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적당한 거리.

관계에 대한 글

by 바다에 지는 별


일주일 가량을 직장동료들과의 신경전으로 지쳐 있었고 끝내 나는 버티기를 포기하고 반차를 내었다.


점심을 먹은지 1시간이 좀 넘었으나 나는 몇 달전부터 벼뤘던 쌀국수를 전투적으로 먹어 치우고

나의 파라다이스, 천지연의 품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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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내 안의 시끄러운 잡음을 잠식시키려 출입문 옆의 자주색 물통에 가만히 수돗물을 튼다.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눈을 감는다.

어지럽고 탁했던 마음과 정신이 쫄쫄쫄 흐르는 물소리처럼 맑갛고 투명해진다.


눈을 가늘게 뜨고 쏟아지는 비들로 흥건한 바닥을 바라본다.

어두운 백열등 아래 뜨겁고 고운 비들이 쏟아진다.

뜨거운 비들은 나의 맨살에 골고루 맺혀 백열등의 오렌지빛을 머금고 반짝이며 언제든 낙하하리라 바짝 몸을 부풀리고 있다.


뜨거움으로 숨이 막혀 올때 즈음 차가운 물을 머리부터 뒤집어 쓴다.

극치감으로 가슴의 무겁고 뜨거운 숨을 토해낸다.


세상과 그 속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쌓였던 묵은 때를 벗겨낸다.



때를 밀어본지가 어언 몇 만년되는 듯.



오늘의 여유를 핑계삼아 큰 마음먹고 육신의 묵은 때를 벗겨 보리라.

세신에 대한 욕심으로 일어나서 있는 힘을 다해 때를 밀어본다.

헉헉대며 미는데 누군가의 눈길이 자꾸만 느껴진다.

그리 호감형의 몸매가 아닌 것은 누가봐도 척보면 알텐데...


의아해진 나는 곁눈질로 본다.

맞은 편의 지긋한 연배의 여인이 자신의 거울로 나를 계속 쳐다본다.

거울 속의 내 눈과 그녀의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같이 등을 밀어주지 않겠느냐며 물어온다.


그 분을 내가 먼저 밀어드린다.

그런데 량이 꽤 되신다. 본인도 멋적었는지 매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꽤나 귀엽다.

나는 못지않게 나도 많이 나올거라는 말로 응수했지만 그녀는 웃지 않는다.


나의 차례.

생각보다 때가 많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

왜 그러는지 알수는 없지만 평소 타인의 등을 밀어줄 때 손대지 않는 부위까지 적극적으로 밀어주시는....ㅡ.,ㅡ


그녀에게 등을 내어주는 동안 이런저런 잡생각을 한다.


downloadfile-31.jpg 너와 나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걸까?


최근 직장에서도 일하는 스타일로 동료들과 트러블이 있었다.

그녀들은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강박적이어서 늘 허덕거리며 일을 해치우려 동동거린다.


반면 나는 최대한 여유를 가지고 마음의 준비가 될 때 해치우는 스타일이라 우리는 매뉴얼 숙지하는 시점에서 서로에게 약간의 감정다툼이 있었다.


서로의 스타일을 인정하고 좀더 기다려 줄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그들은 그러지를 못했다.


나는 지금도 그들과 섞이지 못하고 그들을 내 주변에서 밀어내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

낯선 그녀에게 내 육신을 잠시 부탁했던 일.


또 작년부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거의 모든 규칙과 약속들을 어기고 자신의 강한 본능대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집 막내와의 냉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목욕하는 거 하나로 참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상대가 직장동료일 때, 그저 타인일 때, 가장 친밀한 가족의 일원일 때 우리는 서로의 경계를 어디까지 구분지어야 하고, 어디까지 침범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상대가 직장동료일 때.

업무가 원활히 돌아갈 정도라고 하면 필요이상의 일방적인 관심이나 간섭은 서로의 관계를 망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에 최대한 그 경계가 지켜져야 할 관계이며 섣부른 충고도 아끼는 것이 24시간 중 가족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은 관계에 가장 바람직하다.



두 번째 상대가 전혀 모르는 타인일 때.

서로가 원하는 부분과 목적에 대해서만 충실하면 된다.

더 이상의 친절이나 과도한 관심이나 행동은 서로에게 불편감을 준다.

그러나 때때로 상대의 반응에 따라 다소 수용 가능한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세 번째 상대가 가족의 일원일 때.

자신의 책임이 막중한 가족이거나, 가장 친밀한 관계일 때 그 경계는 매우 주관적이며 타당하든, 불합리하든 수시로 그 경계는 허물어진다.

약속이나 서로가 합의된 허용범위라는 것은 지켜지기가 어렵고 편중되고 일방적인 요구에 의해 갈등이 심화될 수도 있으며 아무런 결과물도 없는 감정소모로 관계조차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나열한 관계 모두 쉽지 않은 것과 과도한 의욕과 책임감은 그 어떤 관계에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적당히....

상대가 원하고, 필요할만큼만 다가가고 이후에는 또 기다려야 한다.


앞서 나가서도 안되고, 자신의 임의대로 짐작해서도 안된다.



제대로 뭐하나 잘 해내는 것이 없는 요즘.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나를 침범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또한 지나친 책임감으로 애 태우며 조바심나는 자신을 다독이며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다 잘 할 수 없고, 다 완벽하지 않다.

나도, 타인도, 지인도, 가족도.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해야 할 것 같고,

조금만 더 노력해 보라고 독려해 봐야 할 것같다.


내게는 모두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니까...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80208073401_0_crop.jpeg 넌 거기. 난 여기. 때로는 안 보이는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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