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현수를 만나기로한 시간 10분전.
터미널은 이른 아침인데도 제법 많은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혜진은 이른 아침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 했고 자신의 직장과 집, 그리고 주변에서 맴돌면서 지냈던 자신의 생활 반경이 실로 좁았다는 생각에 어리둥절해 있었다.
"혜진씨!!! 뭘 그렇게 생각해요? 몇 번 불렀는데요...ㅎㅎㅎㅎㅎ"
언제 왔는지 의자에 앉는 현수에게 급히 인사하는 혜진.
"아!!! 그랬어요? 저도 온지 얼마 안 됐어요."
현수는 혜진의 옆에 기대있는 베낭가방에 시선을 고정했다가 혜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우리 내일 돌아오는 여행인거 알고 온거 맞아요? 무슨 한 달 여행해도 되겠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혜진은 최대한 줄인 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반응에 어리둥절해져서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일단 예매는 제가 했으니까 차 시간 넉넉하니까 볼 일 보시고 오세요. 짐은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
혜진은 화장실을 향해 자리를 떴고 현수는 차표를 확인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혜진에게 가방을 어깨에 매어주며 일어섰다.
맨 뒷 자리에 앉아 분주히 가방을 올리고 옷을 벗어서 대충 정리를 하고 한 숨 돌리려는데 보조베터리와 이어폰 생각이 나서 다시 일어서려는데 현수가 혜진의 가방을 들고 웃음 띤 얼굴로 서 있다.
혜진은 말없이 멋 적은 웃음을 지으며 베낭 맨 앞 쪽 작은 주머니에서 보조베터리와 이어폰을 꺼냈다.
현수는 다시 지퍼를 잠그고 짐 칸에 혜진의 가방을 올렸다.
현수도 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출발했고, 혜진은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밖의 풍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잘 알지도 못 하는 이 사람과의 여행을 선뜻 결정한 자신의 무모한 선택이 좋은 추억을 남겨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무심히 풍경을 흘려 보았다.
현수는 어느 새 잠들어 가볍게 코를 곯고 있었고 혜진은 잠든 현수의 얼굴을 천천히 보았다.
별로 좋은 시작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많은 이야기를 알게 된 이 사람에 비해 자신은 별로 현수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하긴 아는 것이 있다고 해도 왠지 자신과는 너무 다른 세계의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 본 이후로는 궁금한 것이 별로 없어졌다.
평범한 외모에 깍듯하게 예의바른 사람.
혜진을 부담스럽게 하지도 않았고 그런 현수가 혜진도 불편하지 않았을 뿐 더 이상의 감정이나 질문들이 없었다.
어느 새 잠이 들었는지 운전 기사의 안내 방송에 잠이 깨었다.
버스에서 내려 둘은 각자 화장실을 나와서 커피를 사고 추러스를 사서 각자 하나씩 입에 물고 다시 차에 올랐다.
자리에 앉은 혜진은 양 손에 들은 커피와 추러스를 어찌할지 몰라 잠시 멍해졌다.
벨트를 매야 하는데 잠시 어찌해야 할지를 잊어버렸다.
현수는 어느 새 자신의 추러스와 커피는 정리망에 단단히 잘 넣어둔 뒤 혜진의 커피와 추러스를 받아 들었다.
혜진은 다시 멋적어져 얼른 벨트를 매고 현수에게 자신의 커피와 추러스를 받아 들고 다시 멍해졌다.
현수는 다시 웃으며 커피뚜껑의 작은 입구를 열어주었다.
"ㅎㅎㅎㅎㅎㅎ혜진씨 그렇게 어려워요? 혜진씨 어머님 뵈면 그렇게 혜진씨 곱게 키우신 것 같지 않던데..ㅎㅎㅎㅎㅎㅎ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인가 봅니다? "
"그러게요..갑자기 어떡해야 하는지 좀 당황했어요. 왜 그러지? 나?ㅎㅎㅎㅎㅎ 아!! 근데 그건 현수씨가 순발력이 많은 것일 수도 있어요. 순간 필요한 부분을 빨리 알아차리고 상대편의 필요를 배려하는 거. 빠르네요..진짜.."
"아..그런가요? ㅎㅎㅎㅎㅎ 그런 생각 해 본적 없는데...좋은거죠? 좋다는 거 맞죠?ㅎㅎㅎ"
"좋은거죠. 당연히. 배려와 센스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ㅎㅎㅎ 근데 추러스 진짜 맛있네요. 놀이공원 가서 먹은 적은 있었지만 휴게소에서 먹는 추러스는 또 다른 맛이네요? 안에 치즈 들어 있는 건 처음 먹어봐요. 그런데...현수씨!! 보통 자가용이 있으면 여행을 자차로 가지 않나요? 그리고 듣기로는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중교통 이용하는 거 익숙하지 않고 답답하기도 해서 여행이든, 이동이든 거의 차를 이용한다고 하던데...."
현수는 추러스를 먹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을 했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거의 차를 안 타고 이동할 생각이예요. 차를 타게 되면 속도감이 있어서 좋은 풍경들을 많이 놓치게 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걸으면서 느껴지는 바람 냄새나 썬팅되지 않은, 내 맨 눈으로 보는 풍경의 색감이 주는 느낌들이 너무 틀려요.
좋은 건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뭐..그런 거랑 비슷한 거 같아요.
많이 걸을 거예요.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세요. ㅎㅎㅎㅎ 힘들면 꼭 얘기하구요. 작은 베낭 혹시 준비해 왔어요? "
혜진은 추러스를 베어 문 입을 반쯤 벌리고 현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현수는 그런 혜진의 얼굴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ㅎㅎㅎㅎ아니예요. 걱정마세요. 버스 내려서 잠시 시장구경할 거니까 거기서 작은 가방 하나 사서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자구요. 다닐 때 큰 베낭 들고 다닐 순 없잖아요? "
"아...그 생각을 못 했어요. "
"자꾸 여행을 다녀보면 필요한 걸 알게 되요. 그만큼 혜진씨는 여행을 많이 안 해봤다는 거죠..뭐..ㅎㅎㅎ 시간 나는 대로 이렇게 자주 여행 다녀봐요. "
한 시쯤 부산 노포동 터미널에 도착했다.
전철을 타고 해운대로 이동하기로 하고 전철역으로 향하는 두 사람.
오후의 지하철은 한산했고 두 사람은 제법 묵직한 베낭을 짐 칸에 올려 놓았다.
사람들의 사투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높낮이의 차이가 심한 듯 하면서 일정한 억양의 말들.
현수가 어줍잖은 부산 말로 말했다.
"혜진씨이~!! 배 안 고파요? "
혜진도 웃으며 그에 맞추어 부산 말로 대답한다.
"ㅎㅎㅎㅎ 예! 쪼매 고프네예. 현수씨는 뭐 무꼬 싶은교? "
"오오~!!! 혜진씨 잘한다. 우리 그럼 여기서 계속 부산 말로 하까요? "
"아이..뭐...몬할 꺼도 음찌요. 핸수씨가 잘 할랑가 모르겠네요? "
장난끼 가득한 혜진의 얼굴을 보며 현수는 속웃음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