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도 죽음도 요란하지 않고 일상적이게...
김영하소설 책후기
14p
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살해하도록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사람들이 무의식 깊은 곳에 감금해두었던 욕망을 끄집어내고 싶을 뿐이다. 일단 풀려난 욕망은 자가증식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상상력은 비약하기 시작하고 궁극엔 내 의뢰인이 될 소질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27p
단 한번 패가 돌아가고 그것으로 그 판의 운명은 결정된다. 그다음은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일만이 남는다. 좋은 패가 들어와도 좋아해서는 안 된다. 나쁜 패가 들어왔다고 해서 우울해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좋은 패일 때마다 항상 우울한 척하면, 그 다음은 아무도 속지 않는다. 아무 표정없을 것. 그게 관건이다.
이런 게 인생일까. K는 생각한다. 어차피 패는 처음에 정해지는 것이다. 내 인생의 패는 아마도 세 끗쯤 되는 별볼일없는 것이었으리라. 세 끗이 광땡을 이길 가능성은 애당초 없다. 억세게 운이 좋아서 적당히 좋은 패를 가진 자들이 허세에 놀라 죽어주거나 아니면 두 끗이나 한 끗짜리만 있는 판에 끼게 되거나.
그 둘 중의 하나뿐이다. 그래봐야 그가 긁을 수 있는 판돈이란 푼돈에 불과하다. 어서어서 판이 끝나고 새로운 패를 받는 길. 그 길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나 세 끗이라도 좋다. 승부가 결판나는 순간까지 나는 즐길 것이다.
60p
"흑백사진은 인간의 그늘을 보여줘요. 주름살과 주름살 사이에 담긴 한 인간의 인생을 잡아내죠. 그런데 그 남자의 눈동자 위로 카메라 프래시에서 반사된 빛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맑아 보일 수가 없었죠.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이제 이 사람은 인생을 다 살았구나 싶더군요."
"그런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눈동자에서 반짝이던 두 점의 빛은 마지막 희망 같은 거예요. 피로와 권태에 찌든 주름살이 얼굴을 뒤덮고 있어도 숨길 수 없는 게 있죠. 그런 희망은 삶을 향한 게 아니라 휴식을 위한 거에요. "
중략
"유서도 남기지 않았나요?"
"남기지 않았어요. 이 앨범이 유서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음악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유디트와 주인공이 영화관에서 만났던 날 차 안에서 재즈뮤지션, 쳇 베이커에 대한 대화 중 발췌.
104p
백색 캔버스. 원시인이 처음 예술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런 주장을 폈다. 그것은 인간 내부에 잠재해 있는 백색 공포 때문이라고. 텅 비어 있는 하얀 벽은 그 자체로 충분히 공포스럽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벽에다 낙서를 하고 번쩍이는 새 차의 표면에 칼로 흠집을 낸다. 가구가 없는,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은 그런 방이 두려워 사람들은 채우고 또 채운다.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는 밤늦은 시간의 전화는 불면증을 불러온다.
-주인공과 미미라는 행위예술가의 조우의 한 장면에서 발췌
출처;네이버 겅색강의를 먼저 접했던 김영하 소설가.
강의를 보며 강한 매력을 느껴 좋아하지도 않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보기 시작했다.
화려하거나, 잡다한 내용없이 담백한 그의 글은 차라리 조금 심심하기까지 하지만 그래서 여느 소설처럼 초반에 포기하고 신경질적으로 책장을 덮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소설에는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조금씩 다른 상황에 다른 남자들과 대면하는 여자들이지만 세 여인 다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성장배경과 홀로서기. 그로인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살지만 그렇게 분노하거나,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세상을 연극의 한 무대를 감상하듯 관망하는 자세로 자신의 삶을 대한다.
세상에, 그 어떤 이성이나, 대상에게 단단한 연결고리 같은 것을 걸어둘 생각도 없으며 그저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고, 행동하고 살아간다.
참 건조하고 차가워 보이는 그녀들의 삶.
두 여인 모두 그 어떤 미련없이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스스로의 생을 정리했고, 한 여인은 그저 자신의 갈 길을 갔다.
134페이지의 분량으로는 디테일한 그녀들의 삶을 다 쓸 수는 없었겠지만 소설 속에 보여지는 그녀들의 충동적인 결정과 선택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그로 인한 그들의 성격을 대충 짐작해 보았다.
너무 제멋대로인 성격과 즉흥적이고, 예측불허인 그녀들의 성격상 그 어떤 사람들에게도 자신을 이해받거나, 공감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사람들에게 이해받기를 포기하고 그 어떤 연결고리도 걸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이해받지 못 하고, 공감받지 못하면서 지내는 시간은 어쩌면 참 지루하고 무의미하며 그 어떤 삶의 즐거움이나 에너지를 끌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어떤 책임감이나, 깊은 사고없이 즉흥적으로 행동하며 그 지루함과 무의미함을 견딜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죽음을 선택했을지도....
죽음을 돕는 주인공은 그녀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을 돕고 마지막 길까지 무덤덤하게 배웅해 준다.
그리고 그녀들은 담담하고 조용히 죽어간다.
김영하 소설가는 소설은 어떤 목적을 갖고 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저 스토리를 이해할 좌뇌의 기능과 그 스토리를 들여다 보며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우뇌의 기능을 조금 사용하면 된다고 했다.
나또한 이 소설을 접하며 그렇게 큰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저 독특한 케릭터의 그녀들이 세상과 섞이지 못하는 모습이 왠지 나와 닮아 있어 그녀들이 선택한 이른 죽음이 사실 조금 이해와 공감이 되었다.
미련도, 후회도 없이 그저 생의 지루함을 끝내는 선택이 왜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공감.
삶이, 생활이, 생이 요란하지 않고 그저 일상적이듯 죽음 또한 요란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