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부부, 가족에 대한 글
친구와 치킨집에 왔다.
난 미리 들어와 있었고 친구는 주차를 하느라 한참 후에 들어 왔다.
동네에서 오래된 닭집이라 그리 깔끔한 가게는 아니었으나 워낙 상냥한 주인덕분에 늘 기분 좋은 곳이어서 자주 찾았다.
친구가 처음 가게를 들어서니 사모님이 먼저 반갑게 인사를 했고 앉은 친구에게 맞은 편으로 오는 사장님이 반갑게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한다.
친구는 바로 "대박!!!" 을 외치면서 환한 표정이 되었다.
이런 가게는 처음이라는 것이다.
진짜 인사라는 것이 중요한데 이 가게는 참 기분좋게 다시 오고 싶은 가게라고 얘기한다.
인사를 받을 줄 아는 친구다.
그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친구라서 나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인사얘기를 하면서 나는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일전에 친구와 나누었던 아버지 얘기를 들은 터라 차분히 얘기를 들어 주었다.
사춘기가 오고 무조건 남자라는 성별자체가 싫었던 나는 막내딸을 무척이나 귀여워 하셨던 아버지 조차 밀어냈었다.
밥 먹는 것조차, 함께 텔레비젼을 보는 것조차 싫어 했었다.
워낙 친구가 없으셨던 아버지는 사춘기 딸이 무척이나 서운하셨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혼자 술을 얼큰히 마신 아버지는 다락방에 있는 나를 불러 내리셨다.
나는 아버지의 술잔에 술을 따라 드렸고 말없이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다.
"똥순아!!(나의 애칭이었음.)
아빠는 우리 똥순이한테 딱 한 가지만 얘기할끼다. 어디를 가나 인사하는 것. 니가 먼저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는 것. 꼭 잊지 마라. 제일 인생에서 중요한 기다이? 알았제? "
이 말씀을 하실 때도 나는 아버지를 무척이나 미워하고 싫어했기에 이 말의 의미를 깊게 새기지를 못했다.
철들기 전.
나는 아버지가 너무 무능력해 보이고 어머니에게 모질게 대하는 게 싫어서 아버지를 미워했었다.
그리고 더 나이가 드시고 경제력조차 없어지고 난 후 어머니와 불화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사소하게 아버지가 저지르는 실수들이 너무 못 마땅해서 아버지와의 대화를 거의 단절하며 지냈다.
하지만 이렇게 나이들어 아버지의 중년나이가 되어보니 사회생활에서, 인간관계에서 먼저 인사하는 것이 그 어떤 노력보다 매우 중요한 일임을 이제서야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법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장성한 딸과 아들 그리고 나이 지긋한 부부가 이혼확인서를 들고 나오며 큰 소리가 난다.
아내가 아닌 딸이 아버지를 비난하는 얘기였다.
아버지의 일방적인 외도로 인한 가정 파탄의 책임을 묻는 딸의 목소리는 매우 격앙되어 있었다.
그 아버지라는 남자는 아무 말 하지 못 하고 그 자리를 떴다.
'아버지'라는 자리는 무엇일까?
나도 중년의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 보니 자식이 생각하는만큼 그렇게 든든하고, 단점 하나 없이 무결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시 그렇게 격렬한 비난을 하는 딸은 순탄한 부부생활을 영위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짐작을 해 보았다.
선과 악,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오랜 부부의 삶을 살다보면 이리저리 많은 일들이 있고, 그러면서 서로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며 무심해질 수도 있는 것이 부부이다.
그렇게 높은 기준으로 아버지라는 자리를 바라볼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저 자식을 키우면서 이렇게 저렇게 사소한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면서 성장하고, 철이 드는 것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자식을 가진 부모라고 해서 완전히 성장하고 철이 든 것이 아니며 오히려 여러가지 상황들을 겪고, 실수하면서 반성도 하고 그러면서 진정한 어른으로 철이 드는 것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다 철이 들어 있는 상태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생각이 드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버지를 좀더 이해해 드렸었어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조금은 덜 외롭게 해 드렸었어야 했다.
나도 아버지의 중년 나이를 살아보니 다 나름의 이유로 살아내기 위해 각자의 능력대로, 못난 모습 그대로 아둥바둥 애쓰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란 생각이 들면서 성인남자로서의 아버지를 좀더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부부의 일을 자식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되기까지는 부부의 일로 묻어 두는 것이 가족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부부의 일을 자식이 알아서 좋을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느 범위 내에서는 괜찮은 부분도 있겠지만 부부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 자식과 상의하고, 푸념하는 것은 가족들 간의 관계나 자식의 연애 또는 결혼생활에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세월이 가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희석되고 잊혀지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글에서 자신의 92살 되신 외할며니가 돌아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 인생은 다 바람같은 거야. "리고 한다.
사랑도, 미움도, 원망도 세월 앞에서는 다 바람처럼 잊혀지고, 희미해질 수 있는 것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의 배신이나 잘못.
내 가족의 실수.
그 모든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이지 않을까?
용서할 수 없어서 서로의 이별하기로 결정하고 헤어진다고 해도 가족은 남는다.
그렇다면 부부의 문제로 그 이외의 가족들과도 결별해야 하는 것일까?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부부사이의 불화는 그 어떤 관계의 문제에서보다 개인적인 서로간의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운 문제들이 널려 있다.
부부의 문제는 남녀간의 문제로 어느정도 정리를 하는 것이 옳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야기의 흐름이 다소 다른 곳으로 흘렀지만 가족간의 불화의 중심에는 아버지 쪽,남편 쪽의 잘못으로 인한 경우들을 주변에서 많이 봐 왔기에 변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서 아버지, 가장, 남자로서의 자리를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 분들도 그저 자식을 책임지는 것이 버거운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세상살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독한 싸움을 하고, 나름 자신의 자리를 누군가가 좀 알아주고,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한 남자였을 뿐이다.
그런 이해 속에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철든 어른이기 되기도 하는 것이 남자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철이 들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조금은 이기적인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내 가족에 대해서, 내 부모에 대해서 너무 큰 기대와 기준을 조금은 내려놓아 보자.
우리는 모두 외롭고, 사랑받고 싶고, 날 안아줄 수 있는 사람에게 달려가고픈 연약한 한 인간일 뿐이다.
책임과 의무 그리고 자아의 요구 사이에서 늘 갈등하고 흔들리면서 버거움과 죄책감을 오가며 살아내고 있는 어른일 뿐이다.
나도 어른이 되고 보니 자꾸만 살아온 삶에 그리 잘 한 것도 없고, 이뤄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들어가며 아비와 어미의 모습이 한없이 작고 약해 보인다.
그러니 이제는 치명적인 실수나 잘못으로 의절할 만큼의 일이 아니라면 그저 한 사람으로서 살아온 시간의 노고를 공감해 주고 따뜻이 손잡아 드려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