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반짇고리와 엄마

by 바다에 지는 별



주말에 빨래를 하다가 딸의 너널너널해진 치맛단을 발견했다.

탈탈 털어 널면서 다 마르면 단수선을 해 줘야겠다 다짐을 했다.


무엇이든 자기가 관심이 없으면 심하게 무관심하고, 심드렁하다 못해 씨크한 딸의 성향을 솔직히 비난하고 싶지만....지적질할 입장이 못되는 ....털팔이 엄마가 나이다.


무튼.

다음날 아침.

널어 놓은 치마를 걷어서 수선을 하려는데 최근 집안 대청소를 하다가 반짓고리를 어디다 뒀는지 얄궂은 반짇고리만 있다.

이 놈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싸구려 플라스틱 뚜껑을 열어 작은 실꾸러미 비닐을 열었다.


실의 시작점을 찾아야 하는데......


하는데....보이지가 않는다.


한 참 실갱이를 하고 이것저것 실패하다 간신히 쉽게 풀리는 놈으로다가 실을 길게 푼다.

역시 얄궂은 빨강색의 통.

그 안에 바늘이 있으려니 짐작하고 뚜껑을 열었는데 너무나도 작은 바늘이 5개정도 들어 앉아 있다.


평소 작은 것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스러워하는 나이지만 이건 너무 아니다.


바늘귀가 보이지가 않는다.

20여 분을 낭비하고 별의 별 position change를 해보고 각도를 조절해도 정말 일관성 있게 실을 허락하지 않는 바늘귀.

이다지도 철벽방어를 완벽히 한단 말인가?


그런데 눈에 뛰는 묘한 물건.

늘 바늘꽂이에 의례 당연하다는 듯 들어앉아 있는 이 물건은 도대체가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가 갑자기 궁금하다.

분명 소용이 있는 물건인데....

검색을 한다.


바늘꽂이 세트,

바늘꽂이 구성물품...등등...


(출처;네이버검색)


검색을 하는데 사람들도 이 것의 용도를 잘 몰랐구나 싶기도 하고, 결국은 이 물건의 이름을 나만 모르는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다행이다.ㅋㅋ)


그리고 이 물건을 이용해서 드디어 바늘 녀석의 철벽방어벽을 뚫고 실을 꿰고 빠른 손놀림으로 홈질을 한다.

참 능숙하고, 익숙한 손놀림이라며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치마를 펼쳤다.


그런데 .....하아....


왜 나는 치마를 완전히 뒤집어서 바느질 하지 않았던가?

이중으로 치마 밑단이 꿰매져 버렸다.

ㅠ.ㅠ


다시 도리없이 풀고, 급한대로 열군데 정도로 임시방편으로 홈질을 했다.

그리고 딸의 하교후 다시 꼼꼼히 수선해 주리라 마음먹고 후다닥 아침밥을 해서 먹이고 출근을 했다.



시력교정술을 받은 후로 노안이 더욱 심해져서 이제는 순순히 나의 여러 몸의 기능의 쇠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나는 아직 화가 앞선다.


그렇다고 내가 노화라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거나 심하게 부정하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다.

그저 불편하고 짜증이 난다.



아마도 익숙해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면 될 것이지만 3년 전까지 방문간호사로 일하면서 식상하게 봐왔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가면 고지서를 읽어달라고 하시고, 이게 무슨 글이냐며 해석해 달라고 하기도 하고, 어디로 전화해서 물어봐야 하는지, 심지어는 실을 꿰어 달라고 하셨다.



그때는 솔직히 왜 이런 것까지 내가 해야하나 좀 짜증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분들을 다시 생각해 보니 그들의 절실함이, 답답이 어떤 것이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이 듦.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아지고, 그 불편함을 급히 해결하려고 하면 더 성격이 고약해지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러지 않으려면 좀더 시간을 넉넉히 주어야 하며, 내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도 많이 낮춰야 하는 것임을 어렴풋이 생각해 보았다.



시간이 지나고,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나의 에너지 또한 많이 줄어들텐데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런 상황들을 바라보고, 어떻게 적응해 나가야 할까?



어르신들이 왜 그렇게 아무나 붙들고 자신의 말씀을 하시고, 부탁을 하.게 되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자꾸만 필요하고, 그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지기 때문이리라.

.


그리고 또 하나의 생각.

내 약함과 내 서투름에 대해서 남에게 편하게 인정하기.



잠깐의 분주하고 정신이 황망해지던 아침의 상황이었지만 출근길 내내 이 일을 조용히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었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80820224059_2_crop.jpeg 출처; 네이버검색

덧붙이는 말

-그 의문의 도구의 이름은 실꿰기 이다.

참 쉽고 귀여운 한국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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