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때부터 함께 교회를 다녔던 친구들을 최근에 한 자리에서 보게 되었다.
여전히 신앙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몇 있었고
그저 명맥을 유지하며 술도 자유분방하게 나누는 친구도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만나는 것이라
낯설 것 같은 불안감은 만나기로한 까페에 들어서는 순간 다 증발해 버렸다.
까페를 전세낸 것 마냥 배울만큼 배운 우리가 그리도 시끄럽고 요란한 소리로 채우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그만큼 반가움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격한 감정으로 서로를 반겼고 그 어떤 벽도 없이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만남 이후 나는 더욱 예전의 향수와 연관된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사춘기 때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꼈던 조하문의 노래와 유재하의 노래들을 다운 받아서 듣기 시작했다.
그때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겹고 억울했던 짝사랑들과 무겁다 못해 버거웠던 외로움과의 몸부림을 아슬아슬하게 참아내며 지냈었다.
우린..아니..나는 뜨거운 십대였으니까..ㅋㅋ
그리고 교회친구들은 모두 인문고를 다녔었고 나만 실업고 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커다란 벽 앞에 홀로 서야했다.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새벽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로 독서실 비용과 학원비, 용돈을 벌며 하는 공부는 처절하기까지 했다.
같은 종교를 가지고 함께 깔깔대며 해맑은 웃음을 웃었지만 남모르는 버거운 삶의 숙제는 사춘기 십대인 나를 무척이나 위축되게도 했고 끝도 없이 바닥으로 끌어내리기도 했다.
따로 혼자 입시공부를 준비해야 했던 나는 학교가 끝나는대로
저녁을 챙겨 먹고 급한 걸음으로 독서실로 향했다.
총무실을 지나 들어서는 독서실에는 언제나 차가운 냉기와 적막감이 흘렀다.
작은 골목어귀 주택가에 둘러 싸여 있던 독서실이라서 그랬는지 고정인원이 열명 남짓이었다.
그 열명조차도 꾸준히 한 달을 열심히 나오는 사람은 거의 나 혼자였었다.
나를 주일과 토요일 말고는 매일 독서실에 열정적으로 다니게 했던 좌우명.
잠을 자더라도 독서실에서 자기였다.
나름의 룰을 정하면 꼭 지켜가기를 무척이나 애쓰면서 자신을 강박적으로 괴롭혔었다. ..ㅋㅋㅋ..
그 때가 내 인생 최고로 열심히 살았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내 고등학교 일과는 대충 이랬다.
새벽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학교를 갔고
하교 후 저녁을 먹고 40분여를 운동삼아 걸어 독서실에 도착.
11시까지 주구장창 공부하기.
그렇지만 겨울이 되면 여름과는 달리 새벽이 무척이나 깜깜해 무섭기도 하고 너무 추워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 했다.
그래서 겨울이면 새벽 6시에 일어나 새벽기도회를 갔고, 오는 길에 졸린 눈을 부릅뜨고 학교 운동장에 가서 1시간씩 걷기와 줄넘기 등의 운동을 하고 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십대에 이렇게 열심히 살아낸 내 자신이 의아할 따름이다. ㅋㅋ
열정적인 하루는 독서실에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조금 여유로워지고는 했다.
늘 조용하고 한산한 독서실이긴 하지만
명절 가까이나, 크리스마스 등의 특별한 날의 전날에는 더욱 한산해져서 거의 두 세명만이 독서실을 지켰고 그런 날은 입시에 대한 부담감으로 비록 밖에서 친구들과 보내지는 못하지만 홀로 조금은 느슨한 밤을 보내곤 했다.
독서실의 답답한 실내의 구조는 전 층이 같았지지만 3층 여자 독서실만은 쪽문을 열면 작은 발코니가 있었다.
그 문을 열고 나가면 키작은 한옥들이 각양각색의 지붕을 커다랗고 노란 수은등같은 달이 포근히 비춰주고 있었다.
지금의 그 흔한 5층 빌라조차 없던 때의 그 평화로운 풍경이 있는 만월의 밤에는 꼭 그곳에 나가 귀에 이어폰을 끼고 달구경하며 내 사춘기 감성을 증폭시켰었다.
겨울의 차갑고 알싸한 공기를 들숨과 날숨으로 호흡하며 내뿜는 입김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아이디에는 늘 moon이란 단어나 별이 들어 가게된 것이...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내뱉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과 속 마음을 한숨 하나로도 알아주는 듣한 느낌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답답한 휴게실보다는 발코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달을 찾아갔었다.
하루하루 야위어가기도 하고, 살이 오르는 달의 모습이 내게 많은 것을 함께 하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힘들고 무척이나 외로웠던 시간을 함께 한 교회친구들과 달은 지금도 내게 많은 의미가 있었고 고마운 존재다.
각자의 진로가 정해져 대학으로, 이른 결혼으로 우리는 서로를 잊어가는 듯 했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의 조우에서 그 아련함과 따뜻한 추억의 시간을 고스란히 공감하는 친구들....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고 기억이다.
힘들고 가난한 추억이지만
가장 뜨끈하고 소중한 나만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