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은 것이 없다
누군가와 무엇을 먹고 있으나 그 맛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글도 써지지가 않는다.
음악도 시끄럽기만 하다.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쉽지가 않다.
시도는 해 보았지만 번번히 다 부질없어 보여
술 잔만 비우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몇 일전 친구들과 다녀 온 여행에서 잔 꿀잠 말고는 숙면을 취한 기억이 3주 동안 별로 없다.
건드리지 않아도 멍한 상태가 지속되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먹는 것도, 얘기하는 것도, 웃는 것도, 우는 것도 다 쉽지가 않다.
이렇게 될 줄 전혀 상상하지 못 했다.
철저히 준비되어 온 이별이었고, 그 한 줄의 인연마저 완전히 놓아버릴 날을 꿈꾸며 살아왔는데 이건 아니다.
먼 나라에 가 있는 언니는 내게 괜찮냐며 거의 매일 연락을 해 왔고, 너무 조용한 내가 걱정이 되는지 친구들도 안부를 물어온다.
직장에서도 평소의 모습과 다르지 않게 행동한다.
하지만....
역시나 버겁고 감당하기 힘든 무감동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그렇게 자신해 온 내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어금니 꽉 깨물고 안간힘을 내서 괜찮은 척하며
먹고, 마시고, 떠들고, 너스레를 떨지만
너무 힘들다.
의지적으로 아직은 버티고 있어서
들키지 않고 지내고 있으나 언젠가는 그들도 눈치챌 것 같아 두렵다.
그냥 다 미안하고,
그냥 내가 다 잘못하는 것 같고,
무엇인가 더 잘 했었어야 했을 것 같고,
내가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미치도록 내가 못나 보이는 것이다.
마음 속에서는 아니라고, 너의 최선이었다고 절규하지만 부당한 후회감은 그 목소리를 삼켜버린다.
최선을 다해 후회하지 않으려 준비했지만
모두 나를 비난하는 것 같다.
어린 아들 녀석의 반항도 다 내 잘못 같고,
딸아이의 규모없고 계획없는 안일한 생활도 다 내 잘못같다.
이것저것 자꾸만 놓치는 직장생활과 일상생활에서 늘 나는 부족한 사람같은 것이다.
잘 하는 게 하나도 없고, 어딘가 영구히 고장나 버린 사람 같다.
부정하거나, 억누르거나, 도망가고자 하는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것도 의미롭지 않다.
그저 마음 속 깊이 억울하다는 볼멘소리만 들려온다.
잘 못된 것은 없다.
그저 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일 뿐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을 가는 것도 아니라서 유난을 떨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알아 달라고 피곤하게 굴지도 않는다.
그냥 나는 지금의 시간을 건너고 있다.
지독히 건조하고, 모래바람 가득한 사막을 건너고 있을 뿐이다.
물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황량한 모래 사막같은 시간을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마음을 비우고, 무중력의 상태로 휘적휘적 걸어나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언젠가는 이 길의 끝에 닿아 있겠지.
절규하며 울 수 있는 강물의 길도 만나고, 예쁜 꽃들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미소 가득한 길도 만날 수 있겠지.
애쓰지 말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길을 나또한 무사히 건널 수 있을 거라는 믿음만 놓지 말자.
걷자.
쉬지 말고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