는 노천탕의 기분은 참 여유로웠다.



오른쪽으로는 빨갛게 달아오른 석양이 소나무숲 사이로 지고 있고,

정면에는 산과 섬의 풍경이 시원하게 보인다.



온탕에 목까지 몸을 담갔다가 답답해져 올 때 즈음 탕 밖으로 나와 자연바람의 시원함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크게 심호흡하며 올려다 본 하늘.

구름한 점 없이 파랗다.



몸과 마음이 함께 한 없이 자유롭고 행복하다.


그렇게 1시간을 오롯이 나의 전용 노천탕으로 즐겼다.



돌아오는 내내 엄마와 나는 이번 여행의 기획자인 언니에게 고맙다고, 덕분에 너무 행복했다며 진심의 마음을 전했다.



몇 년 전에 사업이 어려움을 당한 이후로 최선을 다해 회사를 살려 보려는 의지로 지금껏 버티고 있지만 여전히 좋아지지 않는 상황으로 부담이 많은 여행이었음을 더욱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언니의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밤길을 달려오는 내내 차 안에서 언니와 다하지 못한 긴 얘기들을 나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지나는 풍경들에 시선을 두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주제들.



이미 홀로 격한 감정의 시간을 보낸 후라서 그런지 나는 그저 덤덤하고 텅 빈 마음으로 내뱉는 말을 언니는 먼저 그 길을 지나온 인생선배로서의 얘기들을 들려 준다.



언젠가는 다...지나가더라고...

잘 견디다 보면...다 ...지나가더라고...



너무 평범한 얘기지만 끝이 있으리라는 그 결론의 말이 마음에 걸려와 냉기 가득했던 가슴에 훈풍이 돈다.



그래...

끝이 있단다.

그렇게 멀어보이는 시간이지만 조금만 더 가면 끝이 있단다...


가본 사람이 하는 얘기니까 믿어보자...




거창하고 특별한 비법은 아니어도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몸과 마음이 충분히 reset 된 시간이었던 만큼 우리는 곧바로 집으로 향하기 아쉬워 인근 아파트의 푸트트럭에서 매콤한 우동 한 그릇과 만두로 뒷풀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막내인 나한테 제일 미안하다고 하셨다.

별로 해 준 것도 없어서 많이 미안한데 엄마의 팔자를 가장 많이 닮아 있어서 마음이 늘 안 좋다고 하셨다.


나는 엄마한테 말씀드렸다.


엄마의 동안 외모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았고, 밝고 사람 좋아하는 성격을 닮아서 지금의 직장생활과 인맥들을 잘 쌓으며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 살고 있고,



높은 자존감과 거침없는 성격을 닮아

주변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받는 상처 속에서도 자신을 잘 방어하고 지켜내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그리고 질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연배인 엄마가 그렇게 건강하게 자기 관리하면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이 내 미래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놓인다고...



건강과 사랑하는 가족이 서로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떤 복보다 큰 복이 아닐까 싶다고...



70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엄마와 멀지 않은 50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두 여인.


그 여인, 셋이서 떠난 여행은 해를 거듭 할수록 함께 하기에 최적화 되어 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드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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