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져가기만 하는 그리움..보고 싶습니다.

아버지에 대한글

by 바다에 지는 별


매일 매일 내 몸을 구겨넣어야 겨우겨우 매달려서 탔던 환승버스가 방학기간이라 그런지 타자마자 버스기사님의 바로 뒷자리에 앉는 횡재를 했다.


그리고 무심히 창을 바라보다가 맞은 편 차선에서 달려오는 버스기사를 향해 기사님이 한 손을 들어 손인사를 했다.


순간....

눈물이 맺혔다.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은 아버지도 돌아가시기 몇 년 전까지 버스기사 일을 하셨다.


운전일 평생을 사셨던 아버지.

아버지는 내성적이고 자신의 완고한 가치관으로 사셨던 분으로 지인이나 친구도 적으셨다.



그래서 항상 혼자 술을 드시고, 혼자 낚시를 다니셨다.

많이 외로워 보였지만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차라리 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고향에 내려갔을 때 우연히 부산역에서 아버지의 40번 버스를 타게 되었다.

매우 반가워하는 아버지는 나의 애칭 '똥순이'를 반갑게 부르시며 매우 들뜬 목소리로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다 큰 딸에게 똥순이라 부르며 무척 즐거워 하는 모습과 맞은 편 버스 기사에게 흰 장갑 낀 왼 손을 가볍게 흔들며 손인사를 하시는 모습이 아버지의 활기찬 직장인으로서 마지막 모습으로 그림처럼 남아 있다.


그 때 그 작은 손 짓을 보면서 아버지도 사실은 꽤 애교가 있으시고 사교적인 성격이 아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었다.



아버지는 고향이 충청도이고 장년이 된 후로 고향을 떠나 부산에 정착하신 이후로 직장동료들 말고는 인맥이 거의 없으셨다.


아버지는 술도 잘 하지 못하시고 매우 알뜰하셔서 동료들과 잦은 술자리 자체를 매우 자제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본인의 사람으로 곁을 주는 기준 자체가 조금 특이하고, 엄격함이 차이만 있을 뿐 정작 자신의 사람이라는 검증의 시간이 끝나면 무척이나 말씀도 많으시고,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게 많으신 다정다감한 성격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63세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인생을 제대로 즐길 시간도 없이 질환으로 불안해 하시다 돌아가셨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삶을 살아내는 목표와 목적에 별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자식을 길러내기 위한 필요한 일들에 대해서만 골몰하고 집중하는 것만이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의미일까?

그럼 나란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는 것일까?

무언가를 얻고 남기고자 함은 아니어도 적어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미안함이나 회한은 남지 않는 것이 나와 내 사람들에게 마지막 순간에 원망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깊이 생각해 보게 했고 지금은 거의 그런 삶을 지향하면서 살아가고자 하고 있다.


아버지라는 자리는 참 쓸쓸하고 외로운 자리라고 생각한다.

장성한 자식이 그런 아버지의 쓸쓸함을 챙겨 줄 수 있는 따뜻함이 있다고 한다면 훨씬 외로움은 덜 하겠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 한계가 있는 것이기에 아버지라는 이름은 어머니보다 훨씬 외롭게 들린다.


좀 더 오래 사셨으면 아버지를 챙겨 드리고 좀 어울리지도 않게 재롱이나 애교를 부려 드렸을텐데라는 아쉬움과 미안함으로 출근하는 아침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직 건강하신 어머님이 계셔서 다행이라 여기면서 어머니에게만이라도 좀더 신경쓰고 잘 해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본다.


https://youtu.be/Kgc7l_le0TY


매거진의 이전글오솔길에서 만난 작은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