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산책 일기
가파른 곳에 마련된 불당.
수많은 기원의 촛불과 함께 간절한 소원의 이름들이 천정에 매달려 있다.
나 아닌 내 사람을 위한 기도.
나 아닌 내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바람.
나란 존재를 굳이 챙기지 않아도 한점의 억울함도 없는 것이 사랑이다.
계단과 오르막길의 공포를 헐떡이는 숨으로 뱉어내며 올랐던 곳에서 나는 내가 떠나온 세상을 바라본다.
시원한 바람이 몸의 곳곳으로 들어와 땀을 식혀주고 전쟁처럼 소란한 마음의 비명들을 조용히 잠재운다.
누군가는 엄살쟁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대견하다고 했다.
그러한 그들의 시선들도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내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는
그 어떤 긍정의 언어도 다 소음으로 뭉개져 버린다.
숨을 고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이제서야 그들의 소소한 눈빛 하나, 손짓 하나가 진심이었음에 감사하다.
풍경을 바라보다 내가 오른 산보다 조금 더 높은 옆산이 보인다.
산 중턱에 보이는 바위.
저 곳에서 더 멀어진 세상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이곳 산을 찾을 용기를 낼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이다.
산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만
오르는 사람들마다 다른 이유와 의미들이 있다.
아직 내게는 이렇다할 의미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이제껏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산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지...
어떤 것이든 버거움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해도 시간이 가고, 내가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그 두려움의 대상은 또다른 의미와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충분히 그 이름이 바뀔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사실이다.
산에서 바라본 탁 트인 하늘과는 다르게 그 푸른 하늘을 뻗은 가지들이 멋스럽게 가려 놓았다.
중간 중간 보이는 하늘의 모습.
보는 장소와 풍광에 따라 달라지는 하늘의 느낌과 색이 새롭게 다가온다.
나는 그저 나이다.
저 멀리 있는 하늘처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든 하늘은 그저 하늘이고, 나는 나일 뿐이다.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다가오는지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 보는 사람의 느낌이고, 시선일 뿐이다.
그러니..
너무 부정할 필요도, 애써 해명하려고도 말자.
어차피 하늘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듯이 나란 사람도 그들에게 다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없으니 말이다....
산 아래에는 수많은 인파들 뿐만이 아니라 인간이외의 수많은 생명들이 존재한다.
사람은 땅 위에서 호흡하고,
물고기들은 물 속에서 그들의 숨을 쉰다.
수많은 치어들의 몸놀림과 그 속에 음악처럼 들려오는 새들의 목소리, 그리고 귓가에 소곤대는 바람의 소리.
자연은 자연의 일을 하고 있고,
물 속의 생물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내느라 바쁘다.
다들 각자의 생존과 삶을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나만 먹고 사느라 바쁜게 아니었던 거다.
그래...
다들 먹고 사느라 애쓴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들아...
인간들에 둘러싸여 인간의 삶에만 골몰하다 자연으로 들어가 자연의 생명들을 바라보니 그들도 그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괜히 투덜대고, 억울해했던 비좁은 마음이 풀어지고 말랑말랑해진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과 가까이 지내야 하나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